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기는 신체를 비롯해 인지, 정서, 사회성 등 아이의 모든 부분이 급격하게 발달합니다. 이 시기 발달의 가장 큰 특징은 ‘연속성과 누적성’이에요. 발달은 영역을 막론하고 쉼 없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며, 이전 단계의 발달에 더하여 다음 단계의 발달이 누적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유로 여러 아동발달 전문가들은 아이에게 각 시기에 맞는 적절한 자극과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와 더불어 자주 다뤄지는 개념이 바로 ‘결정적 시기’입니다. 결정적 시기란 인간에게는 발달에서의 최적의 시기가 있으며 이 시기를 놓치면 이후에는 발달을 이루어내기가 불가능하다는 개념으로, 동물행동학자 로렌츠(Lorenz)에 의해 맨 처음 제시되었어요.
로렌츠는 청둥오리의 알을 둘로 나누고 한쪽은 어미 청둥오리가, 다른 한쪽은 자신이 부화시켰는데, 로렌츠에 의해 부화된 새끼들은 그를 어미인 양 쫓아다니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생애 초기에 노출된 대상에 특별한 애착을 보이며, 이후에는 이러한 행동이 형성되지 않음을 발견한 것이지요. 학자들은 이를 인간에게 적용하여 설명하고자 하였고, 지금은 교육과 학습의 영역에서 특히 주요하게 언급되는 개념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불안을 자극하는 ‘결정적 시기’ 마케팅
로렌츠의 이론은 생애 초기 발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나, 결정적 시기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이후 발달의 측면을 간과했다는 한계를 지니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유아기에 결정적 시기를 놓치더라도 발달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며, 이후 적절한 자극을 통해 얼마든지 잘 발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요.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최나야 교수님은 한 유튜브 영상에서 ‘아동학 분야에서는 결정적 시기라는 표현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어느 시점이든 아이의 발달을 절대적으로 결정짓는 시기는 없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교육 분야, 특히 사교육 분야에서는 여전히 결정적 시기를 중요한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이 자녀를 둔 부모의 불안을 자극하는 가장 좋은 판매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유아기는 배움이 일어나는 첫 시작 단계이다 보니 더 공격적인 마케팅이 이루어집니다. “지금이 바로 결정적 시기이고, 지금을 놓치면 되돌릴 수 없다. 평생 뒤처질 수도 있으니 당장 시작해야 한다.”라는 식으로요.
학습도서 시장도 이와 비슷합니다. 저는 한때 교육 출판 회사에서 유ㆍ초등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집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을 했었는데요, 당시 회사에서 내세운 판매 전략 중 한 축이 바로 ‘불안을 자극하여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서점 학습서 코너에서 [우리 아이 평생 성적, O세에 결정된다] 라는 식의 책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제목에 들어가는 나이가 5세 유아부터 초등학생, 중학생 시기까지 골고루 다 있다는 사실인데요, 바꾸어 말하면 아이가 성장하고 발달하는 모든 시기가 다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결정적 시기’가 아닌, 내 아이만의 ‘적절한 시기’를 찾으세요
아동 발달에 있어 결정적 시기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 3세 이전 기초적인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발달에 문제 혹은 장애가 있을 때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결정적 시기에 개입하는 것이 향후 성장과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학습의 영역에 있어 결정적 시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중요한 것은 발달의 개인차를 바탕으로 하여 배움이 잘 이루어질 수 있는 적절한 시기를 찾는 것이지요. 적절한 시기는 아이의 말과 행동, 놀이와 활동 등을 가까이 들여다봄으로써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 아이만의 고유한 발달 속도와 성향을 고려하지 않고 결정적 시기에 대한 맹신만으로 학습 자극을 제공한다면, 배움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움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결정적 시기가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