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里館 죽리관
王維 왕유
獨坐幽篁裏 독좌유황리
彈琴復長嘯 탄금부장소
深林人不知 심림인부지
明月來相照 명월래상조
대나무숲 속 집
왕유
홀로 그윽한 대숲 속에 자리잡고
거문고 타며 시 한 수 길게 읊는데
깊은 숲 속이라 아는 이 없으나
밝은 달이 찾아와 서로를 비추네.
[청와론]
1. 시 속의 그림
왕유(王維, 699-759)는 중국 당나라때 시인이자 화가입니다. 시화악(詩畵樂)에 능했다고 합니다.
소동파는 그의 詩와 그림을 두고,
"詩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詩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
라고 평하였다고 합니다.
이 시에서 왕유는, 홀로 아무도 모르는 대숲에서 거문고를 타며 시를 읊고 있는 고고한 선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깊은 대숲(深林) 속의 선비의 삶의 자세는 아무나 쉽게 이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닙니다.(人不知)
그것이 시 속의 그림입니다.(詩中有畵)
2. 그림 속의 시
그림을 가만히 보니 밝은 달(明月)이 있습니다. 홀로(獨)인 줄 알았더니 밝은 달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의 묘미는 '서로를 비춘다'고 한 데 있습니다. 홀로(獨)와 서로(相)의 대비가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대숲 속에 홀로 앉아 있는 것(獨坐)은 알겠는데, 서로를 비춘다는 것(相照)은 얼른 와닿지 않습니다. 비추는 것은 밝은 달인데 어찌하여 '서로 비춘다'고 했을까요?
시 속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거기에 음률이 있고 시가 있습니다. 밝은 달은 빛으로 선비를 비추어 주고, 선비는 소리로써 밝은 달에 화답하고 있던 겁니다.
그것이 '서로를 비춘다'는 의미이고, 그림 속의 시입니다.(畵中有詩)
3. 한유의 '간담상조'(肝膽相照)
후대의 한유(768-824)는 '간담상조'라는 말로 친한 교분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평소에는 간과 쓸개를 서로 보여줄 정도로 친하지만, 이해관계가 있으면 서로 모르는 듯한 얼굴을 한다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왕유의 시에서는, 음악에서 중창이든 합창을 대하는 듯합니다. 때로는 각자의 소리와 색깔을 뽐내기도 하지만, 결국은 서로의 소리와 색깔이 조화를 이룸으로써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래서 왕유가 시화악(詩畵樂)에 능했다 하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