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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 Aug 20. 2016

[러시아] 멋쟁이 지하철 M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만난 몇 가지 장면

서울에서는, 웬만하면 버스나 택시를 탄다. 태생적으로 지하철이 싫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지하철에 반했다. 내가 살면서 원한 딱 그런 지하철이었다. 일단 모스크바에서 찍은 지하철 사진들을 꺼내본다. 대부분 모스크바 사진이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진이 한 두장 섞여있을 수도 있다. 


1. 도시경관을 해치지 않는 지하철 표지 - M


극도로 절제된 지하철 표지. 몇 호선인지, 무슨 역인지도 표시하지 않는다. 정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다. 빨간 M. 지하철 노선 색상과 상관없이 같은 색깔 같은 모양의 한 글자. 그 한 글자가 기둥 위에 붙어있다. 물론 모든 역이 그렇지는 않고 구도심 경관을 고려한 면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본을 안다 싶었다. 

한국 지하철 표지도 죄다 이렇게 바꿔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알록달록 색감 싫어요. 하지만 지하철 표지만 바꾸면 뭐하나 온 거리가 조화 따위 고려하지 않는 과장된 간판 투성이인 것을. 언제나 화려함보다 어려운 건 절제다.

멋지다 M!

작게 쓰여있다고 안 보이는 게 아니다. 여기에 이 M들이 잘 안보이는가? 잘 보인다. M,  멋지다 M! 마음에 들어서 저 M자만 똑똑 따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 호쾌한 에스컬레이터


두 번의 엘리베이터는 없다. 엘리베이터는 단 한 번 타는 것. 아무리 깊어도 엘리베이터는 지상에서 한 번에 내려간다. 바로 승강장을 연결하는 포스. 환승 시에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지 않는다. 승강장에서 승강장을 이동할 뿐, 에스컬레이터는 지하철 탑승 전, 하차 후. 딱 그렇게 한 번씩만 탄다. 놀랍다. 

그리고 모든 엘리베이터 끝에는 사람이 앉아있다. 이 역시 처음에는  광경이었다. 어김없이 부스에 한 사람씩 앉아 있다. 대체 왜. 계단이 없이 오로지 에스컬레이터만으로 이동하는 지하철 특성상 안전 문제라고 짐작할 뿐이다. 물론, 인건비가 싸거나, 민영화되지 않았거나 그런 계산도 되지만. 

게다가 이 에스컬레이터, 놀랍도록 빠르다. 한국보다 1.5배는 빠른 것 같았다. 덕분에 징그럽게 긴 에스컬레이터도 비교적 덜 지루하게 탈 수 있다. 

3. 1분마다 들어오는 전철. 


또 재미있는 것. 에스컬레이터에서 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바로 승강장으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 특성상 내려가다 보면 전철이 도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차가 들어오는 걸 소리 등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한국에서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뛴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는 뛰지 않는다. 

처음엔 신기했는데 전철을 타고 다녀보니 바로 이해가 되었다. 과장 없이 정말 1분에 한 대씩 온다. 한 대가 문 닫고 떠나면 아, 하는 순간 다음 전철이 오는 정도다. 오른쪽 전철을 타야 하나 왼쪽 전철을 타야 하나 하고 노선도를 더듬더듬 확인하는 동안 전철이 두 대가 지나간 적도 있었다. 신기해서 타이머로 시간도 재어봤다. 눈 앞에서 한 대가 문을 닫고 출발한 후 그다음 열차가 내 눈앞에 진입하는데 55초가 걸리더라. 

게다가 전철도 빠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전철 속도가 빠르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빠르게 느꼈다. 왜냐. 굉음을 내면서 달렸기 때문이다. 창문을 열고. 에어컨이나 환풍시설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만 개폐형 창문이 달려있었다. 여름날이었고 하니 칸칸히 창문이 열려있는 경우가 많았고 덕분에 대단히 시끄러웠다. 

4. 효율적 동선과 아름다운 역 내부


모스크바에 현지 관광 팸플릿을 보니 '메트로 투어'라는 것이 있었다. 몇 만 원 수준의 비용으로 가이드와 함께 모스크바의 아름다운 주요 역들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하는 투어인 듯. 시간이 맞지 않아서 신청은 못했는데 그런 투어 프로그램이 나올만한 역들이 곳곳에 있다. 역마다 내부 장식이나 기둥, 복도 형식, 조명, 천장 등에 차이가 있어, 보는 재미가 있다. 물론 내가 다녀본 역이 스무 개도 되지 않으니 외곽 역들은 또 분위기가 다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역들이 규모가 크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동선이 단순한 것도 장점이었다. 환승하는 방법도 일정한 페턴이라 역 내에서 헤멜 일이 없었다. 늘 탑승 플랫폼의 중간에 환승노선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영어로 역명이 표시되어 있지 않고, 알파벳 표기도 영어와 다른지라 역 명을 읽기 어렵다는 것이 단점이다. 하지만 그건 전철역의 죄는 아니다. 역명 표기가 러시아어로 최소한만 되어 있어 역 내의 깔끔함을 돋보이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 도시에서 많은 글씨는 대표적인 공해다. 역들이 아름답다고 느꼈던 건 장식적인 요소 때문도 있지만 문자가 부재하기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메트로 투어를 신청하지 못했던 게 지나고 보니 아쉽다. 보지 못한 역들도 많을 텐데. 모스크바에 자유여행을 가시는 분들에게 꼭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좀 시끄럽고 정신없지만 매력으로 넘치는 전철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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