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를 앞둔 10월 2일은 남편의 생일이었습니다. 저녁에 미역국을 끓이고 새우를 찜기에 넣고 익히고 있는데 남편이 도착했어요. 그런데 엄청 큰 꽃바구니를 들고 있는 겁니다. 깜짝 놀라서 물어보니까, 이웃에 사는 회사 임원이 자신의 생일선물로 받은 꽃바구니를 가족여행 관계로 남편 차에 넣어놓았다고 합니다. 꽃이 예쁘기도 하고, 남의 꽃다발을 덤으로 받은 기분에 약간 얼떨떨했습니다.
그래도 가만히 바라보니 무척 기분이 좋아집니다. 먼 길 돌고 돌아서 우리 집에 도착한 꽃다발에 고마웠습니다. 집 앞에 오픈한 오뎅바에 가서 생맥주도 마셨습니다. 시원한 생맥주 한 입에 기분이 날아오릅니다. 그런데 연이어 나오는 새끼손가락 길이의 닭꼬치에 실컷 날아오른 기분이 바로 급착륙합니다.
저는 올해 46세인데, 연초에 갱년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정말 요란한 갱년기입니다. 자다 일어나면 손도 떨리고, 모든 일에 괜히 서운하고, 손가락 마디마디 통증이 심해져서 온갖 병원을 돌아다녔습니다. 류머티즘 내과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산부인과에 가보라고 권유해서 부인과 진료를 받았더니, 에스트로겐 수치가 0에 가까운 바닥입니다. 또 같은 고민이 시작됩니다.
"아니, 갱년기도 왔는데, 그럼 나는 언제 철이 드는 걸까?"
철이 드는 어른을 뛰어넘어 바로 할머니가 될까 봐, 아니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렇게 철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7일~9일 부산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1일 차 해운대 시장 상국이네 떡볶이-해운대 암소갈비-파라다이스 호텔 928호- 호텔 Bar
2일 차 해목 장어덮밥 - <울지 마 톤즈> 이태석 신부님 기념관-유엔기념공원-본동식당 가자미회-영도포차-송도 메리어트 호텔 1801호
3일 차 울산 언양방문 진미불고기-언양중심 팥빙수-서울도착
7일은 동생의 생일이었는데, 호텔에서 구입한 케이크를 들고 칵테일 바에 들어갔습니다. 케이크를 덜어먹을 접시를 세팅해 주시는 것도 감사했는데, 생일을 축하하는 미역국과 꼬치전까지 차려주셨습니다. 칵테일과 함께 먹는 기장미역국과 꼬치전은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연년생인 동생과 저는 다혈질, 이중인격 아버지로 인해 정말 고통스러운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해님달님, 장화홍련의 주인공들이 겪는 고통이 동화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자매는 유독 우애가 깊고, 지금도 단짝친구처럼 지냅니다. 동생 앞에 차려진 예쁜 식탁이 너무 기뻐서 물개박수를 몇 번이나 쳤습니다.
영도 메리어트 호텔 1801호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작년과 완전히 다른 풍경입니다. 변덕스러운 바다날씨 덕분에 햇살과 비가 계속 교차하다 보니 바다는 은색과 금빛을 오갑니다. 무채색의 은빛바다보다 한줄기 햇살의 금빛바다가 제 마음을 물들입니다. 바다 위의 배처럼 내 자신이 가을의 금빛에 물드는 상상을 해봅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언양불고기 골목을 찾아갔습니다. 진미불고기라는 백반기행 맛집에 방문했는데, 언양불고기는 그동안 제가 알던 불고기에 대한 모든 고정관념을 깨는 감탄의 순간이었습니다.
달콤한 간장 불고기가 아니었습니다. 양념이 불맛과 육향 뒤에 숨어서 고개만 빼꼼히 내미는 듯한 은은한 향과 맛. 대식가인 저를 제외하고 세 명 모두 소식가인 우리들은 무려 5인분을 먹었습니다.
언양불고기 골목 안에 자리 잡은 팥양갱집이 눈에 들어옵니다. 찌리릿 느낌이 와서 팥을 검색하니 이 골목 안에 팥 맛집만 여러 군데입니다. 터질듯한 배를 두들기며 언양중심이라는 팥빙수 맛집에 들렀고, 당분에 찌들지 않은 팥 맛 그대로의 빙수를 먹었습니다. 계산을 하는 직원분께
"어떻게 이렇게 안 달고 맛있어요?" 물어보니
"그렇게 맛있어요?" 저에게 반문을 합니다. 핫!
"네, 달지 않고 팥의 깊은 맛 그대로예요!"
"아, 노인분들이 워낙 많다 보니 그분들의 입맛에 맞춰서 그런 것 같아요."
아~ㅎㅎㅎㅎ
양갱집도 들러서 물어보니, 팥 농사를 직접 지어서 팥 고유의 풍미를 살린 맛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이렇게 부산 여행은 서울로 돌아오는 언양에서 화려한 대미를 장식하였습니다.
지난 8월에 아이들과 해운대에 왔고, 그래서 부산 곳곳에 아이들과 보낸 추억이 물들어 있습니다. 남편은 여행 중에도 아이들 얼굴이 순간순간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8월에 낯선 곳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지혜로워지고 의젓해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인간의 유전자는 굉장하다는 감탄을 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도착하니 삼 남매 모두 씩씩한 얼굴로 맞이합니다. 밤에 잠들기 전에 막내에게 괜찮았냐고 물어보니까 그제야 눈물이 터집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우리 씩씩한 둘째는 아주 실용적인 용건이 생길 때만 전화를 하고, 첫째는 중간중간 엄마 아빠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체크합니다. 삼 남매는 이렇게 개성이 뚜렷합니다.
집에 남아 있는 것도 시간여행이고, 멀리 떠나는 것도 공간여행입니다. 아이들은 시간여행 속에서 3일 만에 쑥 컸고, 저와 남편은 공간여행 속에서 좀 더 철이 들어서 왔습니다.
제 마음 위에 지구별 곳곳을 물들이며 그 푸르딩딩한 초록의 여름에서 금빛 가을로 한걸음 한걸음 넘어갑니다.
- 맘디터의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