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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밝음 Oct 22. 2022

욕심이 앞선 ‘엄마표’ 교육은 모든 것을 망친다.


유아기 학습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익숙하고 편하게 접근하는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엄마표’ 교육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집에서 언제든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고, 비용적인 면에서도 부담이 적기 때문에 비교적 쉽고 가볍게 시작할 수 있지요. 더군다나 요즘은 조금만 찾아보면 엄마표 학습으로 성공한 사례를 담은 책, 엄마표 교육법을 소개하는 SNS 채널 등 관련 정보가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부모님들이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기도 해요.     




아이의 수준에 맞게 가르친다는 착각   

  


제가 대학생일 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저희 집 근처에 초등학생인 사촌 동생이 살았는데, 가까이 있다 보니 종종 숙제를 봐주기도 하고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어요. 한번은 수학 개념을 설명해주는데, 쉽게 풀어서 여러 번 이야기해줘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어려워하더라고요. 저는 이렇게까지 해줘도 모르면 어떻게 하냐며 타박 아닌 타박을 하고,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푹 내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같은 내용을 설명하는 EBS 강의를 보게 되었는데, 글쎄 강사분이 ‘여기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잘 모르는 게 당연하다, 천천히 설명해주겠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 아이의 수준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건 저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요.     


엄마표 교육을 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 증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의 수준에 맞게 가르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거요. 이러한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유아기는 발달의 개인차가 도드라지는 시기임에도 개인차보다는 그 나이에 적당하다고 여겨지는 보편적인 내용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면, 문자 읽기와 쓰기에 관심을 가지는 시점은 아이마다 차이가 있는데도 ‘여섯 살이면 글자를 읽을 수 있고, 일곱 살이면 웬만한 글자는 쓸 수 있어야 한다.’라는 식으로 기준을 정하고 그에 따라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다음으로, 유아기에는 개인차뿐만 아니라 개인 내 발달 영역 간 속도 차이가 존재하는데도, 한 영역이 뛰어나면 다른 영역도 그와 유사한 수준일 것이라 가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적 이해는 빠르지만 수 개념 발달은 비교적 느린 아이의 경우 두 영역의 학습 수준은 분명한 차이가 있음에도 수 개념 또한 언어 능력에 근접한 수준이라 생각하고 가르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부모의 기대와 아이의 실제 인지 수준 사이에는 꽤나 큰 격차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 아이의 수준에 맞게 가르치고 있다는 건 어쩌면 어른들만의 착각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이를 향한 욕심, 내려놓을 수 있으세요?     



현실적으로 엄마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가르치는 대상이 바로 ‘내 아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내 아이이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고, 내 아이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앞서가기를 바라지요. 이러한 욕심은 어쩌면 엄마로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엄마표 교육에서는 이 욕심이 자칫 모든 것을 망치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욕심이 앞선 엄마표 교육은 자녀 또래 중에서 특히 뛰어난 소수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렇다 보니 아이가 가진 능력보다 많이 해내기를 요구하고, 아이의 현재 수준보다 높은 곳에 도달하기를 기대하지요. 그러다 내 아이가 그만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면 초조하고 다급해지기 시작합니다. 내 아이를 보는 건 뒷전으로 미뤄둔 채 자꾸만 높은 기준에 맞춰 비교하고 다그치며 재촉하는 일이 많아져요. 그럴수록 아이는 점점 더 배움에 대한 흥미를 잃어갑니다. 급기야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고통스러워지기까지 해요. 아이를 위해 시작한 엄마표 교육이, 오히려 엄마와 아이의 유대관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지요.     


 

엄마표 교육, 이런 경우라면 반드시 멈추세요     

   © bukejiuyao, 출처 Pixabay


[논어]에 보면 군자는 자기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에 맹자는 “부모의 가르침을 자식이 행하지 않는다면, 즉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부모는 화를 내게 되고, 이로 인해 자식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의가 상해서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라고 답합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했더라도 아이와의 관계를 망치고 있는 기미가 보인다면 엄마표 교육은 바로 멈추어야 합니다. 유아기 아이들에게 부모와의 적절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보다 더 우선인 것은 없습니다.     


책상에 앉자고만 하면 갑자기 배가 아프고, 몸이 배배 꼬이고, 어떻게든 그 순간을 피하기만 하려고 애쓰는 아이라면, 엄마표 교육 방식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시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아이가 배움의 즐거움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학습의 양과 난이도, 아이의 특성과 선호하는 수업 방식 및 교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살피고 조정하였는데도 여전히 내켜 하지 않는 아이라면, 과감히 마음을 접고 엄마표 교육은 내려놓으세요. 아이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적절한 때에 좋은 학습적 자극을 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아이는 얼마든지 즐겁게 배우기 시작할 수 있어요. 단지 유아기에 시작하지 않는다고 하여 절대 늦거나 뒤처지지 않습니다. 섣부른 기대와 조바심으로 인해 배움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 아이로 자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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