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아이들이 어버이날 카드를 주는데, 집안일로 바빴던 저는 카드를 바로 확인하지 않고 식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그제야 식탁에 앉아서 카드를 열어보았습니다.
제가 늘 부모님께 같은 문구로 감사인사를 드리는 것처럼 사랑하고, 감사하다는 인사가 적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짧은 편지에는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큰 아이는 지난 4월 말, 중2 첫 중간고사 때 매일 새벽 1시까지 공부하는 노력으로 엄마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채점을 해보니 30점 대부터 70점 대까지 다채로운 결과에 저와 남편은 당황스러워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또 하필이면 중간고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 어버이날이라니. 아이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겠습니까. 카드를 열어보니, 공부를 못해서 죄송하고, 엄마 아빠한테 스트레스를 줘서 또 죄송하다는 말이 반복되어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면 좋겠지만, 공부를 못한다고 인생이 가치 없는 건 아니라고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은데, 엄마인 저도 아이의 과학점수 38점이 마음에서 진짜 괜찮은 건 아니어서, 아직 뾰족한 위로를 건네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엄마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아무 조건이 없다고 진심의 한 줄을 적어봅니다.
둘째 아이는 6학년이 되면서 사춘기로 저와 많이 부딪쳤습니다. 아이의 날카로움에 엄마인 저도 상처를 받았고, 저도 참고 있었던 화를 아이에게 풀어놓는 식으로 반복했다가 최근에 서로를 깊이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봄이에게 공부가 전부는 아니라고 아무리 위로를 해도, 자신이 그려놓은 자신의 모습과 점점 달라지는 현실에 아이는 매 순간 혼란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몇 달 전에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책에 나오는 작가 부모님의 행동을 저도 조금 모방하였습니다.
"얘들아, 너네도 각자 고민이 있겠지만, 사실 아빠도 회사에서 어떤 사람과 힘든 일이 있어. 우리가 아빠를 기원해 드리고 응원해 드리자. 어려움이 없으면 좋겠지만,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가 그 어려움 덕분에 더 많이 행복해지면, 그게 어려움이 없는 것보다 좋은 거야."
아이들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자신들을 재미있게 해 주는 아빠에게도 깊은 고민이 있다는 걸 듣더니, 많이 놀랐고, 엄마에게 들은 우리 가족의 어려움을 소화시킨 둘째는 저렇게 장문의 편지를 써 놓았습니다. 아빠가 자신들을 웃게 해 줘서 고맙고, 엄마의 글을 통해 엄마를 이해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그래도 마음 한쪽은 불안하여 식탁을 닦게 된다는 글에 많이 웃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고민에 엄마 아빠의 고민도 더하게 되었지만, 그래서 웃어주는 서로에게 감사하고, 그래서 자신도 해내겠다는 자신감을 조금 더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셋째 아이의 편지에 쓰여 있는 '이번에는 더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가 의아하여 뜻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다이어트랍니다. 통통한 셋째가 더 이상 살이 찌면 안 될 것 같아서 저녁마다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운동을 나가는데, 아무리 피곤해도 자신을 데리고 운동을 나가는 아빠의 눈물겨운 노력에 막내도 자신의 통통 체질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나 봅니다. 통통해서 너무 귀여운 막내의 최대 목표가 다이어트라니ㅎㅎㅎ남편과 한참 웃었습니다.
아이들이 건네준 어버이날 카드를 통해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말과 행동, 마음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느끼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과 공기를 마시며 풀이 꽃을 피워내는 것처럼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관계, 우리의 말과 행동, 감정을 매 순간 들이마시고 있었습니다.
<폭싹 속았수다> 금명 엄마의 대사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천애고아 오애순, 식모살이 오애순, 여고중퇴 오애순이 가져본 타이틀 중에서 금명이 은명이 엄마가 제일 근사해"
또 다른 장면, 죽음을 마중 나온 며느리가 죽음을 앞둔 시어머니에게 묻습니다.
"인생이 소풍이셨소, 고행이셨소?"
"소풍이었지, 내 자식들 다 만나고 가는 기가 막힌 소풍이었지."
이 대사를 한 글자로 빠짐없이, 우리 집 미니언즈 세 꼬마들에게 그대로 전하고 싶습니다.
맘디터의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