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곰들은 너무 잦은 엄마의 여행이 지루해서 이제는 집에 남으려고 합니다. 외할머니와 놀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존중하고, 저와 남편 둘이 춘천으로 출발했습니다.
도로가 막힐까봐 운전하면서도 조마조마했지만 바퀴는 멈추지 않고 계속 굴렀고, 강촌 부근에서 마음 놓고 남편과 운전을 바꾸었습니다.
강촌 부근에서 남편과 운전을 교대하는 데 한 눈에 들어온 풍경
남편과 둘이 여행을 가며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는 우리 부부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남편 회사 사람들의 성격분석, 아기곰들에 대한 각자의 생각, 내가 최근에 어떤 전문가를 만나서 무슨 대화를 했는지 서로 허심탄회하게 대화합니다.
드디어 우리의 수십년 단골집인 1.5 닭갈비 본점. 첫번째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항상 주문하는 대로 닭갈비 2인분, 우동 및 고구마 사리를 추가합니다. 1.5 닭갈비를 좋아하게 된 후부터 서울에서 먹는 닭갈비는 떡볶이 맛이 느껴집니다. 먹는 동안에는 서로 대화가 거의 없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부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는 맛보기 힘든 - 달지 않은 닭갈비
배를 채웠으니 부지런하게 출발합니다. 두 번째 목적지는 대룡산에 위치한 춘천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입니다. 활공장이라고 표현하는데, 춘천에 머무는 하늘과 강물, 산과 들, 구름과 도시, 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 곳은 군사지역이라 네비게이션에 주소가 입력되지 않아서 근처 마을 주소를 찍고 그곳부터 험한 산길을 차로 한참 올라가야 합니다. 제가 남편 없이 혼자 간 적이 있는데, 14년 무사고 운전 경력자도 진땀을 빼며 올라가야 하는 난코스입니다. 남편이 운전하는 걸 지켜봤는데 저속기어와 일반기어를 10초마다 한번씩 바꾸네요. 차가 버거워하는 구간들이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조심히 운전해서 대룡산 1활공장에 먼저 도착합니다. (우리는 풍경만 바다보는 여행객입니다)
대룡산 춘천패러글라이딩 제1활공장
대지보다 하늘이 가깝게 느껴지는 1활공장입니다. 저는 여행을 할 때, 하늘에 가까울 때만 느낄 수 있는 그 해방감을 쫒아다닙니다. 그래서 제주도를 유독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바다도 중력의 해방감을 주는 공간이고, 강과 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춘천에서는 이 곳이 바로 그 장소입니다.
잠시 후에 1활공장에서 내려와 차를 몰고 샛길로 들어서면 2활공장이 나타납니다. 2활공장은 춘천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데, 지금 어느 산이 파괴되고 있고, 구름이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춘천에서 학교를 나온 남편의 반은 춘천사람입니다. 춘천 마라톤을 좋아하고, 춘천 음식들과 도시의 고요함을 즐깁니다.
대룡산 춘천패러글라이딩 제2활공장
춘천을 바라보며 자신의 대학시절을 떠올리고 있을 남편
대룡산에서 내려오는 데 산이 얼마나 깊은지 우리 올랭이의 바퀴가 산의 흙을 뭉개는 느낌이 전해져 옵니다. 작은 바퀴로 이렇게 힘든 구간을 씩씩하게 올라오는 우리 차가 기특하면서도, 산의 허파 같은 곳을 지나는 느낌이 들 때에는 남편도 저도 숨을 죽이게 됩니다.
대룡산의 숨소리가 들리는 깊은 숲 속
이제 오늘 여행의 마지막 코스. 춘천 이디야 소양강점을 갑니다. 오후 3시 전에는 출발해야 경춘국도의 정체를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춘천 여행은 늘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저는 도로의 정체를 최대한 피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좋은 여행을 피곤한 시간으로 기억하는 원인 중에 하나가 도로정체더라고요ㅎㅎ
이디야 소양강점에 도착했습니다. 남편은 주문을 하고, 저는 제가 지난 겨울에 원고로 만나 보았던 이디야 뒤의 정원을 향해 걸어갑니다. 정원을 향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긴장되었습니다.
이디야 춘천 소양강점
저는 이 정원의 조경 프로젝트를 진행한 서혜란 가드너님과 작년 겨울에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4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였고 원고 수정을 위해 그 후에도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동네에서 장사가 잘 되는 화원을 했지만 꽃을 자르는 게 싫어서 정원사가 되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꽃을 자르는 직업에서 꽃을 땅에 심는 일로 직업을 바꾸신 겁니다.
제일 마음에 남는 건 정원을 조성하고 나면 그 정원의 어딘가에 내 마음의 일부를 심어놓고 나오는 것 같다는 말씀입니다. 화분들이 멋있게 잘 진열되어 있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풍경일 거라고 상상만 했는데, 직접 와서 정원을 목격하니 '굉장해'라는 감탄사가 제 생각을 다 담아내지 못하길래.. 말을 그냥 꿀꺽 삼켜버렸습니다.
정원은 4계절의 햇빛과 그늘, 물과 바람을 계산해서 조성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자신이 예쁘다고 느꼈던 꽃들을 심으려고 합니다. 가드너는 그 땅의 바람과 햇볓에 대해 클라이언트에게 설명하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처럼 느끼겠지요.
그런데 정원에 와 보고 알았습니다. 정원은 꽃과 나무의 공간이 아니라, 꽃과 나무를 떠받치는 햇볕과 바람, 구름과 물의 힘으로 지탱하는 공간이라는 걸 말입니다. 정원의 아름다운 꽃과 나무는 태양과 바람, 물과 구름이 만들어내는 표면적인 작품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서혜란 가드너님과의 그 짧은 시간이 저를 정원이라는 공간에 눈 뜨게 합니다.
이 아름다운 정원 위를 지나가는 구름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2시 30분에 시동을 걸고 집으로 출발합니다. 4시 30분에 집 도착으로 나오네요.
남편은 운전을 하는 저를 향해 "테슬라 자율주행 시작"이라고 자주 놀리고, 제가 "저는 쉐보레 올랭이인데요" 라고 받아칩니다.
2시간 동안 남편의 코고는 소리와 가요를 들으며 오는 데, 북부간선도로에 진입하기 전에 아빠가 생각납니다. 어제가 친정아버지의 생신인 걸 깜빡했습니다. 아버지, 할아버지 모두 춘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분이고, 아빠의 딸인 저의 혈관에도 춘천의 바람이 구름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전화를 연결합니다.
"아빠, 어제 생일이었네! 미역국 먹었어?"
"내 생일인 것도 몰랐어 허허"
아버지와 십수년 전에 재혼하신 아주머니께 야속했지만, 춘천에 와서야 몇 달만에 아빠를 기억해낸 제 자신이 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견디고 다시 오늘 하루를 아무렇지 않게 씩씩하게 살아내야 또 모든 일이 괜찮은 일로 되겠지요.
시간에 맞게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투표만 하면 끝납니다.
여행을 하면 할 수록 집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모든 여행에 꼭 들어가 있는 중간 목적지. 가장 중요한 목적지가 바로 집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 집으로 향하는 여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