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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와 Oct 08. 2024

도홍경, 산중(山中)이 어드메뇨?

하곡 서 청와 론, 서론(書論)

詔問山中何所有賦詩以答 조문산중하소유부시이답

陶弘景 도홍경

山中何所有 산중하소유
嶺上多白雲 영상다백운
只可自怡悅 지가자이열
不堪持贈君 불감지증군

산중에 무엇이 있느냐는 황제의 물음에 시를 지음으로써 답함

산중에 무엇이 있느냐?
산마루에 흰 구름이 많더이다.
다만 스스로 즐길 뿐
폐하께 가져다 드리지는 못하나이다

[청와론]

1. 고사(故事)

도홍경(陶弘景)은 제나라 때 잠시 벼슬을 살다가 양나라가 들어선 뒤 벼슬을 버리고 모산(茅山)에 은거하였다 합니다. 모산 도가사상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양나라 무제(武帝)가 그에게 조정에 나와 보필해 줄 것을 부탁했으나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 무제가 이 시의 첫 구절의 주인공입니다.

무제는 그가 왜 은거하는지 조서(詔書)를 내려 물었답니다.
“산중에 무엇이 있기에 그대는 나의 뜻을 몰라주는가?”
이에 도홍경이 이 시를 지어 답했다는 겁니다.

2. 원본 고증의 문제

작품의 원본을 확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본(異本)이 있는 경우 사소한 자획의 차이를 넘어 느낌과 의미의 차이까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곡 선생님의 작품에는 마지막 4구가 '不堪持寄君(불감지기군)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충북 제천 정방사의 요사채 유운당(留雲堂)의 주련(柱聯)에는 '不堪持贈君(불감지증군)'으로 되어 있습니다. 자구(字句)가 다른 판본이 존재하는 경우입니다.

저는 원본을 고증할 능력이 없습니다. 어느 판본이 원본인가 하는 문제보다, 두 이본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게는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3. 증(贈)이면 어떻고, 기(寄)면 어떤가?

증(贈)도 준다는 말이고, 기(寄)에도 준다는 뜻이 있으니 별 차이 없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기(寄)는 장소의 이동이라는 뜻이 강합니다. 즉 이곳에서 저곳으로 <보내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칠 기'라고 하는 겁니다.

증(贈)은 소유권의 이전이라는 뜻이 강합니다. 누군가 소유하고 있던 것을 다른 이에게 <넘겨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줄 증'이라고 합니다.

도홍경은 도교를 바탕으로 하면서 불교와 유교를 아우를 것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무위자연과 무소유와 청빈(淸貧) 사상이 핵심이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유와 관련된 '贈'짜가 아니라, '寄'짜를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보는 겁니다.

4. 산중이 어메뇨?

황제는 '산중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도홍경의 시를 통해 저는 '<산중>이 무엇이냐'라 물음을 물어야한다고 봅니다.

몸이 산 속에 있다고 해서 '산 사람', '선(仙)'이 될 수 있겠습니까? 마음 속이 속세의 욕망과 집착으로 그득해서야 산중에 있어도 '속인'(俗人)일 따름입니다.

속세에 묻혀 산다 해도 세속의 욕망과 집착을 여의고, 무위와 무소유와 청빈(淸貧)을 스스로 즐기고 있다면(只可自怡悅), 그곳이 바로 산중이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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