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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같은 연극, <꽃들에게 희망을>

밥통성찰록

by 청와

1. 트리나 포올러스 원작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작품을 연극 무대에 올리려고 한다.


2. 원작 등장인물 분석 및 캐스팅


생존과 번식을 위해 나뭇잎을 갉아먹고 부둥켜안고 뒹구는 애벌레의 행동양식은 두 가지이다. 먹고사니즘과 열씨미즘이다. 열심히 먹고사는 청와빌라 102호 범부를 캐스팅한다.


저 잘난 경험과 앎을 가지고, 애벌레기둥의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애벌레나 나비를 보았다고 말하는 애벌레를 비웃는 애벌레의 행동양식은, 귀차니즘과 먹고노니즘이다. 101호 깍쟁이가 제격이다.


맹목적으로 애벌레기둥의 꼭대기에 오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애벌레의 행동양식은 굵게이즘과 까짓거이즘이다. 202호 장부가 어울린다.


애벌레기둥의 꼭대기에 오르려 남을 떨어뜨리는 등,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애벌레의 행동양식은 죽고사니즘과 막나가니즘이다. 201호 건달에게 맡기면 딱이겠다.


실천보다 이론에 능해, 나비에 관한 이야기나 애벌레기둥이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말로만 떠들어대면서 그처럼 행하지 못하는 애벌레의 행동양식은 쪼자니즘과 깐까니즘이다. 301호 샌님이라면 잘 해내겠다.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기에, 나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애벌레기둥을 내려와 더 나은 무언가를 찾는 애벌레의 행동양식은 이제다시즘과 내탓이즘이다. 해 줄는지는 모르지만 302호 군자에게 부탁해 보자.


애벌레기둥이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관념에 세뇌되어 자신을 속이고 허세 때문에 남을 속이고 있는 애벌레의 행동양식은 고매이즘과 에고가득이즘이다. 401호 도사에게는 식은 죽 먹기 아닐까?


고치(지금 현재의 삶) 속에서 숨죽이며 제 안의 그놈을 그님으로 곰삭혀 승화시켜 가는 애벌레의 행동양식은 절로절로이즘과 에고없으미즘이다. 우화등선이라는 건데 이건 402호 성인이 아니면 안 된다.


3. 작품 속의 '아름다운' 나비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은 애벌레와 나비의 이야기를 통해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 또는 어리석은 삶에서 더 나은 삶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는 씨알의 상태이다. 어른은 씨알이 움트고 부화한 상태이다.


씨알을 품는 것이 안음다움이다. 꿈과 희망을 품는 거다.


어떤 알을 품고 있는지, 품고 있는 알을 어떻게 움틔우고 부화시켜야 하는지 알아가는 것이 알음다움이다. 꿈과 희망을 키우고 가꾸는 거다.


씨알을 움틔우는 실행이 알움다움이다. 꿈과 희망을 이루는 과정이다. 지지부진이라는 말이 이 과정을 나타내는 적당한 말이겠다. 더디게 더디게 내딛다 보니 나아가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것일 뿐, 어리석어 보이는 그 더딘 디딤이야말로 '우공이산', '천리길도', '태산이 높다 하되' 등등에 박제된 너무나도 비근한 삶의 이치이다.


모든 희망의 끈을 잃고 좌절하는 순간에도, 살아있다면 그 삶을 다 던지는 거다.


"한 마리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절실히 날기를 원할 때 가능한 일이란다."


고통과 좌절마저도 참고 견디며 지금 여기의 삶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앓음다움이다.


그 안음다움과 알음다움과 알움다움과 앓음다움이 애벌레가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 데 필요한 과정들이다. 바로 그 아름다움들로부터 나비의 날갯짓, 아름다운 비상이 시작되는 거다.


4. 작품 밖의 아름다운, '인생 같은 연극'


나비의 삶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품고 키우고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삶이 아름다운 삶이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은 우리 삶에서 커다란 비약의 순간을 말한다. 삶의 비약이 단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인 비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한 도약들이 모두 아름다운 비약의 계기들이다.


아가들이 몸을 뒤집는 그 눈부신 비약, 첫발을 떼는 그 놀라운 비약, 엄마 아빠를 부르는 그 감동적인 비약, 제 입에 스스로 먹을 것을 넣을 줄 알게 되는 그 뿌듯한 비약, 사랑을 찾아 꿈을 찾아 행복을 찾아 도전하는, 그 설레는 그 하나하나의 비약들에서 나비의 아름다운 날갯짓을 볼 수 있어야 한다.


5. 시로써 맺는다.


鳶飛魚躍 연비어약

비약


孩成初飜耀眼天 해성초번요안천

아기가 첫 뒤집기를 성공한 눈부신 날에


蠋倒懸樹孤絸化 촉도현수고견화

애벌레는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고치가 되었고,


站後何日起始步 참후하일기시보

따로섬마 하던 어느 날 첫걸음마를 떼자


數千胡蝶翩舞飛 수천호접편무비

수 천 마리의 나비가 나풀거리며 춤추듯 날았지.


耀 빛날 요

蠋 나비 애벌레 촉

絸 고치 견

站 우두커니 설 참

따로섬마 : 아이의 두 발을 손에 올려놓으면 손 위에서 꼿꼿하게 서 있는 것을 말한다. 어머니는 '섬마섬마'라고 하셨고, 장모님은 '따로따로'라고 하셨다.


6. 사족


'연극 같은 인생'이 아니다. '어느 개인의 인생'이라면 특정한 의미의 연극 같은 인생이라 말할 수 있다.


'인생 같은 연극'이 맞다. 모든 인생이 한 편의 연극이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연극 같은 인생'도 말은 된다. '같은' 말이니까.


얘기의 핵심은, 인생이라는 연극의 주인공은, <그놈 전, 그놈 이야기>에서 이미 얘기했듯, 포커스-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달려 있다는 거다.


Yes.

I did it My Way~.


이 대사가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연극의 묵지근한 후렴이다.


청와빌라에 사는 여덟 명은, 나의 내면에 거주하고 있는 나의 여러 모습들을 여덟 가지 인물로 유형화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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