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는 대로 대처하는 능력도 능력은 능력입니다만,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함석헌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역사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요구된다는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 생각하는 힘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보겠습니다.
2. 하선(下善)의 힘
관찰력과 암기력은 하선(下善)의 힘입니다. 단편적 지식에 지나지 않으나 논리력과 통찰력으로 가는 디딤돌이기는 합니다. 예전에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운 것들이 이와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하급 기술자들을 육성하는 국민교육의 일환이었던 셈입니다.
3. 중선(中善)의 힘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조리정연하게 설명하는 능력과 압축해서 요약하는 능력은 중선(中善)의 힘입니다. 사고력을 길러주는 데 논술이 필수적이라면서 논술학원을 성행하게 해준 공이 큽니다. 그렇게 해서 체계적으로 파악한 것을 조리정연하게 서술하는 데에 이르렀으나 사물의 핵심과 근본이치를 캐야 하는 길이 남아있습니다.
4. 상선(上善)의 힘
통찰력과 직관력은 상선(上善)의 힘입니다. 사물의 핵심과 근본이치까지 꿰뚫어보게 된다면 가히 상선의 힘이라 할 만합니다. 함석헌 선생님의 ‘역사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깊은 통찰을 말씀하신 것이라 여겨집니다.
5. 최선(最善)의 힘
문제제기 능력과 문제설정 능력이 최선(最善)의 힘입니다. 사물의 핵심과 근본이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제기된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풀어갈 것인지를 설정하는 능력이 창조적 사고력입니다. 함석헌 선생님께서 그렇게 문제제기를 하신 겁니다.
학생(後生)을 지식의 습득자, 지식의 전수자로 머물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학생을 선생(先生)으로 길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의 습득, 전수와 함께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힘, 문제제기 능력, 문제설정 능력, 문제해결 능력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독자와 작가의 문제, 글읽기와 글쓰기의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자를 작가로 나아가도록 해야 하고, 글읽기가 글쓰기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6. 상선약수(上善若水)의 힘
하선과 중선이 없는 상선과 최선은 공허하고 섬세하지 못하므로, 그렇게 행하면 상황에 어그러져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하선과 중선을 상선과 최선으로 길러가는 것과 상선과 최선을 중선과 하선으로 섬세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 이른 것 같은 최선의 힘에서 힘을 빼는 것이 상선약수(上善若水)의 힘입니다. 상선약수의 힘은 느낌과 관계된 성품인 감수성에서 나옵니다. 감수성이란 느낄 줄 아는 공감능력입니다. 공감능력이야말로 인간진화의 최후의 사태입니다.
대상을 관찰하고 이해하고 꿰뚫어 보았다 해도 그 대상을 느낄 줄 모른다면 관찰과 이해와 통찰이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최선의 힘을 갖추었다고 해도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어서는 아직 최선의 힘이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7. 상선약수의 안음다움
물이 상선인 까닭은, 물이 무한한 포용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용력이란 크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열림의 문제입니다. 바다가 크기 때문에 포용력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에 열려있기 때문에 무한한 포용력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열림이란 '나'를 고집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전자를 만나면 주전자의 모양이 되고, 잔을 만나면 잔의 모양이 되는 물의 포용력을 물의 '안음다움(아름다움)'이라고 하겠습니다.
8. 상선약수의 알음다움
느낄 줄 안다는 것은 최선을 다해 대상을 알아가되 그것을 끝내 다 알았다 하지 않고 모름지기 놓아둘 줄 아는 알음다움입니다. 드러내지 않고 낮은 데로 임하는 상선약수의 알음다운 겸손입니다.
9. 상선약수의 앓음다움
느낄 줄 안다는 것은 함께 아파해줄 줄 아는 공감능력입니다. 아픔의 공감이 아픔의 치유로 가는 관문입니다. 느낄 줄 안다는 것은, 함께 아파하고 함께 아픔을 씻고 새로 거듭나는 상선약수의 앓음다운 감수성입니다.
10. 상선약수의 알움다움
느낄 줄 안다는 것은 느낌이 내 안의 알, 우리 안의 알을 움틔워 우리가 새로 다시 거듭나게 하는 알움다움입니다. 느낄 줄 안다는 것은, 물에서 생명이 나왔듯, 섬세한 손길로 새 생명을 기르는 상선약수의 알움다운 모성입니다.
11. 상선약수의 알흠다움
느낄 줄 아는 것이 상선약수의 아름다움(안음다움, 알음다움, 알움다움, 앓음다움)입니다. 내면의 그 네 가지 아름다움은 일상 생활 속에서 발현되어야 합니다. 그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삶 속에서 향기를 발할 때 그것을 '알흠답다'고 하겠습니다.
상선약수의 알흠다운 향기를 갖추지 못한 아름다움은 위선(僞善)이기 십상이므로, 그렇게 행하면 남을 속이고 나아가 자신도 속기 마련입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기르면서 그것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알흠다운 삶을 사는 사람이, 함석헌 선생님이 말씀하신 '생각하는 백성'이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