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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개한 엄마입니다

아토피 자연치유기

by 모모제인
엄마가 그래 보이진 않는데..


소아과 의사가 고름과 딱지로 짓무른 아이 손등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던 그 눈빛을 기억한다.


의사 눈에 나는 현대의학의 편리를 거부하는 미개인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연고 대신 된장을 치덕치덕 바르고 온갖 아토피 민간요법을 고수하면서 아이를 힘들게 하는 멍청한 부모 쯤으로 말이다.




아토피의 시작은 손가락 사이 가벼운 진물이었다. 근처 피부과에서 통상적으로 쓰는 스테로이드 연고 처방을 받았다. 몇 시간 간격으로 소량씩. 길게 쓰지 않고 일주일만 경과를 보자고 했고 그다음 진료 때에는 그보다 조금 강한 연고로 바꾸어 또다시 2주일을 보자고 했다. 의사의 처방대로 양과 횟수를 정확히 지켜 사용했고 그다음은 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더 센 연고를 처방해 주었다.


이 연고가 다 떨어지면 다시 오세요.


통상처럼 사용기간을 명시해주지 않은 채 진료는 끝났다. 몇 달 후, 약속대로 연고를 다 썼을 때 의사는 다시 똑같은 연고를 주며 똑같이 다 쓰면 오라고 했다.


그 병원에 다시는 가지 않았고, 그 사이 아이 손에 진물상처는 더 커졌고 가려움도 심해져 갔다. 5살 아이의 유일한 사회생활에도 지장이 생겼다. 상처부위가 손등이었기에 감염예방과 미관상 이유로 한 여름에도 면 장갑을 끼고 다녔다. 친구들과 손을 잡거나 손의 소근육을 사용하는 활동들을 할 수도 없었다.


다른 병원에 가도 치료방식은 똑같았다.

아이 나이에 맞는 스테로이드 최대치를 처방받았고, 나아졌다 생각해서 중단하면 더 빠른 속도로 악화되기를 반복했다.


(스테로이드의 흔한 부작용인데 "리바운드"라고 하며 많은 아토피 환자가 치료방법을 바꾸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많은 대체의학 매체가 리바운드를 강력한 마케팅 도구 삼아 치료 광고를 하고 있다.)


기적의 약이라는 스테로이드에 대한 신뢰가 처참히 무너지고, 아토피 환자 부모의 지난한 일상이 시작됐다.


주변 가족들, 그리고 생면부지의 전문가들이 저마다 아토피에 좋다는 수만 가지 방법을 내놓고 있었다. 방황의 나날이었다. 찾고 찾아간 어느 한의원에서는 아무리 아이라지만 옷을 다 벗겨두고 구석구석 사진을 찍고, 자기가 쓴 아토피 책과 연고를 강권하는데 부모의 애타는 마음을 이용한 상술에 마음만 상해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가장 효과를 본 방법은 '식이조절'과 '완정연구소'의 치료 프로그램이었다.

(식이조절 이야기는 별도 글에서 언급하도록 하겠다.)


선택한 프로그램은 보조식품, 보습치료, 목욕치료 세 가지다. 매일 40도의 물에 치료제를 풀어 반신욕을 하고 쓰디쓴 노니액을 마셨다. 한창 단맛에 빠져 지낼 나이에 역겨운 보조식품을 눈물과 함께 삼켰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고문은 보습치료다. 탄 냄새 같기도 하고 구린내 같기도 한 로션을 뿌리고 바르는데 액이 상처에 강하게 분사되어 닿으면서 엄청난 통증을 일으킨다. 가려움 해소에 탁월한데 그걸 뿌리는 시간은 아이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흡사 울며 도망 다니는 아이를 흉기를 들고 잡으러 다니는 부모 형상이다.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친구들이 아이에게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피했다.


아이가 감당해야 하는 고통은 부모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2년 간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




2019.3.24 기록

지금 시간 새벽 3시 반.
11시 반에 자리에 누워서부터 지금까지 10분 이상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조금 잠이 들었나 싶게 스르륵 힘이 빠졌다가 5분도 안돼 긁기 시작한다. 그러기를 계속 반복.

그렇게 심한 상처를 보아왔어도 이 또한 지나가겠거니. 마음을 다져왔는데 설움과 미안함과 안타까움에 내가 더 잠을 이룰 수 없다.

쓰디쓴 한약을 맛있다며 먹고. 따가운 소금물을 자기가 스스로 뿌리고. 그 좋아하는 계란과 빵을 그냥 지나치는 아들.
그게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들이 너무 대견해서 더 슬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몇 번을 다시 깼다. 아기 때처럼 꼭 안아주고 다독여주고. 약도 발라주고. 젖먹이일 때 밤새 돌봐줬듯이. 다시 그 시기로 돌아간 것처럼 6살짜리 아들이 내 품에서 잠들었다. 이 얼마나 달콤한 잠일까 싶어 쉽게 침대에 내려놓질 못하겠다.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자기를 바라본다.


얼음찜질로 가려움을 달래던 지난한 밤



눈물이 흐르고 넘쳐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아이를 안고 다시 스테로이드 치료를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너무 무서웠다. 자연치유를 해보겠다는 부모의 결단이 이렇게 고통으로 막이 내리는 것일까. 지난 몇 년 간 겪은 이 고통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아주대 소아과에 아토피로 저명한 의사 선생님이 있다. 가장 빠른 일자로 예약을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순간까지도 다시 돌아갈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나는 그저 의사의 눈에 비친 미개한 엄마였다.


의사는 입원치료를 권했다. 지금 하고 있는 치료법은 모두 소용없다며 다른 치료를 병행할 수는 없으니 결단을 내리라고 했다. 아이가 불쌍하다며 혀를 찼다. 마음이 짓눌린다.


나는 또다시 미개한 결정을 내렸다.

스테로이드 없이 치료할 방도는 없겠냐고 물었다.

의사는 상처 감염이 너무 심각하다며 항생제만 일주일치를 처방해 주었다.


그게 오랜 투병 끝 완치의 방아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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