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로 기르는 자기주도학습 역량 - 스스로 하는 힘
영유아기 발달에 있어 놀이가 중요하다는 말은 아이를 키우시는 분들이라면 이미 지겨울 만큼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자유롭게 자신의 관심과 흥미를 추구함으로써 편안하고 안정적인 정서 발달이 이루어지고, 활발하게 몸을 움직임으로써 신체 발달 또한 촉진되며, 타인과 함께 하는 놀이를 통해 의사소통 능력이나 사회성 발달에도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하지요.
그런데 이처럼 신체, 정서, 사회성 발달뿐만 아니라 인지 발달, 학습능력 발달 측면에서도 놀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유아기 때는 학습능력 중에서도 특히 스스로 즐기며 배우고 익히는 힘, 즉 자기주도학습 능력의 뿌리를 키우는 것이 중요한데요. 아이는 자신이 주도하는 놀이를 통해 자기주도학습 능력 중에서도 다음의 세 가지 핵심 역량을 더욱 균형있고 탄탄하게 길러냅니다.
1. 스스로 하는 힘
자기주도학습의 첫 번째 핵심은 아이가 ‘스스로’ 학습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지시 없이 무언가를 알아서 뚝딱 해내는 것은 아이로선 참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해요. 사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이지요. 저 역시 무언가를 처음 시작하려는 순간에는 막막하기도 하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이 꽤 많거든요.
그러므로 아이에게는, 본격적으로 자기주도학습이 시작되는 초등 시기 이전에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선택에 따라 무언가를 경험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이의 일상을 잘 살펴보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제시간에 일어나 유치원 또는 어린이집에 가야 하고, 기관에서는 정해진 일과에 따라야 하며, 때로는 하고 싶지 않은 활동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집에서 역시 저녁을 먹고 목욕을 한 후 잠자리에 드는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정한 루틴에 따라야 하는 시간이 많지요. 한마디로 아이의 일상 대부분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르는 것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면에서 온전히 아이의 선택에 따라 이루어지는 놀이는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스스로 하기를 반복하며 익히기에 아주 좋은 수단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자신이 주도하는 놀이를 통해 ‘내적 동기’를 인식하고 강화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내적 동기란, 보상이나 지시 등 외부의 요인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무언가를 성취하고 이루고자 하는 상태를 뜻해요. 내적 동기에 따라 이루어지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강한 자신감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원하는 대로 블록을 연결했더니 멋진 자동차 도로가 만들어지고, 마음대로 그리고 칠했더니 아름다운 성이 생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 누구보다 멋지고 대단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험을 자주, 반복적으로 해온 아이는 학습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방식으로 먼저 다가가 배우기를 시도합니다. 자연스럽게 자기주도학습이 이루어질 준비가 되는 것이지요.
2. 목표와 계획 세우기
유아기 이전과 이후 놀이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유아기 이후 아이들의 놀이 속에는 ‘목표와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상에서든 놀이에서든 목표를 지니고 그에 따른 계획을 세운다는 건 인지 발달에 있어 엄청난 변화를 의미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이나 상황을 고려하고 예측하며, 그것을 자신의 행동에 반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뜻이거든요. 한 마디로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자기주도학습의 두 번째 핵심입니다. 목표를 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위해 적절한 수단과 방법을 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있어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을 파악한 후, 의도에 따라 이를 쪼개어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고요.
예를 들어,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가 TV에서 카레이싱 장면을 본 후 자신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해봅시다. 우선 ‘자동차 경주 놀이’를 목표로 정한 후 어떻게 이 놀이를 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함께 놀이할 친구들을 초대하고, 경주장과 자동차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 결정할 것입니다. 블록으로 경주장과 자동차를 만들기로 했다면, 다음은 계획을 세울 차례입니다. 여러 종류의 블록 중 큰 조각으로는 자동차 경주장을 만들고 작은 조각으로는 자동차를 만들겠다거나, 친구들과 역할을 나누고 그에 맞는 구조물을 각자 만들어 합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이처럼 명확하고 구체적인 자원을 목표와 계획에 맞게 활용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점차 추상적인 개념까지도 그 범위를 넓혀갈 수 있습니다. 특히 가장 추상적인 개념 중 하나인 ‘시간’ 까지도 스스로 파악하고 적절히 배분하여 목표를 위해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공부에 있어서 목표를 세우고 그에 따라 시간을 체계성 있게 활용하는 것은 최소 학령기 이후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놀이 속 경험들이 밑바탕에 탄탄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면, 아이가 결정한 목표와 계획에 따라 자기주도학습을 실천해 나가기에 훨씬 더 유리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3. 메타인지 활용하기
교육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메타인지’라는 용어를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특히 학습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참 많이 다뤄지고 있는 개념이지요. 미국의 발달심리학자 존 플라벨(J. H. Flavell)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인 메타인지(상위인지)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인지수준을 그보다 상위 단계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메타인지가 높은 아이는 자신의 능력과 한계에 대해 정확히 판단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학습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효율이 높아지니 학습의 결과 역시 좋아지게 되고요.
그런데 놀랍게도 유아기 아이의 놀이 속에서, 특히 역할놀이 장면에서 이 메타인지의 사용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곤 합니다. 엄마, 아빠, 아기로 각자 역할을 맡아 놀이하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우리 이제부터는 밥 먹는 시간이라고 하자. 아기는 우유병을 들어야 해.”라며 극의 장면을 설정하기도 하고, “그릇이랑 숟가락이 필요해. 저쪽에서 가지고 와야겠어.”라며 그 장면에 필요한 재료나 도구를 챙기기도 하지요. 연극에 빗대어 보자면 자신의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뿐만 아니라 극 전체의 진행과 흐름을 총괄하는 감독의 관점까지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놀이 속에 있다가도 필요할 때에는 그 장면에서 빠져나와 상위 관점에서 상황 전체를 조망하고 재구성하며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 메타인지의 핵심과 맥이 닿아 있음이 느껴지시나요? 바로 여기에서부터 메타인지 능력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지금까지 놀이를 통해 기를 수 있는 자기주도학습 능력의 세 가지 핵심 역량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학습능력을 놀이로 길러냅니다.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놀지요. 사실 그것이 아이의 삶 자체입니다. 수많은 유아교육 전문가들이 그토록 ‘놀이’와 ‘놀이를 통한 배움’을 강조해왔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 아닐까요? 그러니 내 아이가 지금 무엇을, 얼마나 배우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우선 아이의 놀이를 찬찬히, 그리고 가까이 들여다보시기를 바랍니다. 답은 늘 놀이 속에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