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에서 자라는 홍두나무에 봄이 오니 몇 가지가 피었겠네요. 원하노니 그대여 많이 따 주세요. 홍두야말로 사무치는 그리움이잖아요.
春來(춘래) : 春(봄 춘)은 秋(가을 추)로 되어 있는 본도 있습니다.
願君多采擷(원군다채힐) : 願(원할 원)이 勸(권할 권)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으며, 擷(딸 힐)이 摘(딸 적)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습니다.
[청와 론]
1. 홍두나무 전설
<수신기>(搜神記)에 홍두나무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답니다.
전국시대 송나라 강왕(康王)이 한빙의 처 하(何)씨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빼앗으려 하니 부부가 화를 피하려 자살을 해서, 화가 난 왕은 부부를 따로 따로 매장을 했답니다.
무덤에서 각각 나무가 자라났는데, 뿌리며 줄기며 가지가 서로 얽힌 상태였답니다. 암수 원앙이 이 나무에 살면서 밤낮으로 울었답니다.
사람들이 이를 슬피 여겨 그 나무를 ‘상사수'(相思樹)라 불렀답니다.
남녀를 떠나서, 서로 그리워하는 대상이 생기는 것이 음양의 이치입니다. 그리움이란, 어떤 상대를 마음 속에 그려서 떠올리며 보고싶어 애타는 느낌입니다.
홍두나무 전설에 의하면, 서로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부부는 죽어서도 홍두나무가 되어 한 데 얽혔다고 합니다. 왕유의 시에서, 시적 화자는 님(君)에게 홍두나무 열매를 많이 따기를 바랍니다.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열매를 맺어 다시 만나 회포를 풀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습니다.
2. 결혼으로 끝나는 영화, 결혼으로 시작하는 영화
그리움이 겉의 감정이라면, 그 이면에는 외로움이 있겠습니다. 외로움이란, 짝이 없이 자기 혼자라는 데서 오는 쓸쓸한 느낌입니다. 흥겨울 것도 없고 그렇다고 평온한 것도 아니고, 그저 울적한 심사이겠습니다.
외로움을 해소하는 길은 아무래도, 짝을 만나는 것이겠습니다. 그런데 우스운 비유인 것 같지만, 결혼으로 끝나는 영화가 있다면, 결혼으로 시작하는 영화가 있기 마련입니다.
외로움은 부정적인 감정이니까 해소돼야 할 감정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외로움이 해소되듯 그리움도 해소되면 어찌되나요?
그리움의 이면에 외로움이 있다면, 그리움의 내면에는 설렘과 떨림이 있습니다.
오매불망을 잊고 전전반측도 잃고, 서로를 바라보는 느낌이 그저 일상의 통과의례처럼 되어버리는 뻔한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로를 보는 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매일 보는 집안의 가구처럼, 눈에는 들어와도 느껴지지 않는, 별 감흥이 없는 관계가 돼버린 것은 그리움의 유통기한이 다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에서, 노부부는 죽을 때까지 그 그리워하는 마음을 변치 않습니다.
모두 다 그런 것이 아니기에, 홍두나무 전설의 부부처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노부부처럼, 그리움의 시효가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감동하게 되는 것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