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밤은 걷히고
간밤의 소동을 끝으로 일주일 동안의 일과가
잠시 중단되었다
아이들의 일상생활이 중지되고 일주일간 어제
소동에 대한 벌로 모두 생활관에서 나오지 못하고
감금된 채 생활하게 된 것이다
나도 일단 나와서 일주일간 미용실도 돌아가야 했다
나오는 길에 어제 그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일을
맞게 되었다
나는 그 친구와 병원 엠뷸런스에 함께 탑승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의정부 에있는 성모 병원에 도착하여 수속을
마치고 있는데 병원에서 급히 전화를 바꿔 주었다
그 시절에는 핸드폰이 없는 시절이니 사감은
병원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나를 바꾸라고
한 모양이다
다름 아닌 유정이를 산부인과에도 들러 검사를 받게
해보고 오라는 전달 사항인 것이다
아 ~ 그 친구 이름이 유정이구나
속으로 생각하면서 나이가 어렸던 나는 그 당시 왜 산부인과에 가보라는 건지 이유를 잘 몰랐다
시키는 대로 산부인과에도 수속을 해두고 유정이를
데리고 산부인과에 갔다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간호사는 나를 불렀다
신유정 씨 보호자 이신가요?
나는 뜻하지 않게 신유정의 보호자가 되었다
네 하고 짧게 대답한 뒤 간호사를 따라 들어갔다
켁~ 순간 담배냄새로 기관지가 나쁜 나의 숨통을
조여 왔다
나이 든 할아버지 의사는 담배를 한 개비 꼬나문 채
앉아하고 반말을 하며 눈과 턱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어처구니없이 들리겠지만 그 당시에는 집은 물론이요
사무실 학교 식당 백화점 공공기관 버스 기차 비행기에서도 담배를 피우고 차에도 비상 재떨이가 구비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커다란 크리스털 재떨이에 담뱃재를 비벼 끄더니
나를 위아래 쓰윽 훑어보더니 복지원 선생이야 하고 물었다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하자
의사는 이내 임신이야 6 개월 되었는데 사감 하고
아기를 뗄 건지 어쩔 건지 의논해보고 결정하고 오라면서
크레졸 마신 건 괜찮다고 그걸로는 사람이 죽지 않는 거라면서 그 친구에게 몹시 불친절하고 불쾌한
말투로 이야기를 해줬다
순간 여자 들만 수용되어 있는 곳에서 임신이라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어젯밤 이 친구를 마주친
곳을 떠올렸다
그러나 고개를 흔들며 그럴 순 없는데 하면서도
다시 아이를 보니 왜 약을 먹었는지도 알 것 같아
분노가 슬슬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총무라는 분은 이미 70대의 노인이 아닌가
그래도 외국인 못지않은 큰 키에 유럽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멋진 외국 할아버지 느낌이었는데
설마 설마 하면서도 생각을 떨칠 수는 없었다
순간 나는 하~아 하고 입속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거였네 나는 일단 유정이를 데리고 입원실에
올라가서 환자복을 갈아 입히고 눕힌다음 약간은
까칠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의 간호사에게 안내사항을
듣고 있는데 그녀는 슬슬 나의 못된 성질에 부아를 돋우었다
참 이상도 하지 복지원에서 온 어린 환자 에게는
누가 이렇게 불친절해도 된다고 허락하였는가?
혀가 잘려 반토막인지 툭툭 반말에 내게도 지시하듯
하대를 하고는 나가버린다
한마디 하려 뒤를 쫓다가 이내 멈춰 아이를 돌아보며
참았다
그리고는 조심히 첫마디를 건네보았다
이름이 유정이라고?
나는 새로 온 기술 선생님이야 미용과를 담당하고
있어하고는 살짝 웃어 보였다
이런 나의 미소가 멋쩍게 그 친구의 첫마디는
근데.. 어쩌라고 그 친구는 뾰족하게 말을 던졌다
나는 움찔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다시 한번 말을 이어갔다
배고프지 않아 ~ 먹을 거를 좀 사 올까?
하니까 그녀는 잠이 뽀로통했던 입을 열어
그럼 초콜릿 한 개만 하며 냉큼 말을 낚아채었다
나는 뭔가 나에게 틈을 내준 거 같아서 기뻤다
병원 매점에 가서 베지밀 한 박스와 가나 초콜릿을 두 개
사서 병실로 올라갔다
그사이 그 아이에게 경비팀에서 발목과 침대 난간을 연결해 수갑을 채워 두었다
아니 왜 이걸? 적잖이 당황 한나는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고 내가
지금 어떤 곳에 들어갔나 놀랍기도 하고 뭔가 이상하다
는 생각에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조심스럽게
경비팀 에게 베지밀을 한 병씩 내밀고
유정이에게 초콜릿을 쥐어 주었다
그리고 토닥토닥해주고 손수건을 꺼내서
발목에 수갑이 차갑기도 할 테고 쓸리지 말라고
안쪽에 감싸 묶어주었다
#악마들을 마주할 시간
훗날 안 사실이지만 유정이는 나보다 무려 다섯 살 위의
언니였다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유흥가에 있던 아이들이라
예쁘게 생기고 나이가 어린 미성년자라 잡혀오기도
했지만 나이 많은 성인 윤락녀들도 집창촌에서 단속되어
오거나 매약 대마초 중독자로 잡혀왔다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유정이를 데려다주는 것 까지가 오늘 나의 임무였기에
나는 유정이를 병실에 두고 돌아와야 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이틀새 많은 일들이 벌어졌던 터라 집에 오자마자
나는 침대에 미쳐 눕지도 못하고 소파에 쓰러져 깊이
잠들었다
유정이와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후에 들은 소식은 바로 낙태수술을 하고 하루 만에
퇴원시켜 내보내 졌다고 한다
그 후 다시 그녀는 유흥가를 전전하고 있더라는
후문이 들렸다
그 총무 할아버지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계속 악마 같은 짓을 감행하며 그 후에도 오랫동안
최후의 그 마지막까지 함께하였다
눈을 뜨니 새벽이 밝아 오고 있었다
문득 유정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졌지만
일주일간 복지원 출근이 금지되어 가볼 수도 없었다
나는 지난 일들을 떠올리며 그냥 봉사가 아닌
미용실을 그만두고 복지원 입주 교사로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막상 결심이 서고 나니 가슴이 터질 듯했다
눈을 뜨기 무섭게 손에 잡히는 점퍼를 뒤집어쓰고
동네 구멍가게 앞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복지원에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넘어 사감이 친절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순간 아~ 이런 목소리도 내는구나
참 다양한 모습과 목소리를 지녔구나 짧게 스치듯 생각하면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사감 선생님 저인데요 혹시 지난번에 제안 주셨던
입주 교사로 근무할 수 있을까요?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가르치고 싶어서요
사감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코맹맹이 소리까지
내면서 그럼 너무 좋지요 갱생의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 보세요 한다
그 정도의 원대한 꿈을 지닌 건 아니었지만 일단
무슨 객기인지 나도 모르겠지만 왠지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았다
나도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냥 이십 대의 객기라고 해두고 싶다
#세상에는 다른 세상이 함께 존재한다
아침 일찍 미용실에 출근했다가 다음 주 까지 일하고
퇴직 하 겠노라고 복지원에서 좀 더 의미 있는 미용일을
해보고 싶어 졌다고 이야기를 전달하고는
며칠 전 원장님께서 부탁하신 일정이었던
원장님의 심부름으로 이태원을 가서 논노라는 일본 잡지책을 중고로 잔뜩 구매하고 몇몇 한국 패션잡지도
구매하고 달러 할머니에게 달러도 환전하고 버스를 탔다
종로에 와서 갈아타는 버스를 잘못 타서 고려대 가 있는 안암동으로 접어들었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지 생각이 스치는 순간 정말이지
짧은 시간에 눈과 코 입 모든 구멍에서 눈물과 콧물 침이
흘렀다
어떻게 손써볼 틈조차 없이 몸속에 있는 액체들이 흘렀고 눈을 비벼보니 고통이 두배로 돌아왔다
밖을 보니 시위대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군인인지 경찰인지 휘각을 불며 난리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의정부 가는 버스를 얼른 갈아타고 창문을 열었다
빨강과 흰색의 깃발들이 집집마다 나부끼는 점집들이 즐비한 미아리 고개를 넘으며 창밖의 바람을 미친 듯이
맞으니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망월사를 지나 의정부역
에서 내려 동두천행 기차를 탔다
문 열린 기차에서 달리는 바람을 맞으니 기분도 좀 나아졌다
내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기차 속도처럼
칙칙 거리며 굴러간다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체 ᆢ
#젊기에 할 수 있는 선택
그렇게 오전에 원장님의 심부름 한 대가로 오후 출근 없이 바로 퇴근하는 꿀 같은 자유를 얻었다
그 시절 미용실이라는 곳은 토요일 일요일도 없었고
최저임금이라는 것조차 없던 시절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힐 수 있게 해 준다는 명목으로 거의 식모살이와 같은 삶을 살며 기술을 배우곤 했었다
그때 당시 내 첫 월급이 12만 원이었다
그것도 대우가 좋은 편이었다
대부분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고 그냥 일 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그때 당시 상고를 졸업한 내 친구의 경리 초봉이 50만 원
은행에 취직한 친구는 80만 원을 받았다
예전에는 여상을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할 수 있었다
앞서도 말했듯이 내가 동두천 미군부대에 취직한 이유가
정당하게 일한 돈과 합리적인 시간이었다
그곳은 그 시절 신기하게도 주 5일 근무제가 있었고
금요일 2시에 모든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구조였다
미국은 금요일까지 일하고 2일은 쉬는 구조로
돌아가기 때문에 한국에 주둔해있던 미군에게도
적용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군과 가족들은 대부분 금요일 2시에 퇴근하면
가족들과 식사 모임을 하고 주일에 교회를 가고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파티도 즐겼다
우리나라는 당시 토요일에도 학교를 가고 직장도 토요일
까지 당연하게 출근했으니 서비스직이었던 미용실은
직장 인들을 위해 일요일까지 풀 근무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고 근무시간이 12시간이 넘는 곳이 태반이었다
우리 윗세대 선배들은 거의 퇴근 하서도 그 집 아기 돌보기부터 빨래 집안일 사장님 남편 퇴근하면 식사 준비까지 전천후로 해야 했었다면서 지금애들은 거저
일하는 거라고 우리에게 늘 나 때는 말이지 를 침 튀기며 설교해대곤 했었다
우리들도 그저 편히 스텝 시절을 보낸 건 아녔는데도 말이다 세탁기도 없는 시절이라 손빨래로 그 많은
미용실 수건을 빨고 퇴근해야 했었다
그때 당시 짤순이라는 탈수기가 나왔는데 손빨래를 해서
탈수기에 넣으면 물기가 꼭 짜져서 털어서 널면 빨리 마르는 신기방기한 신문물이었다
친구가 근무하는 미용실 원장님이 그걸 사셨다고
해서 구경 가서 부러워했었던 적도 있었다
그 당시 부르스타는 또 미용실에 새로운 고대의 혁명
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온도가 고정되어 있는 전기 고대기를 쓰다가 휴대용 가스 부르스타가 나오니 거기에 쇠고 대기를 달 귀서 스스로
온도를 조절해서 쓰는 기술을 연마해 그걸 잘하는
미용사를 일류라고 부르며 스카우트도 해갔다
그 당시 그걸 잘해서 우리들은 찾아가서 배우기도 했던 전설의 조선호텔 미스박이라는 유명한
분도 계셨는데 그분이 나중에 차린 미용실 이름도
조선 호텔 미스박이었다
암튼 재미있는 시절이었고 세상에는 너무도 다양한
다른 세상 이 공존하고 있었다
#또 다른 세상으로의 초대
나는 그렇게 일주일 동안 내 주변 정리를 한 뒤 짐을 싸서
복지원으로 향했다
앞으로 내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미지의
세상에 나의 운명을 던져 보기로 했다
기차는 덜컹거리며 동두천 역에 다다랐다
나는 동두천 역에 내려서는 역 앞에 있는 미국 사람이
하는 사탕가게 들려서 보기에도 황홀한 사탕들을 담아
계산을 하고 다시 아이들이 있는 기술학교 복지원으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면서 좀 친해져 보려는
속셈으로 발걸음이 신나 졌다
그때 그 신사는 내발 걸음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악한
공간을 나 스스로 신나서 걸어 들어가는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울 수 없는 더럽고 아픈 기억의 공간으로 내가
나를 초대 한셈이다
그 아픈 시간들을 잊고 지내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잊은 척 연기하며 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우연히 발견한 일기책 한 권에 나의 모든 기억은
마치 어제의 일처럼 다 소환되어 어디부터 정리해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낡은 일기장 속의 아이들은 나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나 여기 있어요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