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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밝음 Apr 18. 2022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두 가지는 반드시 배운다.

생존에 필요한 것, 그리고 재미있는 것


앞서 아이는 어른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늘 공부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이에 따라 선호하는 지식의 유형이나 학습의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아이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배우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생존에 필요한 것’이고요, 둘째는 ‘재미있는 것’입니다.




© PublicDomainPictures, 출처 Pixabay


아이는 본래 연약하고 미숙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발달 단계에 맞게 적절한 기술을 익혀야 하지요. 아이 자신도 이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기보다는 본능적으로 느낀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네요. 자신이 세상에 적응하며 잘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주 빠르게 인식하고, 그것을 습득합니다.


둘째로 태어난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애교를 부리며 귀여운 행동을 한다거나, 부모의 다툼을 자주 목격한 아이가 작은 신호에도 눈치를 살피며 지나치게 민첩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 생존전략에도 아이마다 차이는 있어요. 애정과 관심의 결핍을 느끼는 경우, 누구는 ‘문제 행동으로 관심 끌기’ 전략을 사용하는 반면 누구는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행동으로 인정받기’ 전략을 사용합니다.


달에 관련된 학습 기제 역시 이미 내재되어 있습니다. 일종의 지침서를 지니고 있다고 할까요? 때가 되면 기고, 앉고, 잡고 서다가 마침내 스스로 걷게 되는 일련의 과정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획득합니다. 자신만의 속도에 따라 적절한 때에 실제로 행해보는 경험을 통해 온전히 배우고 익히게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자신의 생존과 발달에 필요한 기술과 전략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혹은 가르쳐주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배웁니다.




© benwhitephotography, 출처 Unsplash


아직 말도 안 트인 어린 아기가 스마트폰에 손가락을 대고 터치하며 화면을 넘기는 모습을 보신 적 있나요? 그 작은 손가락으로 어른의 행동을 어찌나 똑같이 따라 하는지, 참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가르쳐주지도 않은 행동을 어떻게 스스로 보고 배울 수 있었을까요? 그건 스마트폰을 통해 보는 영상이나 사진이 아기에겐 너무나 재미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리모컨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원하는 TV 프로그램을 골라 본다거나,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빠르게 규칙을 익히고 이해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학습과 관련하여 아이가 지닌 아주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바로 ‘재미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느끼기에 재미있고 즐겁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 해서든 배우고, 배운 것을 지겨울 만큼 반복합니다. 반복하는 과정에서 더 탄탄히 익히게 되고요. 이때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자신이 느끼기에’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들어보지도 못한 공룡 이름을 줄줄 읊기도 하고, 역사책에 푹 빠져 밥 먹는 시간에도 책을 놓지 못하기도 하는 아이들은 그 속에서 자신만의 재미 포인트를 찾아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유아기 첫 공부를 시작함에 있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아이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지식이 앞서 언급한 두 가지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면, 누군가가 나서서 가르치지 않더라도 아이는 스스로 어떻게든 배우고 익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흔히 말하는 자기 주도식 학습 역시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요.




생존에 필요한 지식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맥락’입니다. 아이에게 있어 생존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상황에 적절하게 반응하고 대처하는 기술을 익힘으로써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생활 및 주변 환경과 직접적으로 맥락이 닿아있다면, 아이 스스로 배우고 익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지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간판이나 교통표지판, 마트 전단지 등 주변에서 쉽고 친숙하게 접하는 모든 인쇄물을 ‘환경 인쇄물’이라고 하는데요, 앞서 이야기한 좋은 지식의 가장 적절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환경 인쇄물은 아이에게 친숙한 실생활의 맥락을 담고 있으며, 실제적인 경험 또한 제공하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유아기에는 문식성 발달에 기초가 되는 이러한 환경 인쇄물을 적극적으로 제공해주면 좋습니다. 한글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아이가 주변의 글자를 궁금해하고 읽어보려 시도할 때, 환경 인쇄물은 더없이 좋은 한글 교재가 되어줄 거예요.


이와 같이 맥락을 통해 전하기 어려운 종류의 지식이라면, 두 번째 방법인 ‘재미’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이때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아이의 관심사인데요, 관심이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재미를 느끼는 지점도 함께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숫자에 관심이 있고 수적 감각이 발달한 아이라면 학습지, 수 카드 등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을 거예요. 책에 관심이 있는 아이라면 글밥이 많은 책도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겠고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관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느낄 만한 방식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숫자에 관심이 없는 아이라면 학습지보다는 구체물, 즉 과자나 장난감 등을 이용해 수를 세어보고 덧셈과 뺄셈을 경험해보며 수의 크기를 비교해보는 등의 활동이 더 적절하겠지요. 책에 관심이 없는 아이라면 책으로 도미노를 만들어 게임을 해본다거나, 숨은 그림 찾기가 있는 책을 제공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책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시도해볼 수 있을 거고요.




아이는 생존과 발달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 때에 적절히 습득해야 하고, 그 와중에 재미와 즐거움이 있는 배움까지 놓치지 않고 챙겨야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아이의 삶은 이미 매우 바쁘고 벅차요. 그러니 지금 꼭 필요한 것도 아니면서 심지어 재미까지 없는 공부는 아이의 머릿속에 끼어들 틈이 없는 게 당연합니다. 설사 간신히 비집고 들어간다고 한들, 그 속에서 오래 버텨낼 재간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시작한 공부는 머지않아 힘없이 고꾸라지고 말 테지요.


유아기 공부는 아이와 가장 가까운 생활 속에서, 무엇보다 재미있게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처음 공부’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이후 아이에게 주어진 기나긴 배움의 길에서 지치지 않고 나아갈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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