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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 Jun 06. 2020

시작은 꽃길이었는데...

[서울 둘레길 완주기 2] 3코스 고덕-일자산 코스

3코스인 고덕-일자산 코스는 총 3개의 세부코스로 나눠져 있고, 2일에 나눠 걸었다.


5월 29일. 3-1코스


어느 멋진 봄날. 서울 둘레길 첫 도전에 나섰다. 난이도 '하'로 안내된 3코스를 골랐다. '하'는 8개 코스 중 2개뿐이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3코스는 그저 빛, 그저 천국이었다. 문명과 도시를 걷는 경험이었고, 꽃길과 포장길의 연속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서울 둘레길이었고, 그저 멀끔한 평지의 연속이었다. 특히 3-1은 서울 둘레길 21개 코스를 통틀어 가장 만만하고 예쁜 코스 3위 안에 들 것이다. 여기에서 시작한 덕분에 큰 오해를 안고 시작했다.

멋모르고 난이도 '상'인 1코스부터 시작했다면, 그것도 1코스를 하루에 완주하려고 했다면 이 여정은 시작과 동시에 종료되었을지도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그런 사람들 많지 않을까. 많을 거야. 부끄러워서 말을 하지 않았을 뿐! 하지만 부끄러워 말자. 이게 해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광나루역에서 나와서 바로 꽃구경하며 한강을 건너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서울시가 남모르게 언제 한강 공원 곳곳을 이렇게 잘 정비해놓았나 놀랄 뿐이었다. 서울 살면서 서울을 즐기지 못했구나. 한강변은 각종 공원과 부대시설로 가득했다. 인라인 연습장, 자전거 배우는 도로, 드론 날리는 곳 등 용도별로 나눠진 공간들이 곳곳에 있었다. 쭉 뻗은 공원길에 자전거 라이더들도 떼로 달리고 있었다.  


공원길을 벗어나니 사람이 너무 없었다. 평일이기도 하고, 일반적인 산책길이 아니어서 그랬을 것 같다. 게다가 암사동 선사유적지는 코로나 때문에 휴관이었다. 전반적으로 사람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길 뒤편에는 차를 세워놓고 낮잠을 즐기는 택시 기사들이나 중장비 기사들이 종종 보였다. 느릿느릿 도로 보수공사도 진행되고 있었다. 멍하게 걷다가는 둘레길 루트를 벗어나기 십상이었다. 고백하자면, 몇 번인가 엉뚱한 길로 갔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익숙하지 않은 트랭글(아웃도어 GPS앱)을 거듭 확인하면서 길을 찾기에 급급했다.

지금 생각하니 좀 우습다. 그 쉬운 길을 왜 헤매었을까. 둘레길 리본과 표지판의 규칙에 익숙지 않아서였을거다. 갈림길이 보이면 일단 멈춰야 한다. 고개를 들어서 오렌지색 리본이 날리는 걸 확인하고 움직이면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좀 피곤했지만 할만한 것 같았다. 다음날은 좀 일찍 나와서 3-2, 3-2 코스를 완성해보겠다고 다짐하면서 부은 다리와 뿌듯한 마음을 안고 귀가하였다. 귀갓길 포함, 이날 하루종일 약 2만 보 정도를 걸었다.


5월 30일. 3-2코스


3-2코스도 쉽고 근사했다. 명일공원에서 성내천 구간으로, 방이동 생태경관 보전지역까지 이어지는 코스다. 물론 생태학습관도 휴관 중이었다. 인적도 드물었다. 지나칠 만큼 조용한 산책길. 곳곳에 5월의 장미를 만날 수 있었고 이름 모를 들꽃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아직 더워지기 전의 날씨는 숲의 청량함을 즐기기에 제격이었다. 3-2코스가 끝나갈 때쯤, 이게 만만한 거리가 아니라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날 3코스를 마무리하겠다는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5월 30일. 3-3코스

3-3코스를 바로 이어 걸었다. 이 코스는 성내천에서 탄천 구간으로 잘 정비된 도시하천 구간을 따라 걷는 무난한 코스다. 이 길에 대한 감상을 요약하면 '송파구의 재발견'이었다. 송파구 참 살기 좋은 곳이구나 싶었다. 많은 시민들이 하천과 산책길 곳곳에 나와서 봄을 즐기고 있었다. 비록 마스크를 껴야 했지만 걷고, 뛰고, 운동기구를 사용할만한 도시형 공원 길이 몇 시간을 걸어도 끝나지 않도록 이어지는 것이었다. 정말 살기 좋은 곳인데 싶어서 어쩐지 아파트 이름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걷다 보니 전날의 피로까지 겹쳐서 본격적으로 지치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가서 저녁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무너졌고,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했다. 해지는 탄천은 근사했지만, 해지는 하늘을 즐기기엔 발목과 무릎과 허리가 후들후들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거의 울면서 걸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영혼은 어느새 저 하늘로 날아간 기분이었고 다리가 움직이는데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았다. 집...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리에 가득했다. 하지만 스탬프가 수서역에 있었다. 수서... 수서역까지 갈 수 있을까? 머리는 멍해지고, 어지러웠다. 마치 고행길을 걷는 수도자의 마음으로 물먹은 스펀지 같은 발을 한 발, 한 발 옮겼다. 수서역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했던 육교형 계단이 5월에 겪은 가장 큰 고난이었던 것만 같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당 떨어지고 탈수가 왔던 것 같다. 이른 점심을 먹은 뒤 변변히 먹지도 않고 걷기만 한 데다가, 화장실 갈 게 걱정돼서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던 것이다. 운동 초보자의 평범한 어리석음이었다. 걷기 운동의 기본적인 준비도 되지 않은 채 6시간을 걷겠다고 나온 것이었다. 무식이 용감이었다.

그래도 근성으로, 정신력으로 무식하게 걸어서 3코스를 무사히 완주했다. 하지만 아직 준비부족에 대한 교훈은 얻지 못한 상태였다. 진정한 교훈은 4코스에서 단단히 고생한 뒤에야 얻게 된다. 4코스 후기도 눈물로 쓸 예정이다.

서울 둘레길 8코스 중 하나를 최초로 완성한 이 날, 하루종일 3만 부를 넘게 걸었고 죽은 듯이 잠들었다. 저질체력으로 이까지 온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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