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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Mar 02. 2024

1회 : 태해설무 서문

이야기에 들어가며 - 서문

'나'는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얼마나 많은 마음이 모여야 '나'라는 한 사람으로 완성되는 걸까?

내가 죽음을 맞이하면 나의 마음도 죽음을 맞이하여 사라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알 수도 없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아. 

오늘 하루, 내일 하루 잔뜩 꼬인 삶을 풀어내기도 힘든데, 내가 어떻게 죽음까지 풀어내겠어. 나를 짓누르는 가난에 매일 허덕이며, 하늘을 향해 땅을 향해 한숨만 내쉬는 내가 뭐하러 그런 짓을 하겠어. 돈도 되지 않는 걸 말이야. 돈 없이 태어난 내가 필연적으로 평생동안 땅만 바라보며 돈만 쫓아다니고 있다는 당연한 인과인데, 가난한 내가 풀어내는 이 이야기도 내 가난을 닮았을까? 

어쩌면 맑은 눈망울로 가느다란 흰 손가락을 바람처럼 움직이며 침실이나 서재에서 자연의 섭리대로 흐르는 이야기가 당신이 듣기에 편한 이야기는 아닐까.

벽돌을 나르고, 돌에 진흙을 바르고, 가마가 꺼지지 않도록 잠든 시간 외에는 불을 지켜봐야 하는 고달픈 내가, 마디가 뚝뚝 꺾인 굵은 손가락으로 땅을 파내는 것처럼, 절벽을 맨 손으로 오르는 것처럼 쓰는 이 이야기가 당신이 듣기에 불편하지는 않을까. 


몇십 년 전, 내가 무언가에 홀려서 하늘 구름까지 닿는 높은 산에 올라간 적이 있어. 수십 일을 걸으며 올라가는데, 몇 시간은 비가 쏟아지고, 몇 시간은 해가 뜨고, 몇 시간은 구름이 나를 삼켜버리니까 나중에는 내가 누군지도 까먹겠더라고. 뼈와 가죽만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어가는 느낌이야. 뼈가 앞으로 가면 내 가죽이 따라가고, 가죽이 먼저 나아가면, 녹아내리는 모습에 놀라서 내 뼈들이 가죽 안으로 얼른 들어갔지. 

아주 가끔씩 사람을 마주쳐도 당신, 사람이 맞냐고 물어보고, 가축을 만나면 그 안에 신이 깃들어 있는 것만 같아서 절을 하고 싶더라고. 나중에는 그 산에 대한 존경심 따위 낭떠러지에 던져버리고, 산을 휘감는 수천개의 계단을 밟아 뭉개버렸어.


어느 날 저녁, 허름한 산 속 여관에서 잠을 자게 됐지. 분명 저녁이었는데, 부엌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몰려드는 거야. 저 편에는 분명 빛이 있는데, 문턱을 넘는 순간 모든 빛이 힘을 잃고 사라지더라. 내가 도대체 왜 남의 부엌을 들어간건지 알 수가 없어. 배가 고픈건지, 외로웠던 건지, 그냥 널부러지고 싶었던 건지 알 수가 없네. 뭐에 홀린 거겠지. 그리고 그렇게 허름한 집 아궁이에 그 큰 불을 지핀다는 게 말이 되냐고. 불이 아궁이에 가득 훨훨 차오르는데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 하나도 없이 그 불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더라고. 

다만 한 가지는 알았어. 그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옆 모습의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옆 모습만으로 존재하는 사람은 없잖아. 반쪽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 동안 내가 만난 귀신은 대부분 얼굴을 정면에서 보여주지 않고 옆으로 보여주더라고. 내가 사람인데 귀신을 보는건지, 내가 귀신이 되고 사람을 보고 있는건지 알게 뭐야. 무릎 뼈 마디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지옥불도 평범해 보이던 걸. 


그리고 서로 사용하는 말이 다른 먼 지방에 가서 그 반얼굴 사람이랑 나랑 말이 통한다는 게 말이 되? 그 사람이 귀신이거나, 내가 귀신이거나 둘 중에 하나인거지. 그 반사람이 경문을 읊은건지, 지어낸건지, 어디에서 들은건지 알 수 없지만, 그 날 그 아궁이 앞에서 들은 이야기가 나 혼자 품고 있기에는 너무 슬프고, 난해하고, 알 수 없는 기호로 가득해서 당신과 이 난해함을 나누고 싶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우리의 인식이 닿지 않는 저 먼 세계, 혼란한 시대, 그 어느 때. 

죽은 사람의 마음들이 다다르는 특별한 숲이 있었어. 

한 사람을 평생동안 지독하게 지배하는 마음이 다다르는 죽음의 숲. 


평온한 마음들이 다다르는 인의 숲

기쁨과 감사함이 도착하는 천의 숲

지혜로 가득 찬 연의 숲

슬픔과 분노로 방황하는 깊은 라의 숲


가마터 주위에 굴러다니는 나뭇잎을 물에 끓여 마셨더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아프네.

이 예민함이 싫지만, 생각해보면 이 예민함 덕분에 이 이야기를 온전히 간직하고 들려줄 수 있어서 기뻐.

나도 당신에게 등퓨돌리지 않을게. 당신도 이 이야기가 끝날때까지 내게 등 돌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내 인생을 관통하는 한 줄기의 가난도 이 이야기 앞에서는 못본 척 하겠다고 약속해.

그럼 이제 시작할게.

귀신인지 사람인지 산인지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들려준 이야기.

가난이 또아리 틀고 있는 가마터 안에서 흘러나오는 네 개의 숲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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