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가 있든 없든 추락은 힘들다
어릴 적 자주 꾸던, 하늘을 나는 꿈은 꼭 '추락'으로 끝이 나곤 했다.
끝도 없이 떨어지던 추락의 느낌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제인 듯 선명하기만 하다.
단전 어디쯤인가가 아슴아슴 쪼그라들 것 같고, 오금이 저릿저릿한 그 느낌.
바닥에 부딪혀 온몸이 산산조각이 나기 직전에서야
현실로 내동댕이쳐지듯 꿈에서 튕겨 나오고도
온몸을 떨면서 공포와 안도가 뒤섞인 기분으로 꿈과 현실을 오락가락하던 기억.
그 서늘한 느낌은 몇 번을 반복해서 꿈을 꾸어도 희석되지 않는 농도 짙은 두려움이었다.
열 몇 살 까지는 무서운 꿈을 참 많이도 꿨다.
어른들은 키 크는 꿈이라며 아이를 위로했지만
떨어지는 꿈을 안 꿀 수만 있다면 키 따위는 크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신기한 것은 성인이 된 이후에는 한 번도 떨어지는 꿈을 꾼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정말로 어른들 말씀처럼 키가 크기 위해,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꼭 꿔야 하는 꿈이었나.
더 이상 추락하는 악몽을 꾸지 않는 어른이 되고 보니 현실이 악몽인 경우가 많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현실이라는 거친 끈을 질기게 부여잡고 아슬아슬 살아간다.
살갗을 파고드는 끈을 '고마- 확!' 놔버리고 싶은 순간이 자주 찾아오지만
추락하던 악몽의 기억이 생생한 나는 지금도 추락이 두려워서
찌질함을 더한 찌질함으로 방어하며 연명한다.
터덜터덜 집으로 가는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본 하늘은 어느 때보다 붉게 노을 져 있었고
구름마저 핑크색으로 물들여 그림보다도 예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린 날의 악몽 속에서도 저렇게 예쁜 하늘이 펼쳐졌다면
날개 없는 추락도 조금은 해피한 느낌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나는 좀 더 당당하고 멋진 추락을 택할 수도 있었을까.
추락하는 그것에 날개가 있든 없든 추락은 힘들다.
오늘도 나는 비행과 추락 사이를 오가며 버틴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