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이 8세 때 지은 오언율시입니다. 그래서 팔세부시(八歲賦詩)라고 일컬어집니다. 짝수 구절에 '궁-홍-풍-중'으로 운자를 맞춘 것도 뛰어납니다.
자신을 소객(騷客), 시인 묵객의 문사로 인식하고 있는 당찬 모습도 보입니다. 뉘가 알 리 없는, 산이 품고 있는 외롭고 큰 뜻(山吐孤輪月)과 만년을 구비 흐르는 세상의 흐름(江含萬里風)을 '내뱉고 머금는다'라고 대비한 표현도 탁월합니다.
'변방에서 날아오는 기러기'는 아직 세상 밖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현재와 어찌 펼쳐질지 모르는 미래를 동시에 나타냈다고 보고 싶습니다.
율곡은 예견이라 해야할지 예언이라 해야할지 모를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왜란을 대비해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는 이야기나, 선조가 피난할 것을 어찌 미리 내다보고 '화석정'을 중수해서 들기름 칠을 부지런히 해두었다가 화석정에 불을 질러 선조의 도강을 도왔다는 이야기 등이 그렇습니다.
율곡이 만년(1583년, 죽기 한 해 전)에, 당쟁을 중재하고자 했으나 오히려 역풍을 맞아 뜻을 이루지 못하고 벼슬을 버린 채 홀로 떠나면서 지은 시의 첫구절이 다음과 같습니다.
四遠雲俱黑 사원운구흑
사방은 온통 먹구름인데
당쟁의 풍파로 나라가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을 나타낸 말입니다. 그래서 <화석정>의 결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聲斷暮雲中 성단모운중
기러기 울음소리 석양의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8세에 지은 시에, 석양의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기러기 울움소리를 이야기하고, 죽기 1년 전 47세에 지은 시에, 한양을 떠나면서 세상이 온통 먹구름이라 애달파하는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그 구름이 그 구름이었으리라 갖다 붙인 격인지 몰라도 이야기꺼리라는 겁니다.
율곡에게서 천재성뿐만 아니라, 신끼마저 느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니가 이기호발을 알아? 기발리승을 알아?"
대학교 1-2학년 동안 '청와'라는 아호를 지어 세상과 맞짱 뜨면서 술통에 빠져 살았더랬습니다.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아, 군대에 갔다가 복학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누가 와서 잠깐 보자고 합니다. 저는 국문과 83학번인데, 자기는 국문과 80학번이라면서 제가 그 선배를 몰라도 그 선배는 제가 1-2학년일 때부터 쭈욱 저를 지켜봐왔다는 겁니다. 섬뜩했습니다. 술을 사주겠답니다. 그 선배가 술이 잔뜩 취했습니다. 캠퍼스 광장 계단에 앉아 그 선배의 취중 강의를 들어야했습니다.
"니가 이기호발을 알아? 기발리승을 알아?"
어디서 들어는 본 것 같은데 알 리가 없었지만, 이 폭압적인 가르침은 뭐였을까요? 그런데 이 데자뷔 느낌은 또 뭐지요?
고등학교 때 국어운동연합회 모임에서 후배들이 하는 연말 '큰잔치' 행사에 갔다가 모대학 80학번 선배가 건물 계단에서 저를 붙들고 그러십니다.
"니가 즉자존재를 알아?, 대자존재를 알아?"
그 때에야 알 턱이 없었던, 즉자-대자존재, 이기호발, 기발리승에 대해, 복학해서 또 다른 국문과 80학번 선배와 함께 스터디그룹을 하면서 곱씹어 보았더랬습니다.
3. 뭐가 옳은지?
화담 서경덕(1489-1546), 퇴계 이황(1502-1571), 율곡 이이(1536-1584) 세 분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학자였습니다. 율곡이 위의 시를 썼던 8살일 때, 화담은 55살이고, 퇴계는 42살이었을 때네요.
화담은 견줄 데 없는 돌출입니다. 독학으로 '세상 천지에 오로지 음양인 기가 있을 뿐이고, 그 음양이 스스로 생성 극복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理)는 그 음양인 기(氣)가 스스로 생성 극복하는 이치일 뿐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저는 '음양생극론'이라고 합니다.
퇴계는 주자의 설을 따라, 사람의 심성을 논하면서, 사단(인의예지)은 이(理)가 발한 것이고 칠정(희노애락애오욕)은 기(氣)가 발한 것이라 했습니다. 이기호발을 주장했다가, 7년 동안 기대승과 편지로 펼친 논쟁 과정에서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것이요, 칠정은 기가 발하여 이가 타는 것이다.(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라고 수정을 했지만, 이기호발의 주장을 버리진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율곡은 퇴계의 '이발기수, 기발리승' 가운데 '기발리승'만 인정합니다. 이기론으로 보자면 기론의 편에 선 것인데, 왜 화담과 같이 주장하지 않고 기발리승만 가져와서 주장을 했을까요?
4. 그러게 그분들이 왜 그랬을까요?
기존의 학자들은 이(理)에 대해 두 가지 개념의 '이'가 있다고 합니다. <근원적 실재로서의 도리>를 뜻하는 '이'[가]와 <사물의 작동원리로서의 이치>를 뜻하는 '이'[나]가 그것입니다.
화담은 [나]를 주장한 셈이고, 퇴계와 이이는 [가]를 주장한 셈입니다. 어느 주장이 진리(진짜 이치)인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나]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저는 <필요에 의해 요청되는 기의 작동원리로서의 이치>를 뜻하는 '이'[다]를 제안합니다.
[다]의 '이'는 '도리이면서, 음양인 기의 작동원리'일 뿐입니다. 즉 근원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아니로되, 도리이기는 합니다. 근원적인 실재가 아니기에 시대적으로 사회적으로 변하기는 합니다.
'기'만 있다고 한다면 도리가 없어지게 된다고 하는 [가]의 주장에 문제가 있고, 사물의 작동원리에 도리가 어떻게 유지되는가에 대한 변호가 없기에 [나]의 주장에 빠진 곳이 있었다고 봅니다.
사물의 작동원리이되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는 '필요에 의해 요청되는 작동원리'입니다. 이를 테면 약속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만은 지키자! 도덕과 윤리의 문제이지 근본적 철학의 문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금수와 다를 게 없는 것이 맞는데, 인간이고자 한다면 이래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겁니다.
화담과 퇴계와 율곡 세 분에게 지금 가서 여쭌다면, 그 분들께서도 이렇게 일러주시지 않으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