오빠, 내 마음을 받아줘서 고마워

보내지 않은 편지 5

by 맘달

나는 한 무리의 사람들하고 군가를 찾고 있었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동안 헤매다가 눈앞에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는데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아 보였어. 단단하게 닫혀있었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이 누군 알 것 같았어. 철문 안쪽에 아버지가 있는 것 같았거든. 이상하게 나 혼자만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군중을 향해 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혼자 안으로 들어어. 은 생각보다 쉽게 열리더라고. 안은 좁고 어두워서 잠시 멈칫했는데 분간이 가지 않는 언덕 같은 커다란 뭉텅이가 가로막고 있어서 갑갑함이 느껴졌어. 차츰 어둠에 적응이 되자 두꺼운 이불 뭉텅이를 뒤집어쓴 남자가 보였어. 가까이 다가갔는데 얼굴은 잘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아버지 같더라고, 처음엔 아버지 같았고 나는 아버지한테 용서를 빌고 있더라고. 내가 왜 그러는지도 모른 체 아버지한테 독백하듯. 그랬는데...... 점점 아버지가 아닌 것 같더라고. 아버지가 아니었어.


오빠, 내 울음소리에 깼어. 실제로 울고 있었다니. 일어나자마자 꿈을 떠올려보았는데 처음엔 돌아가신 아버지꿈인 줄 알았는데... 이상해, 얼굴을 볼 수 없었다는 게...... 묘하지, 아버지가 아니라 훈이라는 확신이 드는 거야.


꿈에서 난 무슨 용서를 빌면서 운 걸까. 그럭저럭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 괜찮은 줄 알았어. 난 '척'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척'했더랬나봐. 꿈이 내 속을 뒤집어 들여다보게 만들더라고. 훈이 키우면서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 잘못을 따져봤자 득 될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불쑥불쑥 자책감이 밀려들곤 해. 어디선가 보고 위로를 삼은 부모의 영향력은 31.6%이고 자신의 주도성은 68.4%라는 통계가 있어. 그래도 묘하게 자책감은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늪처럼 더 깊이 빠져들게 하더라고.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탓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나 봐. 어딘가에 돌리지 못한 탓을 자신에게라도 돌려야 직성이 풀리나 봐. 탯줄로 이어지 관계, 조건 없는 사랑, 모든 것을 넘어서 자신을 다 바칠 수 있는 질긴 모성이 나를 하염없이 나락으로 떨어뜨리곤 했어. 뭔가 해보려고 만들기도 했던 그 모성이. 이제 어린애도 아니고 정을 떼야하는데 오히려 내쪽이 문제라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걸 중독에서는 공동의존증이라고 불러. 훈이의 존재와 도박중독의 문제를 분리해야 하는데 솔직히 쉽진 않은데 훈이아빠는 어느 정도 그게 되는 사람이야. 내가 늪가에서 헤매 빠져들 것 같으면 그만해, 조심해, 물러서라고 말해주거든. 각자 자기 삶을 살면 아무 문제 될 게 없다고 하면서. 훈이아빠는 정신이 번쩍 들에 하는 사람이야. 다행이지.


어떤 때는 이런 생각도 들어. 훈이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세상, 몰랐을 사람들, 나와 전혀 상관없던 것들이 내 삶에 파고들 때 순간 밀어내고 싶었거든, 근데 지금은 안 그래. 내가 외면한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 세계와 그 세계 사람들이 나를 돌아보게 해. 거울처럼 나를 비추어 보게 만들어. 고통, 아픔, 괴로움, 외로움, 분노, 다툼, 미움, 두려움, 죄책감, 슬픔, 억울함이 뒤범벅된 세계에서도 싹이 트고 잎이 나더라고. 새로운 깨달음은 언제나 깊은 상처에서 싹트는 건가 봐.


오빠도 모르는 세계라서 낯설고 이상하지. 오빠가 알아봤자 득 될 것도 없고 시공을 초월한 상태에서 뭐 하나 싶었는데 쓰다 보니 오빠가 내 말에 귀 기울여주고 있는 게 느껴졌어. 토 달지 않고 가만히 들어준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힘이 나. 오빠가 별이 되어 하늘나라에 살고 있다는 게 영영 떠난 게 아니란 생각이 들기도 해. 가까이 있는 것같이 온기가 느껴져.


오빠, 고마워. 다음에 또 쓸게. 그때까지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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