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둘레길 완주기 1] 양재 안내센터
시간 부자가 되었다. 해외여행은 글렀고, 코로나 시대를 위한 완벽한 계획이 생각났다. 바로 전국의 각종 둘레길 완주. 자연스럽게 생각난 게 서울 둘레길.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3.5코스를 걸었다. 지금부터 완주하는 그날까지 반쯤 울면서 걸은 둘레길 체험을 코스별로 나눠서 기록해두고자 한다.
사무직으로 만성피로의 세월을 보내고 나니 원래도 허약했는데 더욱 허약해졌다. 둘레길이라니, 체력을 키울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다. 지금 운동해서 코로나 종식 후에 줄기차게 여행 다닐 체력을 키운다면 얼마나 멋질까. 마음은 등산이었지만 현재 체력 상태로는 걷기 정도가 적당해 보였다. 그나마 가장 잘하는 운동이 숨쉬기와 걷기인데, 걷기도 조금만 오르막이 나오면 체력 딸려서 등산은 늘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총 8코스라고? 8번만 가면 되는 거야? 금방 끝내겠네. 총 157킬로. 얼마 안 되네. 게다가 서울은 길이 잘 되어있으니까. 더워지기 전에 5,6월 중에 끝내자.'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는 도전이 시작되고 금방 드러났다. 정말 뭘 몰라서 시작한 거였다. 걷는 내내 사기당한 기분이었다는 것을 미리 고백한다. 등산이잖아. 등산이잖아!
5월 28일 사전 준비
사전 준비와 스탬프북 수령을 위해서 양재 서울둘레길 안내센터를 방문했다. 안내 센터는 양재 시민의 숲 관리사무소에 위치하고 있고, 최근에 오픈했다. 시작 전에 안내센터를 방문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둘레길 완주를 계획하고 있다면 방문해서 설명을 듣고 질문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스탬프북은 공짜고, 스탬프 찍기가 주는 동기부여가 크기 때문에 꼭 챙겨가서 찍기를 권한다. 스탬프 찍기를 완성하면 완주증과 배지도 받을 수 있다.
물론... 여기도 진실을 알려주지 지는 않았다. 평소에 운동 따위 하지 않던 저질체력을 위한 안내 같은 건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지.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시작을 안 하는 게 아닐까.
안내센터 밖에서 얼쩡대자 사무실에 계시던 안내자 분이 번개처럼 나와서 설명을 시작하셨다. 둘레길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고, 기본적인 설명부터 해주셨다. 그리고 지도, 안내책, 사람들이 헷갈리는 구역에 대한 안내가 프린트된 종이 등을 받았다.
이 분 말에 따르면 아니 글쎄, 서울 둘레길을 백번 넘게 완주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백번... 지금 생각하니 그게 인간이 할 짓인가 싶은데, 그땐 '백번이라니 할만한 모양이네'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나도 봄에 한 번 하고 다음엔 가을에 한 번 해야겠어, 라는 어리석은 생각까지 하고 말았지.
"8코스긴 한데, 체력 상태에 따라 나눠서 가기도 합니다." 라며 코스별로 나눠진 표도 보여주었다.
이 표는 믿지 말자. 특히 저질체력들, 운동부족 허약한 사무직들 이런 거 보고 별 거 아니네 생각하지 말자. 얼핏 보고 두어 시간 걷는 거네? 반나절이면 한 코스? 같은 착각을 하기 쉽다.
아니다. 아니야. 왜 8코스를 21개 코스로 세분하였겠어. 21번에 나눠서 걸어야 하는 거였다. 그걸 모른 내가 어리석었다. 지금은 저기서 2시간 10분이라고 하면 자동으로 3시간으로 변환해서 읽는다. 하루에 세부코스를 2개 이상 걷는다? 거기서 1시간은 더 붙여야 함. 무엇보다 킬로수에 속으면 안 된다. 저기에는 속도를 급격하게 떨어트리는 요인인 오. 르. 막이 있다.
그땐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등산은 좀 힘들어서 그런데, 지도에 무슨 산, 무슨 산, 이렇게 쓰여있어서요. 혹시 산에 가는 건 아니죠?"
"등산 같은 건 없어요. 가는 길에 둘레길을 타긴 하지만 높아봐야 300미터 수준인 높이예요. 어렵지 않아요. 쉬운 길입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지금 생각하니 속은 거였는데. 문제 있으면 연락하라며 친절하게 명함까지 주셔서 가벼운 마음으로 안내센터를 나왔다. 지금은 죄 없는 그분한테 항의 전화하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그분은 죄가 없다. 완주하겠다고 온 사람들은 모두 튼튼한 사람들이었을 거야.
일단 길치니까 GPS앱을 찾아보았다. 혹시나 해서 깐 거였는데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허약체질 분 아니라 길치에게도 둘레길은 험난한 곳이다. 네이버 지도 같은 건 별 도움이 안 된다. 내가 선택한 건 트랭글. 다른 것은 써보지 못해서 비교는 못하겠는데, UI에 일단 익숙해지면 꽤 괜찮은 앱이었다.
그리고 나는 문과니까, 뭘 하기 전에 책을 읽고 앉아있다. 운동도 예외는 아니다. 뭘 실제로 하기 전에 뭐라도 읽어야 한다. 마침 예전에 구해둔 책 한 권이 있어서 정독하였다. 하지만 별로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실제로 걷기 시작하면서 "이 책도 사기야!"라고 외쳤다. 전부 편안하고 걷기 좋대. 아니야, 아니라고.
앞서 언급했지만 이 글을 올리는 시점은 약 3.5코스(세부코스로는 8코스)를 걸은 시점이다. 완주한 게 아닌데 쓴 이유는 글을 쓰기 시작하는 이유는, 기억하기 위해서다. 21코스를 다 끝내고 나면, 태평하게 '끝내고 보니 별 거 아니네요' 같은 태평한 소리를 할까 봐. 시작했을 때의 이 처참한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서, 스스로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일단 써 둔다. 그리고 저질체력으로 도전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혹시 위로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포스팅을 남겨둔다.
지금은 정말 힘들지만, 다 끝내고 나면, 아마 "정말 별 거 아니었어"라고 기억하기를 희망하며 첫 글을 마무리한다. 본격적인 폭염이 오기 전에 끝내보자! (나중에 이 자리에 완주 포스팅을 링크해두겠다.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