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임신하고 일 관둔 게 지금까지 후회여. 그때 같이 일하던 아줌마들은 아직까지 거기 다니고 있다대.
나는 서른 살까지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엄마의 퇴사설은 내가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을 때마다 나를 붙잡았다. 회사 관두면 30년 넘게 후회하는구나. 엄마랑 똑같은 후회를 하며 살진 않을 거야.
느네 아빠가 그 회사 다니면서 꼬박꼬박 월급 갖다 주니 망정이지.
엄마는 아빠랑 도저히 못 살겠다면서도 늘 이렇게 말했다. 안정적인 직장이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아니었음 아빠는 진작에 쫓겨났겠지? 흐흐흐.
어려서부터 들어온 말의 힘은 이토록 강력하다. 나의 안전지대는 늘 회사였다. 일단 돈을 벌어야 주위 사람에게 떳떳할 수 있었다. 관념은 대물림된다. 내 아이에게 '엄마는 집사람, 아빠는 바깥양반'이라는 관념을 심어주기 싫었다. 난 일하는 엄마여야만 했다.
2023년 7월
마흔 살의 나는 퇴사했다.내 인생은 망했다고 생각했다. 회사 이름과 직함이 박힌 명함, 비즈니스로 얽힌 관계가 의미 없어지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나의 컴포트존(comfort zone)은 사무실 한 켠, 엉덩이 하나 붙이고 있는 그 자리만큼이었다. 컴포트존(안전지대)란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영역을 말한다. 15년 동안 나름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해왔지만 그 자리를 벗어난 순간 나는 벌거벗은 채 광활한 우주를 떠도는 행성이 된 것 같았다. 일하는 엄마로서의 당당함, 일하는 아내, 며느리로서의 떳떳함, 잘 나가는 직장에 다니는 딸로서의 당돌함. 이제 그런 수식어는 퇴사라는 단어와 함께 사라졌다.
나는 공상가였다
나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믿었으며 열정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사업화하고 싶은 아이디어를 습관처럼 기록했다. 하지만 실현된 아이디어는 아무것도 없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반드시 당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은 같아도 행동은 모두 다르다.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나는 공상가였다.
나는 일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나를 잃어갔다. 일을 잘한다는 평가지 안에 내 생각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회사 정책, 그리고 마주한 사람에 따라시류를 타는 능력이 더 중요했다. 컴포트존이 가시방석이 되었다. 하지만 떠날 수 없었다.출근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한 순간도 온전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지 못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나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새벽요가를 시작한 것은 그즈음이었다.출근 전 몸을 움직이는 한 시간. 오직 그때만큼은 유일하게 나의 숨을 쉴 수 있었다. 나는 요가와 사랑에 빠졌다. 의외로 나는 운동신경이 없다. 겉모습만 보면 타고난 체육인 같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할 줄 아는 유일한 취미이자 운동. 나를 살려준 요가를 평생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3년.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내 나이 마흔. 나는 매우 힘겹게 컴포트존을 벗어났고, 예전의 나를 가여워하게 되었다. 컴포트존이 가시방석이라는 걸 알아도 한 걸음을 내딛기가 얼마나 버거운지 안다. 불확실한 이 시기에 밖은 춥다는 조언만이깊숙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무리 많은 자기 계발서를 읽어도, 남의 성공담을 들었어도, 컴포트존(Comfort zone)을 벗어나 그로스존(Growth zone)으로 들어가는 선택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도 좋다. 하지만 그 공간은 점점 좁아질 것이다.
경제적 자유를 얻는 법
경제적 자유는 돈을 얼마나 벌면 얻어질까. 나는 돈의 액수로 결정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원할 때 돈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지출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언제, 어떻게, 왜, 얼마큼 쓰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것뿐이다. 자유로운 사람은 돈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원할 때 언제든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역설적으로 안정적인 직장이 없이도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수입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을 조금 줄여도 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태다. 나 자신을 그런 자유로운 상태에 두면서 덕업일치하며 평생 먹고사는 것. 이것을 목표로 두어야 한다. 치열한 현실 속에 너무 이상적인 목표로 보일 수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보다 현실적인 이유로 40년 동안 안전한 선택만 해왔다. 그 지난 고민들과 달라진 나의 일상, 그리고 끝나지 않은 덕업일치, 그 환상의 세계로 가는 여정을 이 책을 통해 나누고 싶다.
직장인으로서 한 우물만 파는 시대는 지났다. 끊임없이 부캐를 개발하고 퍼스널브랜딩을 하는 시대라지만 직장이라는 보험은 때론 안주하게 한다. 나 역시 꽉 들어찬 아이디어 노트를 앞에 두고도 실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내가 평생 할 수 있는 일은 회사라는울타리 너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