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중요하지만 내 겉모습이 더 중요해!
현재 항암 예정이신 분들이 가장 겁내고 피하고 싶은 부분이 "탈모"가 아닐까 싶다. (나 또한 그랬었다)
항암이 아니어도 탈모는 우리들 인생에서 피하고 싶은 단어 중 하나 일 수 있다.
(암과 탈모 둘 중에 선택하라고 한다면 정말 끔찍할 듯싶다)
왜냐면 우리는 삶이 끝나는 그날까지 어려 보이고 싶고 美에 관심이 많은 여자들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외관상 모습이 더 신경 쓰인다.
유방암 환자들 중 대다수가 첫 항암은 공포의 빨간약
'아드리아마이신'이라 불리는 약으로 치료를 한다.
유방암이라고 다 똑같은 암이 아니다. 암 타입에 맞는 각각의 치료법이 있다.
유방암 타입에는 호르몬 수용체(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수용체)/HER2타입 등이 있다.
유방암 항암제는 왜 그렇게 강한지 몸에 털이란 털은 사라지게 만든다. 머리털, 콧구멍 털, 눈썹 털, 속눈썹 털, 다리털, 팔 털, 사타구니 털,, 털털털.. 멘털(mental)도 털린다.
갓 태어난 아가들처럼 민둥 벌거숭이가 된다. 또 반대로 과거에 피부가 안좋으셨 던 분 중에는 피부가 좋아졌다고 하신 분도 계셨다. 나 또한 턱드름과 등드름이 사라졌다. (모든 것들은 장단점이 있나 보다)
난 선 항암을 4번 한 후 수술을 하였고, 제거된 암 조직에서 암 타입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2기초가 아닌 2기 말에 에스트로겐 수용체 양성, 프로게스테론 수용체 음성, 원래는 둘 다 양성인 줄 알았음) 수술 후 항암을 4번을 더 했고 유방 복원 수술을 하였다.
총 8번의 항암과 2번의 수술을 하였고 그 뒤 유두 복원술과 유두 문신을 하였다.
길고 긴 시간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갔나 싶기도 하다.
암 치료 과정은 스케줄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지만, 탈모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괴로웠던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크게 와닿는 타입 같다.
암 제거 수술 후, 내 머리털은 잔디 인형처럼 자라고 있었는데 또 항암을 하라니, 너무 절망적이었다. 악몽도 꾸었다. 다시 머리카락을 잃어야 한다는 그 부담감.
'아니 치료받고 머리카락은 다시 나오잖아 왜 그렇게 부담감이 심했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항암을 하고 난 뒤 머리카락은 예전처럼 쑥쑥 잘 자라지 않는다. 암세포도 없애고 있지만 그와 함께 모낭세포의 씨앗도 말려버리고 있는 것이 항암이다.
항암 후 머리카락이 아예 자라지 않는 분들도 계시다. 그분들은 우울증에 시달리신다.
이래서 암이란 놈은 무섭다. 우리의 삶의 질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난 5차 항암부터 도세탁셀이란 약을 만났다. 1-4차까지 약은 내성도 생기고 더 이상 암 크기가 작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주사를 맞은 뒤 머리가 다시 빠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듬성듬성 빠졌다.
뭐랄까 '아드리아마이신'은 반짝반짝 타조알이었다면, '도세탁셀'은 반지의 제왕의 골룸 같았다.
거울을 보니 볼품없는 몰골을 한 결혼도 못한 노처녀가 서 있었다. 머리는 빠지고 있고 항암약으로 얼굴은 부어있었고 최고 몸무게를 경신해가고 있던 중이었다.(식욕은 좋아서 잘 먹었다. 항암 중에는 뭐든지 잘 먹어야 한다.)
한 때는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대학생 때나 직장생활 때도 주변에서 이쁘다는 소리도 듣고 항상 연락하는 남자들이 있었는데 이게 뭐야..? 하고 신세한탄을 하게 되지만 항상 거기서 끝냈다.
자존감을 갉아먹는 생각은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선에서 끝내야 한다. 자꾸 나락으로 빠져들게 되고 더 우울해 지기 때문이다. 아플 땐 그냥 딱 우울하다, 슬프다 이 정도의 감정만 가져가길 바란다. 감정을 한 없이 쌓아놓고 풀지도 않고, 나를 방치해두는 행위는 자제하길 바라는 맘이다.
생각이 꼬리물기를 하기 시작하면 내 정신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요양병원에서는 과거 내가 어떤 위치에 있었든 돈이든 권력이든 뭐든 다 필요 없다.
그곳에서는 똑같이 빛나는 대머리의 암환자일 뿐이었다.
공무원, 은행원, 교사, 회사원, 디자이너, 주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신 분들이 많았다. 우린 다 동등했고 서로 허물이 없었다. 물론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어디든 간에 트러블이 있기 마련이긴 하지만 말이다.
난 사실 다른 요양병원을 다니다가 옮긴 케이스이다. 두 번째 병원에서 만난 언니들과 친구, 동생을 만나 한편으로 너무 좋았고 아픔을 잊고 쉽게 이겨낼 수 있었다.
첫 번째 요양병원은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한 달 정도 병원에서 출퇴근을 하였다.
어느 날 퇴근이 늦어졌고 긴 머리 암환자가 처음인 건지 보호자로 본 것인지 밤에 늦게 씻었다고 옆방 보호자가 따지듯이 말했다. 또한 항상 씻고 나온 공용화장실을 검사하듯 확인까지 하였다. 3번 정도까지는 참다가 나도 폭발하여 따지듯 말했던 기억이 난다.
"아줌마 저 암환자예요, 샤워실 물이 막히는 건 건물 자체 문제이니 불평불만은 여기 1층 직원들에게 하세요!”
그 보호자는 내가 암환자라고 하니 아무 말도 못 하더라!
알고 보니 암환자인 남편을 꽤나 오랫동안 간병을 해왔다고 병원 직원에게 듣게 되었다. 요양병원에 상주하면서 환자를 돌보는 중이었고 이곳에서도 텃세로 악평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1차 항암 후 15일 정도가 지나니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고 회사도 휴직을 하였다.
그 뒤 그분은 머리 빠진 나를 힐끔 보며 머쓱한 얼굴로 지나갔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나이 때가 비슷하고 시설이 좋은 요양병원을 찾아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지인들과 1년에 1-2번 모임을 가지며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사람에게서 스트레스를 받고 사람에게서 치유받는다. 아이러니 하지만 그렇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다.
하루하루 살다 보니 어느덧 마지막 항암을 하게 되었고 2019년 11월 26일에 끝났다.
허나 머리카락이 더 디게 자랐다. 긴박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비어 있는 앞머리를 보고 너무 우울하고 속상하였다.
탈모가 오니 나이는 더 들어 보였고 휑하였다.
난 아직 젊고 사회생활도 해야 하고, 연애도 다시 시작해야 하고, 코로나 끝나면 해외여행도 다시 가야 하는데, 머리를 심어야 하나 등등 갖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뒤 나는 주변 암환자에게서 맥주효모가 탈모에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알려준 레시피대로 실행에 옮겼다. 맥주효모 가루, 꿀, 그릭 요거트, 올리브 유를 섞어 나의 두상에 이쁘게 발라주었다.(피부가 약하신 분들은 조심하시길)
'이쁘게 자라라, 나의 머리카락들이여, 이쁘게 자라렴'
매일매일 못해줘도 일주일에 한 번씩 아니면 이주에 한 번씩 생각날 때마다 해주었다.
제일 비어있던 부분이 앞부분과 정수리였는데 마지막 항암 후 2년이 다 돼가는 지금 이 시점에 새싹처럼 자라고 있다. 너무 신기하다. (그래서 항암 후,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 분들도 희망을 가지시길.)
하루하루 다르게 회복해 가고 있는 내 몸아! 너무 고맙다,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