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물장어의 꿈
淡水鰻魚之夢 담수만어지몽
魔王 申海澈 作 마왕 신해철 작
靑蛙 朴秀慶 譯 청와 박수경 역
欲入于窄門 욕입우촥문
剗剪自縮小 잔전자축소
忽然見明鏡 홀연견명경
殘留自尊心 잔류자존심
搖頭拂抛擻 요두불포수
離鄕戀想人 리향연상인
聽聲招呼余 청성초호여
催促勿休往 최촉물휴왕
欲得眞安息 욕득진안식
幾生克細懼 기생극세구
千江會流入 천강회류입
怒濤到底下 노도도저하
能至單一次 능지단일차
罷旅無留戀 파려무류련
孰吾不見告 숙오불현고
爲知眞我誰 위지진아수
민물장어의 꿈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 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窄 좁을 촥 剗 깍을 잔 剪 자를 전 抛 던질 포 擻 버릴 수 鰻 뱀장어 만
고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을 '듣고' 한시로 한역해 보았습니다. 신해철의 그 깐깐한 노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마왕의 노래에 누를 끼친 것은 아닌지, 송구스럽습니다.
2. 산다는 건 느낌을 주고받는 일입니다.
산다는 것은 결국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이고, 느낌을 주고 받는 일입니다. 어떤 느낌을 주느냐, 느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바로 자기 삶의 문제입니다.
그 삶의 밑바닥까지 천착해 들어가다 마왕 신해철이 마주친 것, 그것은 '자존심'이었습니다. 그 자존심마저 걷어내고 길어올려야 할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마왕의 노래를 들으며 느끼는 여러 양태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결국은 삶의 모든 양태가 그러하리라고 봅니다.
누구는 청이오해(聽而誤解)합니다. 듣지만 맥락을 못 짚어 오해하기 일쑤입니다.
누구는 청이불문(聽而不聞)합니다.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누구는 고집불통(固執不通)입니다. 이해와 설득은 고사하고 아예 들으려하지를 않습니다.
누구는 고집난통(固執難通)입니다. 듣기는 하지만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기에는 쇠고집입니다.
누구는 청이곡해(聽而曲解)합니다. 들은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왜곡해서 이해해버립니다.
누구는 경청이해(傾聽而解)합니다. 말의 의미, 의도, 배경, 맥락을 짚어, 발화를 넘어서 화자의 전후 사정을 헤아릴 줄 압니다.
누구는 경청이이(傾聽而已)입니다. 경청(傾聽) 비스무리하게 말을 들어주는 체할 따름입니다. 말을 듣고는 자기가 준비한 딴 소리를 합니다.
누구는 말을 잘 들어 줍니다. ‘말을 잘 들어 준다’고 할 때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경청이해(傾聽而解)의 의미입니다. 둘째는 선선히 바라는 바대로 해준다는 의미입니다. 누구를 해코지하는 일이 아니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들어줍니다. 그것이 경청(敬聽)입니다.
3. 경청
난독증(難讀症)은 듣고 말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이 있는 읽기 장애입니다. 요즘 들어, 글을 유창하게 읽느냐 못 읽느냐를 떠나서 글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딴 소리를 하는 경우를 두고도 이 말을 쓰곤 합니다.
그렇다면 듣고 말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뭐라고 할까요? 난청증(難聽症)이라 해야하려나요? 난독이든 난청이든 판독이 안 되는 문제라거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면, 이해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오해, 곡해, 심지어 의도적 왜곡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경청이 난청을 극복하는 바른 길입니다.
경청은 경청(傾聽)입니다. 상대의 말의 이면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을 경청(傾聽)이라 합니다.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지시적, 정서적, 맥락적, 구조적, 함축적 요소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여 이해하고, 그렇게 이해한 내용을 상대에게 되돌려 말해 주는 상호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청(傾聽)이라 하겠습니다.
경청은 경청(敬聽)입니다. 경청(傾聽)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대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다소 빡빡한 소통이라면, 경청(敬聽)은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을 섬세하게 느끼며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아주 부드러운 소통입니다.
어떤 말은 효용론적 차원에서 듣는 사람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경청(敬聽)은 그 요구를 잘 들어주는 겁니다. 그 요구를 거절하는 이유의 태반은 자기가 자기를 내세우려 하는 자존심 때문입니다.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기 스스로 높이려는 마음자세입니다. 자존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 자존심 때문에 자기나 다른 사람의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게 문제입니다.
자존감은 그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입니다. 각자각자 다 소중한 존재라는 겁니다. 자존감의 실질적 내용과 타인과의 관계의 문제까지를 아우르고자 하면 '자경심(自敬心)'이라는 말을 써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경심의 敬이란 공경한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누구를 높이고 스스로를 낮추고 하는 관계의 서열, 우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있다는 의미입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잘 살피고 조심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스스로를 대하는 자세를 '모심(侍)'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敬聽이라 하는 겁니다.
알량한 자존심을 내려놓으면 경청(敬聽)의 태반은 이루어집니다. 거기에 상대에 대한 사랑을 살짝 얹으면 경청(敬聽)은 완성됩니다.
4. 시로써 맺습니다.
看而微小傷尊心厥 간이미소상존심궐
靑蛙 朴秀慶 청와 박수경
尊心關係欱優劣 존심관계합우열
社會關係證明書 사회관계증명서
自省實存養自愛 자성실존양자애
自己省察證明書 자기성찰증명서
雕蟲小技尊心上 조충소기존심상
洗濯乾燥薄越感 세탁건조박월감
破碎而傷尊心上 파쇄이상존심상
搯出揭揚深劣感 도출게양심열감
자존심 상한 그놈 보며 씽긋 웃네
자존심은 관계에서 오고 우열을 먹고 자라는
사회관계증명서라네
자성심은 실존에서 오고 자기애를 먹고 자라는
자기성찰증명서라네
그 알량하게 잘난 자존심 위에
얄팍한 우월감을 빨아 말리우고
그 못나게 뭉개진 자존심 위에
깊숙한 열등감을 꺼내 걸어놓으시게
欱 들이마실 합
雕 독수리 조, 새길 조
搯 꺼낼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