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아프지 말자
암 진단을 받고 진단금 3000만 원이나 되는 돈이 내 통장에 들어왔다.
거기에다가 퇴직금도 받아서 1500만 원 정도가 더 들어왔으니 사실 이렇게 큰돈은 처음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난 직장생활은 7년 했고 가장 많이 모아본 돈이 천만 원이다.
29살에 그 천만 원을 모아서 1년 동안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6개월은 어학원과 기숙사 값으로 썼다. 물론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도 병행하였다.
몸은 힘들었지만 즐거웠고 행복했다. 암으로 인해 요양생활을 하면서 그때의 추억을 먹고살았다.
추억을 먹고살아간다는 어르신 말씀을 요양생활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우선 일본에 계속 있고 싶었지만 직장이 있던 것도 돈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난 곧 30이 될 것이고 선택해야 했다. 계속 일본에서 알바를 하며 지낼 것인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난 한국행을 택했다. 더 이상 아르바이트로 버티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도 누군가에게 부탁할 수 없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도 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난 한국으로 돌아왔다.
고작 1년 살았는데 몇 개월간 적응을 하지 못하였다.
6개월 정도 살았던 시끌벅적 사람들로 붐비던 일본의 게스트 하우스는 저녁에는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음주가무를 즐겼다. 세계 각국의 아이들이 잠깐씩 혹은 1년 넘게 거주하던 곳으로 서로서로 문화를 교류하며 친밀감을 느꼈다. 생전 한국에서 느껴보지 못할 생기 가득한 모습이었다.
그곳에 있다가 한국에 오니 고요하고 적막하고 집에는 엄마와 나밖에 없었기에 마음이 더 공허했다.
또한 이전 경력이 많지 않기에 직장 잡기가 힘들었다. 한동안 방황을 하다가 들어간 직장에서 상사가 강아지 한 마리를 선물해 주셨고 지금까지 우리 가족이 되어 7년째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라고 끝나면 좋으련만 우리 이쁜 강아지는 잔병이 많아서 수술만 6-7번 한듯하다.
1. 중성화 수술(이건 미안하다)
2. 양성 혹 제거
3. 요도와 방광 결석 수술
4. 탈장수술
5. 슬개골 수술 두 번
개도 아프고, 나도 아프고, 어머니도 아팠다.
개를 키우면서 계산해 보진 않았지만 대충 중형 자동차 값 정도 들어갔다. 그래도 난 사랑으로 키우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내가 아파서 백수인 상황에선 모든 게 녹록지 않다. 두둑했던 통장은 지금은 1년 버틸까 말까 한 잔액만 남게 되었다.
그동안 난 암으로 인해 두 번의 수술을 했고 요양병원을 오고 갔으며 그 돈으로 생활비를 썼다.
어머니는 2020년 3월에는 무릎 수술을 하셔서 집에는 백수가 3명이 되었다(개, 나, 어머니)
개의 가장 좋은 주인은 백수라는데 7년 만에 난 좋은 주인이 되었다^^
전적으로 모든 생활비는 내가 부담했고 별거 중이신 아버지는 반찬 값 정도의 용돈과 밥을 사주시는 정도였다. 과거에는 원망도 많았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파서 철들었는지 이 또한 너무나도 감사하다. 부모님이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하지만 어깨가 무거웠다. 두 명의 식구를 책임져야 하는데 내 몸은 아직 취직해서 일 할 몸이 아니었다.
앞으로 고민이 점점 커져간다. 내 어깨는 무거워진다.
내 주변 환경을 원망하기에는 아직 살아갈 날들이 더 많다.
난 아직 살아 있다.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