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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Mar 09. 2024

2회 : 인의 숲과 연결되는 길

어제는 동생과 빵을 구워 먹었어. 우리는 식사 시간 내내 아무 말이 없었지. 거친 빵을 뜯어 먹는 동생의 손에 상처가 생겼는데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내일 물어보기로 했어. 그 다음 내일, 또 다른 내일이 될 지도 모르지. 어쩌면 영원히 동생 손의 상처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지도 몰라. 

말을 하면 내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아. 말 대신 글을 사용하면 좋지만, 나는 글을 배운 적이 없어. 그래서 읽을 줄도 모르지. 글을 쓴다는 상상도 못할 일이야. 글이라는 종이에 새겨지지. 종이가 종이를 덮고, 다음 종이를 다음 종이가 덮고.. 종이에 새겨진 글들은 자신을 덮고 있는 거친 종이가 답답하지는 않을까? 아니면 자신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박제하는 그 두꺼운 종이가 뿌듯하고 자랑스러울까?


이야기는 바람과 같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바람처럼 분명히 어딘가에 도착할텐데 우린 그걸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어. 자유롭다는 건 흔적이 없다는 거야. 그래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이 이야기는 당신에게 자유를 줄 지도 모르지. 


<태해설무> 이야기에 나오는 네 개의 숲은 누군가 본 적도 없고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누구도 그걸 찾아나서야 할 필요가 없었어. 죽으면 도착하는 그 숲을 굳이 살아서 갈 필요가 없잖아. 네 개의 숲도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어. 다만 전쟁이 치열한  어느 시대에는 분노의 숲이 커지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한 어느 때에는 평온의 숲이 다른 세 개의 숲보다 크기가 더해진다는 이야기가 바람처럼 떠돌았지.  

 네 개의 숲은 살아 움직이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었던 걸까. 매일 화만 내는 사람도 없고, 죽을 때까지 아무 고통 없이 편안하기만 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네 개의 숲은 절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사람들 인식의 너머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었지.


모든 왕들은 남몰래 간절히 선택을 했어. 부디 평온한 인의 숲으로 들어가고자 했지. 그들은 인의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자 했고, 자신이 도달하기 어려운 자기 마음의 밑바닥까지 들어가, 그 마음의 빗장을 크게 열었어. 황량한 마음의 구정물 위에 덩그러니 놓인 마음의 더러운 빗장을 열면, 처음에는 춥고 사나운 소금기 가득한 짠 바람이 불어오지. 온 몸과 마음을 소금에 절이는 것처럼 온갖 오물이 내 몸의 모든 구멍 밖으로 흐르다가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소금기가 사라지고 인의 숲에서 바람이 불어왔지. 모든 왕들은 인의 숲에서 불어오는 그 바람을 통해 자신과 인의 숲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지. 

왕이 자신의 마음 속에 만들어 놓은 그 통로는 왕이 되려고 하는 목적인 동시에 훌륭한 왕이 되는 수단이었어. 


백성은 왕이 죽고 난 후에 세상에 불어오는 인의 숲의 바람을 느끼며, 자신들의 훌륭한 왕이 인의 숲에서 안식을 찾았음을 알 수 있었어. 

'당신은 우리의 진정한 왕이다' 

이렇게 왕이 맞이하는 죽음조차도 인의 숲을 통해 극진한 칭송을 받는 시대였던 거야. 


사실 누더기 옷을 걸친 백성들도 자신들의 죽음만큼은 인의 숲에 닿기를 진심으로 원했어. 왕과 백성은 살아서 숨쉴 때는 잠든 집과 먹는 음식, 입는 옷, 물 한모금까지 하늘과 땅처럼 닿을 수 없었지만, 죽음만큼은 똑같은 곳에 도착하는 믿음.. 바로 그 믿음시대, 사람들 모두당당한 존재로 만들었지. 


네 개의 숲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죽을때까지 혀를 놀려도 부족할거야. 삶에 대한 이야기는 척박하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이 도착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를 현실 너머의 진실로 이끌지. 

그래서 나는 삶 속에서 죽지 않고, 죽음 속에서 삶을 선택할래. 살면서 죽어갈건지, 매일 죽음을 느끼며 삶을 향해 걸어갈건지,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매 순간 선택해야 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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