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세 친정엄마는 중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중학교 과정 2년, 고등학교 과정 2년인 학력인정 학교인데, 학급 회장 선거도 하고, 소풍도 가고, 어린이 대공원에서 백일장 대회도 합니다. 엄마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심각하게 말씀하시는데, 저는 매번 웃음을 참고 진지하게 듣는 척하느라 고생합니다.
하루는 엄마네 담임 선생님께서 조회 시간에 학교의 어떤 행사로 하루 휴업을 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엄마는 학교를 하루 쉴 수 있다는 소식에 너무 기뻐서 박수를 쳤습니다.
엄마: "너라도 기쁘지 않겠니?"
나: "학교 하루 쉬면 정말 좋지"
그런데 엄마 저 편에 앉아 계신 80대 어르신께서 "하나라도 더 배워야지, 하루 쉬는 게 뭐가 좋다고 쯧쯧" 엄마를 보시고 혀를 차신 겁니다. 엄마는 순간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고 합니다ㅎㅎㅎ
한 학년마다 학급별 50명씩, 많은 반이 있어서 소풍을 나눠서 갔습니다. 엄마네 반은 뚝섬을 갔는데, 얼굴에 스티커 붙이기 게임을 했습니다. 그 게임에서 엄마와 학급회장 할머니가 1, 2위 전을 벌였고, 결국 동점에 가위바위보를 해서 엄마가 1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1등 우승 학생에게 주어진 선물은 식용유였습니다. 엄마는 그 식용유를 소중히 품에 안고 왔습니다.
엄마는 수업시간에 많이 졸렵다며, 평생 드시지 않던 초콜릿과 사탕 등이 저희 집에 있는지 물어보십니다. 집에 있는 걸 싸 드렸는데, 며칠 후에 여쭤보니 보온물병에 미역국을 싸갖고 가서, 졸릴 때마다 한입씩 마시니까 잠도 깨고 좋다고 합니다.
큰 아이 중간고사 기간과 엄마의 중간고사 기간이 겹쳤습니다. 시험을 보고 와서 큰 아이가 펑펑 울었는데, 저녁 늦게 집에 들르신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이고, 국어를 아깝게 한 문제 틀렸다", "그래도 한문은 다 맞았어", "수학은 부등호를 잘못 써서 한 문제 틀린 것 같아"라고 아까운 마음을 토로하십니다. 저는 엄마와 대화하며 큰 아이 눈치를 슬쩍 보았고, 아이는 할머니의 시험 성적을 곰곰이 듣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저희 엄마라도 시험을 잘 봐서 조금은 기뻤습니다. 이 무슨 그림이란 말입니까ㅎㅎ
며칠 전에 엄마와 함께 속초에 다녀왔습니다. 엄마는 외옹치항의 하늘바닷길을 걷다가 갑자기 미술수업 이야기를 하십니다. "백합을 그리는 수업이었어. 색칠을 하는데, 선생님께서 아름다움 피아노 연주곡을 틀어주셨어. 예술은 그런 건가 보지?" 엄마의 질문이 고차원적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ㅎㅎ
열 살 막내가 외할머니에게 물어봅니다.
"할머니는 무슨 수업이 제일 좋아? 나는 체육수업!"
"할머니는 체육 수업이 제일 싫어."
"왜?"
"관절체조를 시키는데 너무 힘들어서, 아무리 따라 해도 잘 안 돼"
"할머니, 챗 지피티 수업 알아?"
"뭐라고?"
"챗 지피티!"
"뭐라고? 찝찝티?"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저와 남편은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엄마는 가끔 "내가 과연 졸업을 할 수 있을까?" 혼잣말을 하십니다. 저는 겉으로 엄마 나이 이팔청춘이라고 호언장담 하지만, 사실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지인 우인들의 부모님 부고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70대 중후반, 80대 초반인 친구들 부모님의 병고와 부고를 들으며, 그 일이 언젠가 제게 예고 없이 닥칠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엄마네 학급은 수업 전에 담임 선생님께서 전체 출석을 부른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한 어르신께서 손을 들고 건의를 하셨습니다.
"선생님! 50명 출석을 부르려면 5분이나 걸리는데,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엄마 학급에 계신 모든 어르신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분명 한계가 있음을 매 순간 느끼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을 무척 소중히 여기고 계셨습니다.
집에 와서 아이들을 보고, 학교 영어숙제를 해야 한다며 서둘러 귀가하시는 71세 친정엄마의 모습을 뵈며, 삶이란 내가 소중히 느끼는 것들을 정말 소중히 여기는 작은 행동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엄마는 어제 처음으로 학교 음악 선생님의 동문 연주회 참석을 위해 클래식 공연장도 가셨습니다. 만약 제가 클래식 공연을 가자고 하면, 알지도 못하는 클래식을 내가 왜 가냐고 하셨을 텐데, 중학생인 엄마는 음악 선생님의 공연에 선생님이 초대권까지 주셨으니, 비록 어려운 음악이지만 학생이 당연히 참석해서 감상해야 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생각할수록 참 기특합니다.
엄마네 반 소풍 단체사진을 보았습니다. 다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70대, 80대에 중학교 공부를 시작하신 위대한 여정의 주인공들. 같은 반 학우들이 서로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를 보내는 많은 에피소드들도 넘쳐납니다.
어느 날 한 어르신께서 담임 선생님께 질문을 하셨습니다.
"선생님, 왜 저희 노인들을 이렇게 열심히 가르쳐 주시나요? 정부에서는 왜 이런 지원을 하나요?"
"여러분 중에 정말 위대한 인물이 탄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저희 엄마께서는 물개 박수를 쳤다고 합니다.
불교에서 설하는 윤회, 기독교에서 설하는 천국을 떠올리며, 이 노력들이 인이 되어 다음 생에는 모두 교수님, 박사님으로 태어나시길, 그리고 천국에서 박사모를 쓴 위대한 인물로 활약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둘째 아이가 열 살 때 학교에서 배워온 <꿈꾸지 않으면> 노래 가사로 맘디터의 글을 마칩니다.
<꿈꾸지 않으면> 가사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하네
아름다운 꿈 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가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린 알고 있네 우린 알고 있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