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간
대중적으로 미얀마 여행의 원픽을 꼽으라면 바간(Bagan)이 아닐까? 미얀마를 소개하는 여행책자에 높고 낮은 탑이 수십 개가 펼쳐져 있고 열기구가 떠 있다면 이곳이 바로 바간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올드타운 전체가 유적지로 지정돼 있으니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바간을 둘러보려면 자전거를 타고 다니거나 택시, 그리고 호스카라 부르는 마차를 이용할 수 있다. 나는 시장 조사 차원에서 숙소 앞에 나갔다가 마침 대기하고 있던 코나잉을 만나면서 호스카 투어를 결정한 케이스다.
결론부터 말하면 코나잉과의 바칸 호스카 투어는 대만족이었다. 코나잉은 미얀마의 전통의상 론지를 입고 마차를 운전하는 마부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페이스북을 하는 요즘 청년이다. 씹는 담배 꽁야 때문에 앞니가 썩어서 검지만 언제나 활짝 웃으며 당당하다. 프로페셔널한 그는 파트너인 레인(Rain)을 휘파람 하나로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레인의 휴식과 청결, 식사까지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무엇보다 코나잉은 센스가 뛰어나다. 1일 투어의 경우 바간의 2,500개의 절 중 10개 정도를 보는 게 일반적이다. 나는 3~4개 탑을 둘러보고 나면서 살짝 흥미를 잃었는데, 이를 감지한 코나잉은 특색 없는 절은 그냥 통과하고 꼭 봐야하는 사원은 내가 들고 있던 가이드북에 있는 사진 그대로 찍어오라는 미션을 주고 평가까지 했다. 섬세하고 다정한 면도 있다. 사원 내부를 보러 갔던 내가 기념품을 들고 나타나면 가격을 체크하고 하자는 없는지 살폈다. 그리고 선셋 포인트인 블레이 파야에 올라 일몰을 기다리다가 마차 쪽을 내려다보면 멀리서도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투어를 마친 다음 날 시장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마주 오던 마차가 내 앞에 멈췄다. 코나잉이다. “안녕, 어디 가?” “라카웨어 사려고 낭우마켓에 가는 길이야. 그런데 가격을 잘 모르겠어. 얼마에 사야 적당할까?” 코나잉이 답답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그러니까 어제 투어 할 때 라카웨어 박물관에 갔어야지. 라카웨어 가치를 안다면 그런 질문은 못할 걸?” 라카웨어는 대나무로 만든 전통 칠기 그릇이다. 나는 코나잉이 추천한 코스 중에서 박물관을 제외시켰고, 코나잉은 그것을 지적하는 중이었다. “뭐든 과정이 중요하지. 안 그래?”
그날 저녁 코나잉과 나는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우연히가 아니라 코나잉이 호텔로 찾아온 것이다. 낮에 만났을 때 코나잉은 뽀빠산 투어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 미안하다며 맥주를 사고 싶다고 했다.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 소식을 실시간으로 검색하고 인공지능 로봇이 안내를 하고 증강현실을 체험하는 시대를 살면서 길가에서 우연히 마차 탄 마부를 만나 저녁 약속을 잡는 것이 흔한 일인가 말이다. 덕분에 나는 영어 메뉴가 하나도 없는 로컬 식당에서 친구와 함께 진짜 미얀마식 술안주와 맥주를 마시는 호사를 누렸다.
바간을 떠나는 날, 코나잉과 나는 또 만났다. 전날 코나잉은 자신의 투어를 체험했던 한국인이 써준 홍보 글을 봐달라고 했었다. 코나잉 호스카 투어를 많이 이용해달라는 내용이 한국어로 써 있었다. 나는 그 뒷면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코나잉 투어의 장점과 코나잉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문구를 고민했고, 헤어지면서 선물했다. 친구의 호스카 투어가 번창할 것임을 확신하며.
지금 나의 가치가 얼마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내면을 봐주세요. 지금까지 나름 열심히 살았어요.”
결과보다는 과정, 겉모습보다는 내면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