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지 않는 감기
-육체의 근육을 기르고 몸을 가꾸는 것처럼 마음에도 근육을 길러야 한다는 말-
오랜 시간을 원하지 않은 마음의 병을 갖고 지나온 것 같다.
결코 누구도 나에게 그런 일들을 당하기를 원하진 않았지만 의도치 않게 누군가로 인해 씻겨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게 된 상처를 받았고 그때 나는 너무 어린아이였다. 너무 멀리 와 버린 그때, 곁에서 상황과 처지를 들어주고 달래준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가끔 누군가에게 너무나 의지하고 싶어 진다. 묵혀둔 말들과 간직한 기분과 감정들은 어린 때에 멈춰있고 그 장면들과 함께 자랐다.
우울은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마음의 병이라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처방된 약을 먹거나 주사 한 대로 낫는 감기에 비유하는 것은 어쩌면 가벼운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잠시 괜찮다가 갑자기 다가오기를 반복하는 우울을 이런 비유로 괜찮다고 표현할 수가 없다.
억지로 괜찮은 척을 한다거나, 그런 마음 상태를 무시하고 방치를 하고 마주하지 않으면 마음은 더 물렁해지고 기운이 빠져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거. 계속해서 나에 대해 공부하고 내 우울 속에서 일어나는 상태를 알아채는 센스가 필요하다. 잠시 견딜 수 있는 약을 처방받기보다는 꾸준한 소통으로 마음의 근육을 길러야 한다.
사람마다 느끼는 마음의 병은 다르지만 내가 느꼈던 것은 불안이 압도적이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해칠 것 같은 불안감과 나를 감시하고 관찰하는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불편하고 견디지 못할 정도의 불안감은 대학교를 휴학하고 난 후 복학을 하면서부터였다. 전공 수업시간에 과제 발표를 했었던 때나, 사람들이 많은 지하철이나 광장, 강남역 같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 놓이면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관찰하는 것 같아 등이 간지럽고 굉장히 불안하고 경직되고 날이 선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모임이나 사람들이 여러 명 모여 만나는 약속이 있는 날, 그날 기분의 높이가 낮거나 축 쳐진 느낌이라 생각이 들면 약속 시간 전부터 나의 상태를 예열해 놓는다. 어떤 날은 너무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떨쳐지지 않아 집 밖을 떠나기 전에 불안해져 눈물을 쏟고 나간 적도 있었다.
원래 이러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런 감정과 생각과 모든 건 어디서부터 온 걸 까, 지옥이라면 이럴까 죽지 않고도 지옥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방 안 네모난 프레임 안에 갇혀 아픈 곳을 마주하고 파고드는 감옥 같은 마음의 병이다. 어딘가에 둥둥 떠다니며 부유하는 우울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숨어버리는 그런 병. 손가락으로 노란 어플을 터치해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용기가 없다. 말을 건넬 힘이 없다. 힘이 없으니 누군가가 말을 걸어서 나를 일으켜 줬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있다 보면 신기하게도 누군가 연락을 해준다. 연락을 바라던 사람으로부터 연락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 마음이 전해진 건가, 연락을 망설인 걸 후회한다.
그렇게 후회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의 에너지가 생긴다.
누군가의 작은 자극에 때로는 에너지를 얻는다.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결코 그 마음의 짐은 가볍지 않기에 사람들이 가진 각자의 마음의 병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힘든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듯 우울에 대하여 또렷하게 열린 마음으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움츠러들어도 괜찮다고.
다시 펴면 되니까, 자연스러운 거라고.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왜 그런 생각을 해, 넌 괜찮아, 약으로 해결하라는 말 보단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들어줄 수 있는 태도를 그들에게 보인다면 조금은 의지와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그런 이를 만난다면 그에게 들어줄 수 있는 존재이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마음 깊이 숨겨놓은 것을 꺼내면 한 꺼풀 벗고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며칠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겐 단지 그런 마음이었다.
그저 진심인, 잃지 않고 지키고픈 마음가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