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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제인 Aug 29. 2022

말 한마디의 무게는 얼만큼일까

엄마는 오늘 저녁 어김없이 아이 입에 밥을 한술이라도 더 들어가게 하려고 실랑이를 벌인다. 간식, 게임, 그 어떤 유인책에도 아이는 그저 태평하다. 이대로 두면 매번 그렇듯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식사시간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얼른 안 먹어! 그냥 치워버릴까 보다!"

참다못한 엄마는 빽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알고 있다. 그냥 치워버리겠다는 엄마 잔소리는 그저 나를 겁주기 위한 것이라는 걸. 가만히 있어도 이 밥은 안전하다는 걸. 그리고 저절로 내 입에 들어올 운명이라는 걸.


띠띠띠.


아이의 마음은 아빠가 퇴근하고 들어오는 도어록 작동음과 함께 다급해지기 시작한다. 아빠는 참 밥을 빨리도 드신다. 배고픈 아빠는 말도 없이 5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는 타이머를 5분으로 맞춘다.


"이거 울릴 때까지 다 못 먹은 사람은 바로 치우고 양치한. 엉?"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아이는 벌써 임무를 완료했다. 막내는 돌멩이 씹듯 못내 우적우적 한 숟갈씩 오물거리다가 냉정하게 밥그릇을 빼앗기고 만다.  


"아이, 우리 막내, 지금 잘 먹고 있었는데 5분만 더 주면 안돼요, 아빠?"


막내 입에 들어가는 밥 한 술이 아쉬운 엄마는 아빠에게 대신 부탁해보지만 얄짤 없다.


"역시 아빠 화나면 엄마 말도 다 소용없다, 그치?"


첫째와 둘째는 저들끼리 쑥덕이며 간식을 못 먹게 된  막내를 불쌍하다는 듯 쳐다본다.





거의 매일 일어나는 우리 집 저녁 풍경이다.

엄마의 백 마디는 아이 밥 한 술 앞에서는 한없이 가벼울 뿐이다. 하지만 아빠의 말 한마디는 무겁디 무겁다.


엄마는 아무리 단호하게 해보려 해도 소용이 없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밥은 다 먹어야만 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5분 안에 못 먹으면 1시간이 돼도 못 먹는다"는 생각을 가진 아빠랑은 이미 빨리 먹으라는 말 한마디에 담긴 무게는 시작부터가 다르다.


1. 아빠 말대로 안 했을 때는 정말 예외가 없구나, 하는 경험이 1번, 2번, 3번.. 반복된다.

2.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믿게 된다.

3. 아빠 말은 찰떡 같이 듣게 된다.




일관성은 모든 육아 책에서 강조하는 부모의 제1 덕목이다. 우리 부부는 그런 면에서 가사 분담이 참 잘 된다. 영역은 다르지만 둘 중에 하나는 죽어도 그렇게 하지 않는 일관된 영역이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많이 싸웠던 부분이었다. 나는 좀 봐줬으면 하는 부분에 너무 예외 없이 하는 모습에 아이들이 안타까운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 바람직한 모습이다. 내가 맘 약해지는 순간에 아이 아빠는 늘 든든한 원칙으로 나를 잡아준다.




때론 내가 가진 원칙을 바꾸고 싶은 순간도 생긴다.


분명 내가 허용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 어느 순간 보면 허용하고 있으면서 이유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건 대부분 무의식 속에 잠재된 생각 회로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 행동이 너무 싫지만 그 행동을 멈추게 하는 걸 꺼리게 되는 무언가가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 한 가지는,

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은 걸 이미 다른 누가 먼저 질책하고 있으면 절대 동조하지 않고 입을 다문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나에게 엄마 감정에 동조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늘 가지고 계셨다. 아빠에게 잔소리를 할 때도 나에게도 그 상황에서 엄마 편을 들어주었으면, 하셨던 거다. 난 그런 아빠가 안쓰러워 보였다. 나는 아빠 편을 들고 싶은데 엄마가 원하는 것도 알고 있으니, 차라리 이도 저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걸 택해왔다. 그 순간의 내적 갈등은 내 무의식에 켜켜이 쌓여갔다.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순간들. 내가 지금 투명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


내가 뒷담화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인 것 같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못 풀고 혼자 끙끙 앓아온 것도 있다. 공황을 겪으면서는 뒷담화를 좀 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바꾸긴 했지만.


https://brunch.co.kr/@momojane/18


이 상황은 업무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그동안 내 잠재의식 속에 나도 모르게 품고 있던 원칙들로 인해 내가 가진 말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나 스스로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어 왔다는 것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지난 6개월간 수차례 개인 상담과 그룹 카운슬링, 명상, 각종 강연, 독서, 온라인 콘텐츠를 닥치는 대로 하면서 안 좋은 생각 회로를 끊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다. 덕분에 내 무의식 속에 있던 생각들을 어느 정도 끌어낸 것은 작은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주제로 돌아오면,

힘이 있는 있는 한 마디는 "신뢰"와 "원칙"이 필수라는 걸 느끼게 된다.


밥먹으라는 엄마의 한마디와 아빠의 한마디의 무게 차이.
팀원의 한마디와 팀장의 한마디의 무게 차이.

업무 담당자의 한마디와 아닌 사람의 한마디의 무게 차이.

그 무게 차이는
한순간에 생겨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반복되는 횟수만큼,

많은 대화로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격차를 줄여 나는 시간만큼,

정직하게 쌓여갈 것이다.

그 사람이 가진 권력으로 인한 힘은 한순간일 뿐이다.




똑같은 요청사항인데 내가 해 줘야만 되는 일도 어느 순간 많아져 가고 있다. 내 역할 이어서이기도 하지만, 저 사람이 이해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해줘야지, 하는 상황들도 꼭 생긴다. 누군가 내게 뭔가를 "부탁" 하고,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일은 그래서 언제나 고마운 일이다.



말의 힘은 늘 대단하다.


직한 상대가 해주는 한 마디가 가진 힘은 큰 도움을 준다. 그 말의 힘을 나를 지키는 데 쓰겠다. 그리고 누군가를 깎아내리는데 쓰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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