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있어요

한 소녀를 만나다

by 밥티스트

하늘색 대문 앞에 서서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운명처럼 이끌린 이곳에서 나는 마음을 한 번 더 가다듬어 보고 벨을

눌렀다


지난번의 놀라운 일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숨 막힐 듯 적막한 공기만 흐르고 있었다

나는 다시 미용자격증반 수업을 위해 아이들을 정비하고

인솔하여 미용 작업반으로 향했다


하늘색 트레이닝복 같은 원복을 입은 아이들은 소곤거리며

따라왔다

작업장으로 들어와 마네킹 민두를 나누어주고 가발 씌우는

법과 두상 섹션 나누는 법을 알려주고 있는데 인상적인 아이가 한 명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껄렁 거리지도 않고

사나운 말투나 거친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조용하게 순응하며 멍하고 힘없는 눈빛을 가진 소녀였다

그 소녀 시아 와의 첫 만남이었다

앞서 첫 이야기를 시작할 때 나에게 일기장을 주고 간

친구이기도 하다


시아의 이야기를 꺼내어 다시 곱씹어 보니 그 안에는

나의 이십 대의 고뇌 아픔과 슬픔이 고스란히 함께 하고

있었다

한하늘 아래 있지만 우리는 그 속에 또 다른 세계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곳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프지만 내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그 시간이 단단해졌던 이유는 사람들이 상상해보지도 못하는 하루하루가 악몽 같은 저 어딘가의 세상에서 처절한 삶을 외치다 사라져 간 친구들이 나에게 준 선물과도 같은 시간들이 아니었나 싶다


#나의 힘들었던 시간은 고작이라고 해두겠다

나의 어린 시절 태어나서 힘든 게 뭔지 모르면서 편안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학교 졸업 즈음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내 삶은 거기서 멈춘 듯했다

늘 부재중인 아버지 대신 나의 하늘 같았던 할아버님 께서 돌아가시자마자 늘 밖으로 돌며 사업실패와 외도를 일삼던 아버지는 바람난 여자와 모든 재산을 정리해 가지고 떠났다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할 틈도 없이 우리는 거리로

내몰렸다

사랑가 득하고 우아한 엄마는 정신도 못 차리게 나약하고 무능력했다

엄마는 갓 스무 살에 종갓집에 시집오셔서 시부모님과 시고모님 아버지 형제 갓난쟁이 두세명 포함 한 어린 6남매 까지 키워야 했다


그런 속에도 사 년에 한 번씩 들어와 아이만 하나씩 만들어 주고 가서 나는 아버지 얼굴 대신 사 년 터울로 동생들만 늘어갔다

지금도 귀여워 죽겠는 막내와 나는 띠동갑이다

그래도 아버지의 빈자리를 사랑으로 채워주시던

순수하신 울 엄마는 그저 종부의 길로 묵묵히 시부모님

과 우리 사 남매를 키워 내셨다

막상 아버지가 떠나고 나니 울 엄마는 돈 한번 벌어 본 적 없어서 경제관념 도 없으셔서 늘 우아하게 살던 대로 사시다가 문득 생활비가 똑 떨어지고 나서야 그제서

어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하셨다


늘 곱게 빗어 틀어 올린 머리에 단아하게 한복 차려입고 살림살이만 해오던 엄마는 마음을 굳게 드시고 길고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한복을 벗어던지고 시장에 좌판을 깔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 좌판 밑에는 갓 돌 지난 우리 막내 남동생이 누워 있었다


먼발치서 그 모습을 본 나는 미친 듯이 울면서 도망쳤다

왜 그때는 가서 동생을 업고 봐줄 생각을 못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엄마의 기둥이 되어 주지 못한 내가

너무 얄밉고 한이 된다


나는 내 꿈이 좌절된 것에 대한 아픔만 가득했고

매일매일 죽음의 방법을 꿈꿨다

악기 전공을 하던 나는 대학을 포기하고 악기를 팔아

월세방을 얻고 집안의 가장이 되어 미용실에 취직하게

된 것이 원망스럽고 그렇게 취직된 미용실의 난잡하고

허접함에 화가 나기만 했었던 거 같았다


# 라테는 말이야

그때 당시에는

미용실이 지금처럼 운영되던 것은 아니고 새벽부터

밤 열두 시 한시까지도 하던 시절이었다

부잣집 마나님들의 사교장이었던 미용실은 그야말로

야단법석의 하루였다

유흥업소도 밤새 하고 홍등가도 난무하던 시절이

였기에 미용실도 거기에 따라 밤새 하는 곳도 생겨 났다


눈뜨면 해준밥 먹고 악기만 불던 내게 하루 종일 세탁기도 없던 시절에 수건 빨래와 까탈 스러운 여자들의 시중 들키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에다 매일 드나들던 사모님들은 화투를 치느라

미용실을 하우스라고 부르며 하루 종일 일과를 보냈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정수기나 커피 믹스도 없던 시절이어서 미용실 시다 바리 들은 매일 그녀들의 담배 심부름과 커피 타는 시중까지 들어야 했다


그때 당시 미용사라고 부르지 않고 그 미용실의 최고 디자이너는 일류라고 칭하고 밑에서 배우기 시작한 스텝들은 시다바리 라고 불렸다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니 샴푸를 하는 중에도

밥을 시켜먹는 중에도 담배를 피워대니 하루 종일

독한 파마약 냄새와 담배연기로 가득 찬 공간에 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

그때 당시 동두천 에 있는 미용실에서는 종종 클럽

거리로 출장을 나갔는데 하루는 기숙사 같이 생긴

곳으로 출장을 갔다


이곳에 출장 가면 파마도 하고 염색도 해야 하니 몇 시간

밖에서 근무하다 바로 퇴근할 수 있어서 좋았다

파마 도구를 챙겨서 도착하니 사자머리를 한 마마님이라는 여자가 우리를 모아 놓고 주의를 준다


아가씨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면 안 되고 머리 다할 때까지

밖으로 문을 잠그겠다고 한다

우리가 화장실은 어떻게 해요 하니까 방마다 화장실이

있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곳 미군클럽에 아가씨들 대부분은

인신매매로 팔려온 여자들이라 건달들이 매일 지키고

있어 밖에 몇 시간씩 나와서 머리조차 할 수 없었던 거다

미용실 다녀온다고 하고 많이들 도망갔던 모양이다


먼 훗날에 종로 쪽에 미용실에도 취업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삼청 쪽이나 청량리 쪽에 정부에서 은밀히 대놓고 주관하는 기생관광도 생겨내서 일본인 관광객들이 넘쳐나던

시절이 있었다


상대하는 여자들이 이른바 말하는 호텔로 2차를 다녀와서 머리를 고치고 가게를 다시 기서 영업을 하기 위해 새벽까지 머리를 해줘야 하는 미용실들도 생겨나는 진풍경이 생기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일부의 여인들에게는 모두의 묵인하에 자의 반 타의 반 섹스산업에 발을 담그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당시 에는 지금처럼 동남아시아 인들이나 중국 쪽

사람들 은 없던 시절이라 군인 신분의 미군 백인 흑인

들이랑 같이 사는 여자들이 양공주라고 불리며 살고 있었고 일본이 경제 호황일 때 부산이나 명동 쪽에 일본인들이

관광이나 현지에 들어와 살 수 있었기에 일본인 현지처라고

불리는 여자들이 많았고 금전적으로 여유 있던 그들이 대부분 미용실을 이용했던 터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워듣고는 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하겠지만 인기 있는 아가씨 들은

밤새 미용실을 두서너 번씩 와서 머리와 화장을 고치는걸

본 적도 있다


동두천에도 클럽거리에 양공주라고 불리는 여자들이 있는 사창가도 두부류로 나누는데 그녀들을 백마 흑마라고 불렀다

백인을 상대하는 클럽이 있고 흑인을 상대하는 클럽이 있었다

그래서 백인을 주로 상대하는 여자는 백마라고 불렀고

흑인을 상대하는 여자는 흑마라고 불렀다


더 웃긴 건 이 여자들끼리도 싸울 때 백인을 상대하는

본인들이 흑인을 상대하는 여자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해서 흑인을 상대하는 그녀들을 무시하는 말을 하다가 종종 시비가 붙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종에 그들만의 인종차별을 하고 있는 거였다


그중에 야생마라고 불리는 애들도 있는데

그녀들은 양공주는 아니고 그 당시 우리는 토요일까지 학교와 직장을 다녔지만 외국인들에게는 금요일부터가 주말 시작이라 금요일은 내국인 금지였던 클럽에

내국인 여자들이 클럽에 들어오면 술이 공짜로 제공되고 밤새 놀 수 있어서 그렇게 흘러들어와 외국인들과 놀다

가는 여자들을 부르던 말이었다


#세상의 가장 밑바닥인 곳을 보다

나는 복도에 길게 늘어 선 방들 중에 한방을 맡아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방에는 창문이 없었고 좁은 방에 침대와 화장대 가 달랑

있었고 진한 향수 냄새에 속이 울렁거렸다

진짜 이 좁은 곳에 그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좌식 변기가 있는 작은 욕실이 달려 있었다


아마도 외국인을 상대하는 곳의 배려인듯했다

그 당시에는 거기가 뭐하는 데 인지도 모르고

휘황찬란함에 공주같이 예쁘게 꾸미고 있는 그녀가

부럽기도 했었다


화장대 앞에는 정말 작은 여자가 핏기 없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고 파마 도구를 꺼냈다

그녀는 대꾸 없이 그저 앉아서 나의 손놀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마를 말고 약을 뿌리고 중화까지 마치면 서너 시간

요즘처럼 좋은 약들이 나올 때가 아니라 시간이 길었다

파마를 마는 내내 술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직도 술이 덜 깬 모양이다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꾸벅꾸벅 졸기만 하다가

끝날 때쯤 나에게 몇 살이야 하고 물었다

나는 그때 당시 어리다고 하면 깔볼까 봐 스물셋 하고

반말로 대답해 주었다


한참 뒤에 파마시술이 끝나고 짐을 싸는데 그녀가

덜덜 떨면서 다가왔다

갑자기 눈을 꿈뻑꿈뻑하면서 내 손을 잡았다

손안에 이물감이 느껴지고 순간 나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손을 빼 버릴까 생각이 드는 순간 그녀의 눈이 너무

간절했다

나는 손을 꼭 쥐고 인사를 하고 정신없이 나왔다

쿵쾅대는 가슴을 지정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손에 쥐어주었던 종이를 펼쳐 보았다


전화번호와 한정자라고 쓰여 있었다

망설이고 있었는데도 어느덧 공중전화기에 동전을

넣고 있었다 전화를 걸었지만 뭐라 해야 할지 몰라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거리며 말했다

여보세요 거기 혹시 한정자 씨 댁인가요

하니까 수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정자냐~ 하신다

아 아니에요 저는 미용사인데 정자 씨 부탁으로 전화드려요

하니 어머니 신듯 한분은 정자 어딨냐고 다급히 물으신다

한정자라는 여자는 삼 년 전 중학교 삼 학년 때 갑자기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녀는 아직 고등학생의 나이였던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영웅심이 불타올랐는지 그 친구가 그곳을 나올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어머니께 주소는 모르고 어디 어디 있다고 알려드렸다


그렇게 일주일 이 지났을까 그 클럽에 마마님이라는 분이

씩씩대며 미용실로 들어서는데 나는 왠지 모르게 움찔했다


하원장 나 염색 좀 해줘 하며 의자에 앉았다

나는 조용히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일은 아닌가 보구나 하고 안도하는 순간


나를 향해 걸걸한 목소리로 야 네가

지난번 네가 머리 해준 그년 엊그제 토꼈다

돈을 천만 원이나 주고 사 왔는데 ᆢ짜증 나

미짜라서 돈도 더 주고 데려오고 먹이고 입히고

방 꾸며주고 한돈이 얼만데 몇 번 써먹지도 못했다며

분해했다


오빠라는 놈이 찾아왔길래 돈 가지고 오면 데려갈 수

있다고 했더니 그냥 가더라고 그래서 안심하고 밤에 미군하고 2차 내보냈는데 오빠가 데리고 튀어서 애들 풀어 잡으러 갔다며 씩씩대면서 침을 튀기도록 떠들어댔다

잡아오면 두배로 불러서 섬으로 팔아버리겠다면서

분을 토해댔다

거기에 장단을 맞춰주는 원장도 꼴 보기 싫었고

저것들이 사람인가 싶었다


안 잡혀야 할 텐데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손이 떨리고

나는 가슴이 벌렁거려 수건 빨래를 것으로 간다고 하고

뒷마당으로 도망치듯 나왔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녀가 도망가서 잘살기를 바랐다


#그저 시절 이 그랬어라고 하기엔

인신매매로 사람을 사고 판다는 이야기를 미용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어 대는 일이 지금은 상상도 못 하는 이야기지만 동두천 에는 그 당시 미군클럽 주변에 양공주 사창가라는 곳에 포주들이라 일컫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흔하게들 주고받는 이야기였다


범죄가 범죄인지도 모르는 시절이었다

지나가다가 봉고차 조심하라는 이야기도

난무하던 시절이었고 실제로 잡혀가는 걸 본 적도 있었다

갑자기 건장한 사내들이 한차 내려서는 집 나간 여동생이라고 하고 잡아끄니까 그 여자가 미친 듯이

아니라고 발버둥 쳤다

주변 사람들도 구경만 할 뿐 선뜻 누구 하나 나서서

말려보는 사람도 없다


거기에다 늙수그레한 아저씨들이 한 마디씩 거든다

여자들이 집 나와서 내둘리면 못쓴다며 오빠들 따라

집에 들어가라고 혀를 찬다

진짜 오빠들이었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나의 잔상에 남아 있는 그 시절의 풍경이다


암튼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미용실 근무가 신물 나게 싫어진 즈음에 동두천 미군부대 영내에 있는 미용실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우연히 봉사하러 갔던 기술학원에

기술 선생님으로 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지긋지긋한 미용실보다는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내 처지 또한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아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라 매일 죽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라서 나에게는

이상한 나라이긴 마찬가지였던 곳이었지만 선생님이라고 불리며 우월함을 누릴 수 있는 그곳이 좋았었던 것 같다

이 가슴 아픈 아이들을 품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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