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골드 Feb 20. 2021

내가 아프다면 아픈 것이다

나의 상처를 인정한다는 것

나는 아주 평범하고 무난한 가정에서 자라왔다. 특별히 큰 트라우마나 폭력, 폭언, 학대 등에 노출된 적도 없고, 내 삶이 무너질 만한 실패를 만나 힘들었던 경험도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삼십년을 넘게 '나는 상처가 없어. 난 괜찮아'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었지만

사실은 엄청난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나 자신을 엄청나게 억압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수면 위는 아주 평온하고 잔잔해 보인다.

하지만 수면 아래는 화산이 터지고 상처들이 곪아 터져있다. 그 곪아 터진 상처는 절대 수면 위로 보여져서는 안되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꽁꽁 숨기고, 그걸 숨기기 위해 더 많이 애를 쓰며 살아왔다.


무서운 것은,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쉿, 이건 비밀이야. 어디가서도 드러내선 안돼'라고 말한 사람은 없지만, 우리 가정 안에 암묵적으로 그런 룰이 있었다.


'나는 행복해. 나는 괜찮아. 나는 멀쩡해'라는 말로 어린 내가 받았던 상처와 아픔을 뭉뚱그려놓고, 지금의 삶을 애써서 열심히 살면 진짜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너무 아프게도, 마주해야만 내가 살 수 있다.


'고통은 성장의 기회'라는 말이

오늘은 참 듣기가 싫다.


고통은 고통이다.

아픔은 아픔이다.

상처는 상처다.

내가 아프다면 아픈 것이고,

내가 상처라면 상처인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알아주지 못하고 성장이니 뭐니 하는 말을 들먹이는 것은 결국 또 내 곪아터지고 있는 상처를 더 두꺼운 포장지로 싸매는 것밖에 안된다. 뼛 속까지 착한 아이이고 싶은 나는 그것을 인정하기가 참 힘들다. 하지만...


나는 오늘부터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상처가 많다.

세상이, 부모님이, 남편이 '그게 무슨 상처야'라고 말할지라도, 내가 상처라면 상처다. 그리고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 더 강한 사람이다.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들여다 볼 용기와 힘이 있는 사람이니까  


어린 내가 마땅히 받았어야 할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해 모른 척 하고는 나의 숨은 자원을 발견할 수도, 잠재력을 펼치며 살아갈 수도,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갈 수도 없는 것 같다.


나는 갈구한다.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을.

내가 뭘 하지 않아도, 잘 하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나는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

그것이 너무나 마땅하다는 것,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옳다는 것을 내가 먼저 알아주기로 했다.


내가 나를 인정해주고,

내가 듣고 싶은 그 말을 충분히 해주고,

가능하다면 주변에 안전한 사람들에게서 그 말을 충분히 들으면서 채우고 싶다. 애쓰지 않아도 차오르는 곳간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다.


네가 그렇게 애쓰며 사는데 몰라줘서 미안해. 너무너무 고생많았지.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혼자 짊어지고 가게 둬서 미안해. 이젠 내가 함께 할게!

나는 오늘 더 강해졌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에게 더 절실한 워라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