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따뜻한 어느 날. 아빠의 생신날이다. 그 전날, 일을 끝내고 집 앞에 거의 다 와가는데 엄마에게서 미역을 사 와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집 앞 편의점으로 가서 3,100원짜리 잘린 미역을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픈 사람에게는 케이크를 사서 축하하며 생일파티를 해선 안된다.’ 처음 듣는 요상한 미신을 말하는 아빠로 인해, 미역국만 끓이려는 엄마였다. 당일 아침, 유독 아빠가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엄마는 혼자 아침식사를 하고 출근을 나가셨다. 그래서 내가 아빠의 미역국을 끓여 준비해야 했는데(물론 이미 만들어져 다시 데우는 형태.)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빠는 계속 잠만 잤다. 그냥 푹 자게 내버려두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동생과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나가기 전, 살짝 깬 아빠에게 식사를 할 거냐고 물어봤지만 나중에 먹는다고 대답했기에 나는 후다닥 밖에서 밥을 먹고 다시 돌아왔다. 근데 이게 웬걸. 집으로 돌아오니 아빠는 이미 미역국을 먹고 난 뒤였다. 생일 점심상을 혼자 먹고, 아빠는 다시 잠에 들었다.
아빠가 며칠째 열이 지속되었다. 열이 날 때마다 집에서 하염없이 열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답답했던 엄마는 아빠에게 입원을 권유했다. 입원이 가능한 병원으로 가서 암환자인 것을 얘기하고, 아빠가 계속 통증을 호소했던 어깨 쪽도 함께 치료받기로 했다. 입원을 했기 때문에 혹시나 갑작스러운 일에 대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는 엄마였다. 아빠는 이번 물리치료가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며칠간의 짧은 입원생활이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물리치료를 받으러 통원 치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행히 아빠는 이제 열이 나는 일이 드물어졌다.
1차 항암을 맞고 나서부터 조금씩 아빠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엄마의 말로는 온몸의 근육이 다 빠지니, 성대의 근육마저 빠져버려 목소리가 바뀐 것 같다는 것이었다. 바뀌어버린 아빠의 목소리는 마치 20년 후의 할아버지 목소리를 미리 듣는 것 같았다. 아빠 소식을 들은 옛 동료들이 아빠에게 전화가 오는 일이 잦아졌다. 아빠는 기분에 따라 전화를 받을 때가 있었고, 받지 않을 때도 있었다. 받지 않을 때가 조금 더 많아질 시기였다.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아빠가 스피커폰으로 하는 바람에 통화를 엿듣게 되었다. 예전 직장의 후배로 추정되는 사람이었다. 소식을 듣지 못한 건지, 듣고도 모른 채 슬쩍 안부 전화를 건네려 한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 후배는 최근 옛 동료를 만났다는 말을 하며 아빠 생각이 나 통화를 했다며, 별일 없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물어왔다. 아빠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는 게 점점 확실해지는 통화가 되자, 아빠는 목소리 데시벨이 커지며 껄껄 크게 웃기 시작했다. 아픈 곳은 없냐는 후배의 말에 아빠는 괜찮다는 답을 했고, 변한 목소리를 눈치챈 후배는 근데 목소리는 왜 그러냐며 물어봤다. 아빠는 장난스럽게 “맛이 갔지 뭐-“하며 암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후배도 조만간 보자며, 본인이 곧 내려오겠다는 말을 하며 통화가 끝났다. 계속해서 자신의 증상을 얘기하거나, 병원에서 들었던 말들을 반복해서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통화들이 지겨웠던 아빠에게 오랜만에 걸려온 이런 류의 통화는 즐겁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옆에서 목소리만 듣는 나에게도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