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대한 인식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크게 달라져 왔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낳아놓으면 알아서 잘 큰다.’라는 식의 육아관이 대세였다면, 요즘은 ‘부모가 잘 키워야 잘 큰다.’라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지요. 자녀를 기르는 데 있어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점점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부모 역할을 잘한다는 것을 ‘다양한 자극과 경험을 지속적으로 풍부하게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으로 인해 아이들은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제공받아요. 심심할 틈이 없지요.
구슬이 아무리 많아도, 꿸 수 있는 시간이 없으면 무용지물
자극과 경험은 모두 외부에서 주어지는 정보입니다. 아이의 성장과 발달, 특히 인지 발달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지요. 아이의 뇌는 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Input)뿐만 아니라 이 정보들을 서로 ‘연결’(Connect)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자신의 지식을 다시 외부로 ‘끄집어내는’(Output) 과정을 통해 가장 잘 발달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자극과 경험의 제공은 아이의 뇌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작업만을 반복하게 만듭니다.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벅차기에 그 정보들을 연결하고 끄집어낼 여력이 없어지는 것이지요. 경험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서로 연결하고 그것을 끄집어내는 과정까지 이어지도록 하려면 반드시 아이의 뇌가 ‘심심할 틈’을 주어야 합니다. 구슬이 아무리 많아도 꿰지 않으면 보배가 될 수 없습니다. 구슬을 주는 건 우리의 몫이지만 꿰는 건 아이의 몫이기에, 스스로 꿸 수 있도록 충분한 여유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심심한 시간으로부터 나온다
뇌가 심심할 틈을 주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창의성 때문입니다. 유아기는 창의적 사고의 발달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시기로, 많은 부모님이 아이의 창의성을 길러주는 교육에 관해 관심을 가집니다. 뇌과학을 연구하는 정재승 교수는 창의적인 사고는 몰입의 순간뿐만 아니라 뇌가 쉬고 있을 때, 즉 완전히 ‘비목적적인 사고’를 할 때 나타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비목적적 사고를 할 때 우리 뇌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개념들을 서로 연결 지어보고 관련성을 찾아보며 그 속에서 새롭고 독특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놀이 속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새로운 놀잇감을 처음 접했을 때는 대체로 예상되는 방식으로 놀잇감을 활용합니다. 그러다 점차 놀잇감이 익숙해지면서 재미없다거나 지루하다는 반응을 보이는데, 놀랍게도 이 시기를 넘어가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방식의 놀이가 나타납니다. 종류가 다른 놀잇감과 혼합하여 구조물을 만든다거나, 기존에 사용하지 않았던 재료를 추가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요. 아이가 지루해한다는 이유로 새로운 놀잇감을 즉시 제공해준다면 이처럼 창의적인 방식으로 놀이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겁니다.
심심함을 견디는 힘
아이는 본능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심심한 것을 무엇보다도 싫어하지요. 심심한 시간이 주어지면 아이는 어떻게 해서든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이렇게 심심함을 견뎌내는 과정을 통해 아이는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주도적으로 행동하며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 시간을 함께 견뎌보는 건 어떨까요? 새로운 장난감을 사주고 신기한 경험을 해보게 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아이가 심심할 틈을 누릴 수 있도록 곁에서 기다려 주는 것 역시 아이의 성장을 이끄는 부모의 역할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