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는 주말, 늦은 아침을 먹으면서 그릇에 대해 생각했다.
식탁에는 볶은 당근과 볶은 호박, 무생채, 콩나물무침이 한 접시에 보기 좋게 담겨있다.
채소들을 넣고 밥을 비비기 시작했을 때 그 생각이 떠 오른 것이다.
P는 비비다 말고, 밥과 아직은 덜 비벼져 뭉쳐있는 채소가 담긴 그릇에 손을 갖다 대어 본다.
손가락을 있는 힘껏 뻗쳤을 때 딱 그만큼의 그릇의 크기.
‘나는 이 정도도 되지 않는 건가?
세상은 P가 바라던 바라지 않던 조금씩은 변해가고 있었다.
P는 이왕 변해 가는 김에 더 좋은 쪽으로, 더 나은 쪽으로 변해 가길 바랐다.
세상은 쉬지 않고 변해 가니까, P도 쉬지 않고 오랜 시간 무엇이 좋은 것들인지 구분하고 선별했고, 늘 좋은 것들만 담기길 바랐다.
그것이 나를 채워 나갈 것이라면 이왕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담으려고 했던 어떤 것은 너무 컸고, 원래 P가 담고 있던 것들과 잘 섞이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어떤 것은 그 안에서 그대로 썩어 버리는 일들도 많았다.
P는 식탁에 앉아, 이틀 전 먹다 남은 토마토 2개가 담긴 체 이틀 째 그대로 싱크대 위에 놓여있는 그릇을 바라본다.
'좋다고 생각한 것들이, 여전히 나에게 좋은 것들로 잘 남아있는지.'
'담고 싶은 것들을 생각처럼 온전히 잘 담아내었는지.'
그렇게 P는 잠시, 자신이 가진 그릇에 대해 헤아릴 사이도 없이 좋은 것들이라고 생각한 것들을 쏟아부은 수많은 시간들을 기억해 냈다. 그리곤 '또 담아낼 것들이 아직도 많이 남았나.' 하고 입으로 작게 혼잣말을 한 순간, 작은 한숨이 나왔다.
주말 늦은 아침,
문득 그릇에 관하여 생각하다가 어제 시장에 다녀온 일이 기억났다.
어제저녁 집에 오는 길에, P는 시장에 들러 무화과 열매가 몇 개 달린 무화과 가지를 사서 돌아왔다.
잘 익은 무화과열매와 푸르고 손바닥처럼 큰 잎들을 그릇에 담아볼 요량으로.
모모씨 그리고 씀.
* 무화과의 꽃말은 '풍부', '풍요한 결실', '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