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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와 Jun 07. 2023

욕(辱)을 왜 먹고있을까? 그놈 참!

밥통성찰록

寵辱若驚 총욕약경


靑蛙 朴秀慶 청와 박수경


某者侮蔑其 모자모멸기

己心漾靑紅 기심양청홍

如何食厥辱 여하식궐욕

主只觀之咳 주지관지해


늘 깨어있으면


언놈이 업수이여겨 뭐라고 했겠지.

그놈의 심미안이 출렁거렸을 테지.

어찌할 테냐? 그 욕을 먹고 있을 테냐?

그님 그저 그놈 보고 웃네.


漾 출렁거릴 양, 咳 어린아이 웃을 해 寵辱若驚 총욕약경은 <노자>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칭찬을 받을 때나 욕을 먹을 때나 놀란 듯이 하라는 말입니다. 놀란 듯이 하라는 말을, 깨어서 씽긋 웃으며 보라는 말로 새겼습니다.

(날이 흐린 출근길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1. 흔한 시장통 싸움 풍경


  시장통에서의 싸움은 늘 누구 말이 맞냐는 걸로 시작됩니다. 시비를 가리자는 것인데, 시비는 금세 물 건너갑니다.


  "왜 반말이야?"

  "내가 언제 반말했다고 그래?"

  "이런 씨*, 방금 했잖아?"

  "씨*? 지금 나보고 씨*이라고 그랬어?"

  "그래. 그랬다 어쩔래?"

  "이런 대구리 피도 안 마른 놈의 새끼가?"

  "새끼? 내가 니 새끼야?"


  여기서 하고 싶은 얘기는 '욕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욕설'은 다른 글에서 하게 되면 하고, 여기서는 '욕'에 관한 이야기를 치욕과 모욕이라는 관점에서 짚어봅니다.

  

  욕(辱)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치욕(恥辱)과 모욕(侮辱)입니다. 욕지거리를 하는 놈이 되었거나 욕을 먹는 놈이 되었거나 그 욕이 치욕인지 모욕인지 알아야겠습니다.


2. 모욕


  "너는 내게 모욕감을 줬어!?"


  모욕감은 관계에서 발생합니다. 모욕의 모(侮)는 업신여길 모짜입니다. 남보다 자기가 잘났다거나 못났다는 우월감과 열등감이 모욕감으로 변형되는 겁니다. '내가 나보다 못난 놈한테 이런 취급을 받고 있구나.' '니가 나보다 잘났다고 지금 나를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구나.' 뭐 이런 느낌 아닐까요?


  모욕감과 굴욕감은 어리석은 놈의 자기 확인입니다. 상대가 나에게 한 말이 사실이라면 인정하면 됩니다. 거짓이라면 무시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니 모욕감이 드는 겁니다.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하기 싫은 반감이 끼어드는 겁니다. 무시해야 하는데 무시하지 못하는 성깔이 곧추서는 겁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놈은 자기가 그런 줄 확인도 못하고, 자기 인을 할 줄 아는 놈부터 슬기로운 놈은 자기 성찰로 나아가는 겁니다.


3. 치욕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치욕감은, 자기확인으로부터  시작하는 자성(自省)에서 발생합니다. 자성이란 자기반성이고 자기 성찰을 말합니다. '치욕적인 말'을 들었다고 하자고요. 그 느낌에서 모욕감을 빼내고, 즉 열등감과 우월감을 빼버리고, 부끄러움을 순수하게 느낄 수 있다면, 즉 그 욕을 한 사람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치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허물을 부끄럽게 여기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일 수 있다면, 그 치욕적인 말은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되는 셈입니다. 치욕감은 슬기로운 놈이 느끼는 자기 삶의 회초리입니다.


4. 욕 먹기? 안 먹기?


  자 이제 욕을 맛있게 먹어보자고요.


  욕을 참는 걸 인욕(忍辱)이라 하면, 욕을 보는 건 관욕(觀辱)이고, 욕을 먹는 건 식욕(食辱)인가요? 우스갯소리였습니다.


  욕은 수치심과 모멸감을 동반합니다. 부끄러운 느낌과 업신여겨지는 느낌이 들어야 욕을 먹는 겁니다. 언놈이 욕을 했든, 욕을 먹는 놈은 '그놈'다. 그놈이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껴야 언놈의 욕이 비로소 그놈에게 욕이 되는 겁니다. 언놈이 욕을 하고자 한 행위가 아닐지라도, 그놈이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끼게 되었다면 결과적으로 그 행위는 그놈에게 욕이 된 겁니다. 그놈의 심정이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뒤틀리면 욕이 되는 겁니다.


  그놈과 언놈의 관계를 보자고요. 언놈이 욕을 했는데, 그놈이 욕을 먹으면, 그놈의 심정이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물들어 붉으락푸르락하면, 언놈은 신이 납니다. 왜지요? 욕을 먹이고자 했는데, 그놈이 그 욕을 잘 먹어주니까 그런 겁니다. 그런데, 언놈이 욕을 차지게 했는데도 그놈이 욕을 먹지 않으면, 그놈이 심정적으로 수치심이나 모멸감 같은 것을 전혀 느끼지 않거나 못했다면, 그 욕은  어떻게 될까요? 그 욕은 그 욕을 한 언놈에게 돌아갑니다. 욕을 한 놈이 더 붉으락푸르락하게 되는 거라는 거지요.

 

  누구든 욕먹기 싫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더욱이 자기가 욕먹을 짓을 하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다면 언놈에게든 욕을 먹고 싶을까요?

 

5. 참을성


  사실 확인 절차는 생략하고, 부당한 욕과 타당한 욕이 있다고 하자고요. 언놈 또는 어느 상황이 그놈에게 부당하게 수치심과 모멸감을 준다고 가정해 보았을 때, 우선 그놈이 그 욕을 참아내고 있다고 해 보자고요. 부당한 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치심과 모멸감 참아내고 있다고 하자고요.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그놈 속이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부글부글 끓게 되는 게 당연합니다. 끓어오르는 수치심과 모멸감을 계속 참을 수 있을까요? 또 대개 욱하기 마련입니다. 그놈 참나 어찌 된 영문인지 용케도, 언제 폭발할는지 모르지만 꾹꾹 눌러 잘 참고 있다고 하자고요. 그놈이 욕을 먹은 걸까요? 그렇습니다. 그놈이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다면 욕을 먹은 겁니다.

 

  그런데 왜 그놈이 욕을 먹게 된 걸까요? 언놈이 욕을 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언놈이 욕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언놈이 한 욕으로 인해 그놈의 심미안이 그만한 일에 출렁거렸기 때문입니다. 그놈이 욕을 먹은 이유는 심미안이 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욕먹는 그놈을 보면서 그님이 씽긋 한 번 웃어주는 겁니다. 그렇게 조금씩 심미안이 깊어져 가는 것, 그것이 참을성을 길러가는 겁니다.


6. 견딜성


  아직 부당한 욕먹으면서 꾹꾹 참고 있는 그놈 다시 불러오자고요. 참다 참다 못 참으면 어떻게 될까요? 욱하고 폭발하게 됩니다. 먹은 욕을 토하게 되는 꼴입니다. 그 토한 욕을 보는 겁니다. 그것이 자기 성찰입니다. 그놈의 심미안이 울컥하고 쏟아져 나왔음을 보고 그님이 다시 한번 씽긋 웃어 주는 겁니다.

 

  그놈이 참을성을 길러가다 보면 어떻게 되려나요? 욕이 쌓이고 쌓여서 그놈 속에 단단하게 응어리지게 됩니다. 그 단단하게 응어리진 욕을 그님이 보는 겁니다. 그 욕을 한(恨)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한이 있다는 것, 심미안이 깊어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한이라는 심미안이 또 그놈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옹이'라고 합니다.


  남이 욕을 하는데, 그것으로 인해 울그락불그락하지는 않는데, 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속에 맺힌 게 있어 신명이 자유롭게 흐르지 못하는 겁니다.

 

  그놈 매번 그 옹이에 걸려 넘어지니 어찌할까요? 그놈이 지금까지 씽긋 웃으면서 여기까지 잘 왔다면 욕먹는 데는 도사가 되었겠습니다. 먹은 욕 소화 잘 되도록 영양가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 참 좋습니다. 그놈 스스로 그놈을 돕는 겁니다. 그놈이 깨어있으면 그놈이 곧 그님입니다. 그놈의 잠자던 혜안이 깨어나서 제대로 작동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7. 곰삭힘

 

  이치를 하나둘씩 헤아려보면서 응어리진 한을 이해해 보자고요. 씽긋 웃으면서 하나둘씩 음미해 보자고요. 그게 진정 욕을 먹는 일이겠습니다. 먹은 욕을 다시 먹는 일, 그게 되새김입니다. 삭힘이고 곰삭힘입니다. 그렇게 곰삭은 한을 그늘이라고 합니다. 욕이 한이 되고 그놈의 그늘이 되었습니다. 깊은 심미안이 마련된 겁니다. 자기가 깊어진 겁니다. 고요해진 겁니다. 자유로워진 겁니다. 이제 견딜성이 생긴 겁니다. 거기에 씽긋 웃는 모습도 덤으로 얻었습니다. 걸림돌이 이제 디딤돌이 된 건가요?


8. 욕을 지어서 먹기


  더 가보자고요. 먹어 마땅한 욕을 먹는다면 어떨까요? 자기 모습을 돌아볼수록 고통스러울지라도,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수치스럽고 아무 쓸 모도 없는 것 같은 자신의 처량한 모습을 씽긋 웃으면서 보는 겁니다. 이번에는 욕먹지 말고,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끼지 말고, 욕을 보도록 하자고요. 그놈에게서 잘못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찾아보는 것, 그것이 욕을 보는 겁니다. 욕을 봤으면, 고치면 됩니다. 다시 하면 됩니다. 고쳐서 다시 하면 안음다워지는 겁니다.


  조금만 더 가보자고요. 부당한 욕, 먹어 마땅한 욕 다 먹고 욕 다 보았다 하겠지요? 이제 아예 욕을 지어서 먹어보자고요. 가능한 욕까지 스스로 지어서 먹고 삭일 줄 알아야 제대로 욕먹는다 하지 않을까요?


  예컨대 남의 물건을 탐하는 놈은 욕먹어 마땅하다면, 지금 자기 그놈은 남의 물건을 탐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렇지 않으니까 욕먹을 일이 없다고요? 그래야지요. 그래야겠습니다. 남의 물건에는 끌리지 않았다니 다행입니다.


  지금 욕심을 내고 탐내고 있는 것은 어떤가? 호의호식에 문화생활, 여가생활, 어디까지가 건강하게 즐기고 누리는 것이고, 어디부터가 욕심을 내고 탐내는 것일까요? 이제 가능한 욕이 이해되는가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결국 지금 여기에 살아가는 것이 욕먹는 일이고, 깨어있는 것이 욕보는 일이겠습니다.

 

  가능한 욕을 다 보고 그 욕을 다 삭였다면 그놈의 혜안이 그늘에서 배어 나올 만하겠습니다. 그놈은 이제 아예 심연을 건너가버린 건가요? 아예 하늘의 첨탑에 오르게  건가요? 거기서는 더 욕볼 일 없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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