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변제는 절대 하지 말아야
" 빚을 안 갚아주면 이대로 죽으란 말이에요?"
" 그래. 네가 싼 똥이니까 네가 치워야지, 어린애도 아니고..."
아들과 남편 사이에서 오가는 말이 살벌했다. 대학졸업을 앞두고 발각된 아들의 도박문제는 손쓸 수 없는 상태였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차분하게 빚문제를 의논할 수 있었는데 갚아주지 않고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는지 찾아보려고 했지만...... 없었다. 어려서부터 세 아이에게 대학 졸업하면 일자리를 구해 독립하기로, 거기에 필요한 일정정도의 독립자금은 지원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일단 큰애를 내보냈다. 아들은 일자리부터 구했고 혼자 살 원룸도 구했다. 독립자금을 지키기 위해서 전세권설정등기를 해야 했는데 그걸 해줄 주인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첫째의 독립은 등 떠밀리듯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는데 도박문제 발각되고 3개월이 지난 때였다.
도박으로 인해 파생된 문제들 중 빚만큼은 대신 갚아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단호함 때문이었다. 법에 대해 잘 아는 남편 덕분에 부모 앞으로 오는 빚독촉, 협박을 버텨낼 수 있었다. 추심회사에서 우편물 집중포화로도 모자라 직원이 집까지(전세권설정등기가 엄마 명의로 되어있어서 우편물이 본가로 오고 있었음) 찾아온 적도 있는데 남편이 알려주는 대로 "다시 이런 식으로 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 했더니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전혀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데도 난생처음 겪는 일이라 가슴이 쿵쾅쿵쾅 했다. 남편의 단호함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자식이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단 얼마라도 빚을 갚아줘도 되지 않을까, 흔들리는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남편 몰래 빚을 갚아줬을지도 모른다.
한 번쯤 눈 감아줄 줄 알았던 엄마가 아빠의 지령?을 받고 냉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고 큰애는 야속해했다. 허용적인 엄마에게 '틈'이 보이질 않으니 놀란 것 같다. 아들은 엄마가 속으로 약해지지 말자고 다짐에 다짐을 더하며 견딘 것을 짐작이나 할까.
차라리 그때 죽었어야 했는데...... 기껏, 엄마 집에 와서 밥 먹고 한다는 말이. 대꾸를 하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아들이 돌아간 뒤 숨어서 한참 울었다. 도박 문제가 드러나기 전 큰 사고를 당했던 큰애 입에서 나온 말이라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진작 죽었어야 했다, 죽고 싶다는 말이 그만큼 힘들다는 뜻인 줄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빚을 갚아줄 수는 없는 일. 도박에 대해 상담과 교육을 받고 배우면 배울수록 '빚에 대한 단호함'만이 아들을 살리는 길이라는 확신이 든다. 도박중독과 맞서 싸우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가 단단해져가고 있었다.
'그래, 죽기밖에 더하겠어.'
'어차피 죽는 거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뿐이라고.'
대리변제를 해서 사정이 나아진다면,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빚을 갚아주지 않고 버티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아들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배운 대로 하자, 냉정하게 하자, 갚든 말든 상관 말자......
또 아들은 월급을 날렸다. 휴대폰 소액결제를 최대한 끌어 쓴 걸로도 모자라 사채를 끌어다 쓰고. 하다 하다 재택근무할 때 쓰는 공용 노트북까지 전당포에 맡기고. 사방팔방 돈도 빌리고. 감당할 수 없으면 도망이라고 가야 하는데 아들은 도박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도박에 미쳐있었다. 차라리 잘 된 일인지 모른다. 도박을 하기 힘든 상황이 된 게. 빚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니 벌이 한도 내에서 빚은 천천히 갚아나가면 될 테고. 도박충동을 잠재우며 근근이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줄이 막혀야 끊어지는 게 그 세계의 논리라.
불청객처럼 걱정과 불안이 찾아오면 끌려다니지 않으려고 닥치는 대로 읽고, 되든 안 되든 쓰고, 진이 빠질 때까지 걷고, 또 걷는다. 걱정과 불안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면 순간 미칠 것 같은데 그나마 몸을 움직이면 생각이 줄어든다는 것을 안다. 쓰는 힘과 걷는 힘이 나를 지탱해 준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다."는 티베트 속담을 되새기며 마음을 달랬다. 걱정의 40%는 현실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 30%는 이미 일어난 일, 22%는 매우 사소한 것이라니 나머지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 마지막 남은 4%만이 내가 어쩔 수 있다니 너무 애쓰지 말자. 안간힘 쓰지 말자.
삶에서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은 4%에 불과하다고 하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반응이나 간섭을 하지 말자. 불안과 평온사이에서 가만히 있어보는 거야.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나를 다독이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Tip
갬아넌 모임에서 가족에게 전하는 주의사항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반응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 것
다른 사람의 회복을 위해 우리 자신이 이용되거나 악용당하지 말 것
다른 사람이 할 일을 대신해 주지 말 것
다른 삶의 생활을 조정하지 말 것(먹고 자고 일어나는 것. 빚 갚아주는 것)
다른 사람의 실수나 비행을 감싸주지 말 것
만일 자연스러운 위기라면 막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