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1층 현관을 나서면 옆으로 감나무가 서 있다. 감이 아주 붉은빛으로 익을 시기가 되면 자꾸 올려다보게 된다. ‘붉게 익은 감이, 주인 없는 감이. 익을 데로 익어서 머리로 떨어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하고. 감나무 아래 보도블록 위로 떨어져 터진 감들의 잔해들을 보며 늘 생각해 왔다.
다행히도, 그 감나무 아래로 종종거리며 다니는 몇 해 가 지나도록 아직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제저녁,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길에 아직은 설익은 감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터져 있었다.
‘감이다.’ 머리 위를 쳐다봤다.
또, 계절이 바뀐 것이다.
다시 새로운 계절을 맞았으니까 전보다는 조금은 완전한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일까.
어른이 된 지는 오래되었지만, 어른으로 잘 익어가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일을 익어가는 것이라고도 하던데.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익어간다는 것이 ‘잘'되고 있는지에 관하여는 늘 의심이 따라붙는다.
올 해는 유독, 천천히라도 깊어지고 있는 것인지, 오래전부터 그냥 그 상태로 멈춰 서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음의 상태로 앞 선 두 계절을 보냈다.
사람이 잘 익어간다는 것이 어느 열매처럼 빨갛게 혹은 파랗게 혹은 보라색으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다 익었다는 적당한 크기라는 게 없으니, 그것은 느낌으로 알아야 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사람이 잘 익어가며 나이가 드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들이,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순간에 '느낌'으로 찾아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 그럭저럭 잘 살아왔구나.’하는 느낌이라거나 ‘계속 이런 식으로 찾아가면서 살면 되겠다’ 하는 느낌등이 오는 어느 날의 순간. 미소 짓게 되는 순간의 느낌말이다. 가끔이긴 하지만.
그것은 정말 가끔이었다. 그녀는 원래 누구보다 스스로에 대해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 날은 손에 꼽았으며, 자신의 모습에 어떤 확신을 찾아다니며 계절을 지나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인생에서 몇 없는 흔치 않은 그런 날이 찾아오면, 그녀 안으로 따뜻한 공기가 차곡차곡 잘 쌓여 가득 채워지는 느낌에 자연스럽게 어른의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있었다.
그녀의 인생에 자신이 잘 익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날들이 앞으로 과연 얼마나 될 것인지 짐작해 보건대, 그녀는 늘 자신에게 잎이 나길 기다릴 것이고. 그 잎이 무성하길 기다릴 것이고. 열매를 맺길 기다릴 것이고. 앙상해진 가지가 추운 계절을 잘 이겨내길 기다릴 것이다.
그녀가 새로운 계절의 문턱에 발을 하나 들이고, 본인의 시간이, 익어가는 저 열매들을 닮아 올해는 조금 더 붉게 잘 익어가길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계속 계절마다 그녀 안에서 '깊어짐'을 '잘 익어감'을 갈구할 것이라는 걸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나중에, 그녀의 계절 안에 모든 것이 익어가는 적절한 때라는 것이 찾아온다면.
그때 그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완전하게 잘 익어가고 있어.’라고.
그런 순간이 오길 바라며, 그녀는 아직은 설익은 감들이 가을을 따라 붉게 잘 익어가길 바라고 있다.
모모씨 그리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