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목표, 다른 방법
나는 대기업 6년차 대리이다.
과거 스타트업에서 경력도 쌓고 직접 창업도 해봤던 나는
창업이라는 꿈을 잠시 고스란히 접어둔채 대기업에 취업을 했고
1년도 버티지 못해 뛰쳐 나올거라던 주변의 시선과는 다르게
벌써 어느새 6년차 대리이다.
스타트업과 같은 수평적이고 리버럴한 분위기도 잘 맞지만
의외로 나는 군대와 같은 수직적인 조직도 잘맞는다고 본다.
대기업에 들어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들어오기 전 갖고 있었던 선입견들과 반대되는 일도 많았고
역시 대기업이 그렇지 뭐.. 하면서 답답해 했던 경험들이 떠오른다.
스타트업과 대기업, 무엇이 다를까?
수없이 많은 다른 점들이 있겠지만
몸소 느끼고 결론 내려본 차이점은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모두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가령 터널을 뚫어야한다는 업무가 있다고 하자.
이 업무를 해내기 위해 두 개의 집단은 서로 다른 툴을 사용한다.
스타트업은 우선 매우 빠르다.
먼저 포크로 터널을 뚫어본다. 안된다.
삽을 가지고 온다. 조금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더이상 뚫리지 않는다.
바로 다음으로 드릴을 가지고 온다. 먹히는 것 같다.
이 드릴로 계속 뚫어간다. 그리고 이마저 막히면 또다른 툴을 고안해 낸다.
스타트업은 아주 린(Lean) 하게 새로운 해결방안을 찾아낸다.
스피디하게 되는 것을 찾아 시도하고 도전하고 안되면 그 다음 타자를 내세운다.
그렇기에 굉장히 빠르고 민첩하게 다양한 시도들이 오가며
시장에 먹히는 그 툴을 찾아내고 소비자를 매혹시키고 시장에서 인정을 받게된다.
그에 반해 뚱뚱한 대기업은 어떤가?
먼저 터널을 뚫기전 터널의 길이와 높이를 분석한다.
터널을 꽉 막고 있는 토양의 재질과 돌덩이들의 밀집도를 살펴본다.
그 재질을 완벽히 파쇄시킬 툴을 만들어낸다.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 듯 하다. 수차례 보고를 통해 또 다시 분석하고 주도 면밀하게 파악한다.
마침내 이 터널을 완벽히 뚫어버릴 불도저같은 기구를 만들어내고 드디어 이것으로 뚫기 시작한다.
그리고 터널은 마침내 뚫린다.
감히 두 개의 집단을 완벽히 구분해내고 차이점이 뭐다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경험에 비추어 본 바로는 결국 두 개의 집단 모두 같은 지향점을 향해 간다.
소비자를 만족시키고 시장에서 먹히는 그러한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는 것.
그치만 그 방법이 매우 다르다고 본다.
대기업이 자칫 느려보일 수 있다. 답답할 수 있다.
수도 없이 많은 보고서와 보고에, 그 많은 자료들을 찍어내고 또 삭제하며
더 나은 불도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만 이 느린 뚱뚱보는 결국 터널을 뚫어낸다.
그렇기에 과연 이 뚱뚱보는 느리다고 할지, 답답하지만 확실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물론 그 와중에 똥볼도 많이 찬다 ^^)
1인 다역을 소화해내야만 하는 다이나믹한 스타트업이 아닌 대기업에서
5년이 지나 6년차 삶을 소화할 수 있었음은
어쩌면 느리게만 보였던 뚱뚱보가
어느날 생각보다 속시원하게 터널을 뚫어내는 경험들을 해서일까?
그리고 막상 느릴줄만 알았던
이곳에서의 삶도 생각보다 역동적이고 매일매일이 챌린지의 연속이라
그것이 내 가슴을 뛰게 했던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