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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May 06. 2023

여행부부의 횡성 청태산자연휴양림 캠핑

아이들을 위한 여행에 아이들 없이 캠핑을 가다

남편은 어린이날 이벤트로 청태산 자연휴양림 캠핑을 예약했다, 캠핑족들은 알테지만 국립자연휴양림 캠핑사이트를 주말에 예약하는 건 정말 힘든데, 이번에 운좋게 추첨된 것이다. 들뜬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캠핑계획을 말하니, 반전 ㅜ ㅜ 세 명 다 집에 있겠다는 거다 ㅜ ㅜ 이미 아이들은 자신들을 돌보아줄 외할머니와 친할머니가 언제나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큰 아쉬움이 없다. 이렇게 아이들을 위한 여행이 아이들 없는 여행이 되었고, 얼떨결에 우리 부부만 캠핑을 떠났다.

비가 정말 많이 온다. 바람도 세차게 분다. 아침 7시에 떠나서 강릉에 위치한 한식부페에서 밥을 먹었는데, 생선을 좋아하는 나는 가자미를 5마리나 먹어버렸다. 남편은 오랜 내 별명인 너구리가 떠올랐는지, "너구리가 생선을 좋아하나? 고양이였나?"라는 실없는 말을 한다. 나는 생선을 먹다가 남편을 말없이 쳐다본다.14년차 부부는 그렇게 한동안 말 없이 밥만 먹는다.


강릉 송정해변에서 대지를 삼킬듯한 거센 파도를 한참 바라보다가 우리의 목적지, 청태산 자연휴양림으로 이동한다.

청태산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산이다. 붉은 흙의 뜨거운 산.

붉은 흙은 다양한 식물들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키워내는 힘이 있다. 청태산은 작은 이끼부터 솔방울, 층층나무, 거대한 수목까지 모두들 가장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부부를 맞이해 주었다.

차 안에 놓인 토토로 인형이 청태산에 내리는 비를 피하고 있다.

청태산에는 정말 많은 비가 온다. 문제는 바람이다. 이미 몇가족은 텐트를 치다가 실패하고 철수하는 중이다. 나랑 남편은 공인된 프로허당러인데, 특히 남편이 설치한 텐트는 항상 힘이 없고 한번은 완전 고정된 텐트가 바람에 데굴데굴 날라간적도 있다. 그러나 나도 허당이기 때문에 남편이 어떤 실수를 해도 절대 잔소리를 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내 주제를 알기 때문이다~

남편은 텐트를 완성하고, 나는 짐을 나른다. 한참동안 비바람과 싸운 우리는 체력이 바닥났고, 이불에 뻗어버렸다. 나는 잠들고 남편은 짐 정리를 한 것 같다.

눈을 뜨자마자 우리집 래브라도 리트리버 오레오처럼 음식에 꽂혀서 잠도 덜 깬 상태로 고기를 굽는다. 프라이팬 가득 안심 등심을 올려놓고 그냥 막 휘저었다ㅎㅎㅎ

(굽는 거랑 휘젓는 거랑 맛의 차이를 못느끼는 1인)

둔내 마트에서 곰취를 샀는데, 씻으러 가는 게 또 귀찮다고 하니까 남편이 그냥 먹자고 한다 ㅜ ㅜ 우리는 서로의 귀차니즘을 깊이 존중했고, 앉은 자리에서 한걸음도 안옮기고 손만 뻗은채 냄비에 물을 붓고 끓여서 파채와 곰취를 2차로 막 휘저어서 헹구었다.

나는 쌈채소를 싫어하는데 유일하게 곰취를 좋아한다. 고기향이 가려지는 걸 싫어해서 쌈장도 안먹지만, 곰취의 향은 나를 너무 행복하게 한다. 곰취 잎의 모양도 향도 맛도 딱 내 취향이다. 곰취에게 감탄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데, "당신이 곰이라서 곰취가 맛있는거 아닐까?"라는 말을 할 거라는 예상에 말할 틈을 아예 주지 않기로 했다. 결국 나는 저녁을 먹자마자 아까 장을 본 마트를 다시 가서 곰취를 싹쓸이 해왔다ㅋㅋㅋ


지금 텐트는 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나무에서 이틀동안 내린 빗방울이 투두투두 하면서 떨어진다. 아까 짐을 나를때 비에 옷이 다 젖어서 아직도 몸이 덜덜 떨린다. 그런데 아침에 챙겨온 오래된 패딩을 입고 나니, 몸이 따뜻해진다.

이렇게 여행을 오면, 원래 뚱뚱한 나를 더 뚱뚱하게 만들어서 속상하게 하는 이름없는 패딩도 너무 고마운 방한장비가 되고, 집에서 쓰지 않는 낡은 스탠 팬도 훌륭한 조리도구가 된다. 자전거에 매달려있는 미니전구도 우리 텐트의 유일한 불빛이 되어준다.


호텔이나 콘도에서 내 자신에게 여유를 선물하는 시간도 좋지만, 내 생활속의 이름없는 작은 부품들이 내게 자신의 힘과 의미를 드러내고, 내가 그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이 힘든 캠핑이 너무 좋다.

인생과 자연, 사물의 새로운 의미를 알려주는 여행의 시간에 늘 감사함을 느낀다.


이렇게 나는 청태산의 바람과 숲을 덮고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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