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맘, 고시공부에서 창직까지
육아도 일도 포기할 수 없어
육아도 일도 잘 하고 싶었습니다. 둘 중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아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어서 직장맘이 되는 걸 포기했지만, 그렇다고 일을 하기 싫은 건 아니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일이 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나도 잘 크고 싶어서 많은 육아서를 읽고, 육아 강연도 쫓아 다녔지만,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며 일도 육아도 같이 잘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초점을 맞춘 양육서가 대부분이었고, 아이를 한창 키워둔 엄마 선배들의 조언은 밀레니얼 세대인 저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큰 아이 18개월이 되던 해, 임용고시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둘째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계속 공부를 했습니다. 육아와 고시공부를 병행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적어도 아이를 내가 직접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아슬아슬한 엄마 고시생으로 살면서 7년 째 준비한 임용고시에서 최종 탈락했습니다. 더 이상은 이렇게 끝도 없고 재미도 없는 고시에 청춘을 허비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맞닥뜨렸습니다. 그 때 큰 아이 여섯 살, 둘째가 18개월이 되던 해(2018년 3월)였습니다. 임용고시가 아닌 다른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인생은 길고 직업은 많다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대한민국 공교육을 철저히 따라 온 모범생이었습니다.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대학 입시에서 실패했고, 수능 점수에 맞춰 원하지 않은 과에 입학 했습니다. 2학년 때 ‘지구환경보다는 화학이 재밌다’는 생각으로 ‘화학과’로 전과를 했습니다. 화학과에선 다들 대기업 취업을 향해 달리니까, 저도 각종 자격증을 따며 취업 준비를 했습니다.
나름 굉장히 열심히 살았는데, 4학년 시작할 즈음, 좋아하던 오빠로부터 “수경이는 꿈이 뭐야?”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멍 해졌습니다. ‘내가 뭘 위해 이렇게 달려온거지? 나는 정말 대기업 취업을 원하나?’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스물셋이 되어서야 ‘진짜 내 꿈’이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되고 싶었던 영어교사가 되고 싶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방법을 찾아 다시 전과를 했습니다.
4학년 때 과감하게 전공을 영어영문학으로 바꾸고, 졸업과 동시에 영어교육대학원으로 갔습니다. 학창시절부터 대학원을 갈 때까지 ‘안정적인 직업’ 외에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게 내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꿈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영어교육학을 공부할 때는 좋았지만, 목표였던 공립학교 교사가 되는 건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결혼, 출산, 육아를 하는 7년에 걸쳐 임용고시를 붙들고 있다가 '더 이상 못해먹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을 때는 정말 막막했습니다. ‘내가 한 거라곤, 애 키우고 고시 공부한 것 밖에 없는데. 내 사회 경험이라곤 학교에서의 짧은 기간제 교사 경험뿐인데. 애 둘 달린 엄마가 지금 사회에 나간다면, 뭘 할 수 있지? 공부방 창업? 학습지 교사? 전집 영업사원? 보험영업? 네트워크 마케팅?’
제 머릿속엔 내가 지금까지 보아 오고 경험해 온 몇 안 되는 직업들만 떠올랐습니다. 실제 몇 군데의 전집 회사에서 교육에 관심이 많은 저에게 같이 일하자는 제안도 했었습니다. 같이 사무실에 가보기도 하고 그 일에 대한 설명을 듣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남이 만든 무언가를 판매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판매’보다 ‘교육’을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6년 동안 경력이 단절된 아줌마로서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았습니다. 30대 비정규직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고, 가능하다면 뭔가 나만의 일을 시작해보고 싶었습니다. 한창 내 인생의 플랜 B를 찾아 헤매고 있을 때, ‘다시 일하고 싶은 엄마들을 위한 공간, 달빛책방’이란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을 처방해주는 책처방상담을 통해 ‘일’이라는 것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처방받은 책이 <부의 추월차선>과 <How to be happy> <백만장자 메신저>였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회사의 기준에 맞춰 취업한 후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면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게 살면 행복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책들은 돈과 행복에 대한 나의 프레임을 완전히 깨부수었습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을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놀랐고, 좋아하는 일로 게으른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 이후, 남들이 정해준 길, 부모님이 좋아하는 길, 사회가 원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몸을 틀고 나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고시공부를 할 때에는 나처럼 공부하는 엄마들만 보이더니, 스스로 직업을 만드는 창직의 세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업(業)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여성학자이자 세 아들을 서울대 보낸 육아 노하우로 ‘공동육아’ 문화를 만드는데 헌신하시는 박혜란 선생님을 시작으로, 아동심리를 쉽고 재밌게 그려서 설명해주는 찹쌀떡가루, 정신과 의사로서의 경험과 전업아빠로서의 일상을 나누며 위로를 전하는 육아빠 등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전문성에 육아경험을 더해 커리어를 키우는 분들은 물론이고, 저처럼 특별한 재능이나 전문성이 없는 평범한 부모들도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직업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직업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잘 맞는 사람들과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특히, 엄마로서의 경험이 그 무엇보다 커리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육아와 일,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다는 나의 바람이 정말로 이루어질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습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해 기존 경력이 멈추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저의 커리어에 새로운 길이 뚫렸습니다. 남이 정해주고 닦아 놓은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두렵지만 아주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창직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