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그리로) 가면 돈 벌 수 있니?"라는 무례한 말들 차단하기
나는 어릴 때부터 글 쓰기와 책 읽기를 엄청 싫어했다. 오죽하면 엄마가 책 한 권이라도 더 읽어주려고 할 때 연년생 동생은 다독을 했고 나는 하나도 안 했다. 아빠는 그 모습을 보며 "아이의 뜻이니 존중하자"라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는 것이 큰 격차였던 걸까, 남동생은 늘 학창 시절에 상위권을 차지했고 나는 늘 중위권이었다. 심지어 나랑 정말 친했던 소꿉친구마저도 최상위권이었다.
나는 항상 욕심이 많았고 뭐든 잘하고 싶었기에 친구에게 비결을 물었다. 우리 아빠도 소꿉친구의 아빠(=자신의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나에게는 삼촌이니 이해하기 편하도록 '삼촌'이라 쓰겠다.
삼촌도 따로 푸시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모든 부모가 겪는 하나의 난제일지도 모른다. "우리 딸이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 라며 이야기를 꺼내자 아빠는 "유레카"를 외쳤다.
내 남동생도 어린 시절 책을 정말 많이 읽었다. 가리는 것 없이 엄청난 양을 읽었다고 이야기에 책을 읽는 것이 공부와 큰 연관성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한 자리에서 글을 읽고 해석해 자신만의 말로 만든다는 것. 공부할 때도 책을 읽고 메모하며 듣고 쓰고 읽고 암기하는것은 유사한 행위이자 습관으로 들인다면 책을 읽는 아이가 잘 할 확률이 높다. 뉴스기사와 영상매체에서 보도하거나 다룬 걸 봤었다.
정말 웃기게도 나는 공부를 너무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엄마한테 "왜 나 책 안 읽혔어요?"라고 무어라 한 기억이 있다. 사춘기 시절 큰 반항이었을까, 친구도 없었고 마음처럼 안 되는 일에 모든 불행은 다 나만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내 뺨을 때리며 "네가 노력하지 않고 왜 남 탓을 하냐"는 말에 바로 정신을 차렸다.
다 내 탓이고, 내 잘못일 거라고 스스로 반성했다. 내 머리는 확실히 비상하거나 천재도 아니다. 작가라는 직업은 꿈도 안 꿨을뿐더러 학교 다닐 때 도서관은 기피하다시피 했다. 과거를 회상해 보는 지금은 참 웃긴 일이지만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
글 쓰기를 정말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부터 자잘 자잘한 괴롭힘을 받아왔고 급식조차 먹기 힘들어 도서관에 가게 되었다. 괴롭힘은 '말'로 했기에 조용하고 나를 신경 쓰지 않는 도서관만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처음부터 막 어려운 책을 읽은 것은 아니고 만화책부터 시작해 소설과 역사책까지 읽게 됐다. 책에 매료되었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 공부도 열심히 해서 엄청난 쾌거를 이루었다.
너 정도 성적이면 인문계는 못 간다고 말할 정도였지만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자퇴 후 인생이 망했다며 조롱하던 이들에게는 '내가 열심히 살 거야'라는 생각으로 여러 성과를 내게 되었고 휴학 후에도 다방면의 면모를 보여주어 '내일이 내 일처럼 기대되는 사람'이라는 감사한 평가를 받게 됐다.
현재는 미디어가 발달해 책이 많이 등한시되고 있다. 3줄 요약, 더 나아가 1줄 요약을 요구하는 시대이다. 문해력도 낮아져 '심심한 사과'라거나 '사흘과 나흘'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아무래도 역동적인 애니메이션이 훨씬 재미있고 이해하기 편할뿐더러 전두엽을 자극해 재미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은 직접 '상상'하면서 읽어야 하기에 사고력은 길러주지만 솔직히 지루할 수 있다.
과거 조선시대만 해도 '글'은 신분 상승의 아주 큰 무기였다. 글을 안다는 것은 하나의 상위층을 상징했다. 일반 서민이나 노비는 글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고는 했다. 그리하였기에 세종대왕님께서 한글을 창제하신 것이 아닌가.
나도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당시 내가 글과 음악에 재주가 있는데 노비였으면?이라는 불안해 오싹해져 현생을 열심히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글 쓰면 돈 벌 수 있겠어?"라는 무례한 말을 다 차단하고, 나의 길을 걸어야지. 나도 누군가에게는 부럽고 본받고 싶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