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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달 Sep 14. 2020

목소리톤

 

2020/9/14/월


생각해보니 그것이 전부였다. 목소리톤.


나에게 끊임없이 부정적인 에너지를 투척하고, 나를 시달리게 만들고, 끝내는 뒤통수를 쳤던 사람들의 공통점을 돌아보니 그들이 평소 불안이 많고, 질투가 심하고, 욕심이 많고, 자기연민이 지나쳤고, 타인에 대한 공감이 떨어진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공통점 뿐 아니라 하나가 더 있었다. 그렇다. 그들은 목소리 톤이 불안했다. 목소리가 유난히 크고, 톤이 높고, 날카롭고, 추임새가 많았다. 그래서 그렇게 피곤했던 거였어.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평소보다 더 피로감이 몰려와 '오늘 내가 왜 이러지?' 했던 기억이 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이미 반쯤 녹초가 되어 있었고, 집에 와서는 뻗어버리곤 했다.


사투리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억양이 드센 사투리가 있다. 아니지, 대부분의 사투리는 억양이 드세지. 충청도 사투리 빼고. 경상도 사투리가 거칠다고들 말하지만 부산사투리가 심한 우리 시어머님의 목소리톤은 그 어떤 방송국 아나운서보다 안정적이고 따뜻하다. 경상도사투리가 이렇게 우아하고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어머님. '가나?' '자나?' 들릴듯 말듯 나즉한 어머님의 목소리톤에는 '네 시간을 방해해서 미안해.'겸연쩍은 미안함과 '나랑 잠깐 이야기 할 수 있나, 니?' 하는 부끄러운 손내밈이 담겨있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머님도 참.. 며느리한테 '너 잠깐 이리 와봐라. 할 얘기가 있다' 라고 말씀하셔도 될텐데, 어머님은 항상 그렇게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다. 내가 사투리중 부산사투리를 젤로 좋아하는 까닭도 우리 어머님 때문이다. 닮고 싶은 톤.


어머님은 '부끄럽게 그런 말을 어찌 하노' 란 말씀을 자주 하셨다. 정작 부끄러워 해야 할 인간들은 낯짝 두껍게  할 말 못할 말을 우왁스럽게 토해낸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부끄러워져 자리를 피하고 싶게 만든다. 그런데 항상 나즉하고 따뜻한 목소리톤을 가진 여인들은 부끄러워 한다. 별일 아닌 부탁, 별일 아닌 말에도 우리 어머님은 어린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며 끝내 입을 열지 못하신다. 이렇게 말을 조심하고, 내뱉는 말에 신중을 기하는 어머님의 지극정성 그 사랑 받고 자란 남자가 지금 내 남편이다. 그덕분에 지나치게 예민하고 섬세해서 맞추고 사는 게 쉽지 않지만 아내를 배려하고 생각하는 그 마음의 깊이가 헤아릴 수 없이 깊어 가끔 아.. 하는 탄식을 하게 된다.


참, 잘 자랐다, 싶은 아이들이 있다. 참 괜찮다. 싶은 엄마들이 있다. 그들은 세치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린다. 가족을 살리고, 모임의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적재적소에 과하지 않게 나를 위로하고 내손을 잡아준다. 침묵해서는 안될 자리에서는 당당하게 할 말을 하고, 말을 거두고 아껴야 할 자리에서는 침묵한다. 그래서 그들의 말에는 힘이 있고 여운이 있다. 어쩜 저렇게 늘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우쭈쭈 높혀주는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친구가 있다. 그녀는 또 타인에 대한 과장된 칭찬이나 배려로 상대를 착각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이런 친구들의 공통점 역시 '목소리톤'이다. 목소리톤이 낮고 따뜻해서 몇시간이고 자장가처럼 들을 수 있다.


이들은 목소리가 작다. 쉿, 조용히 하고 귀를 쫑긋세워야 들을 수 있다. 이들은 말이 많지 않다. 내가 입을 열고 떠들기보다는 다른사람에게 말할 기회를 많이 준다. 이들은 경청한다. 말없이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 이들은 판단하지 않는다. '그게 잘못 된거야. 그 자리에서 니가 그렇게 행동하니까 그 사람이 너를 얕보지'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무슨 사정이 있었나보네.' 라고 생각하고 뒷 얘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이 친구에게는 이상하게 내 속얘기를 부끄러운줄 모르고 줄줄 털어놓게 된다. 왜냐면 이 하나의 에피소드로 나를 판단하고 단죄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 자식간에도 그렇다. 아이들이 클수록 엄마와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입만 다무는게 아니라 방문까지 걸어잠그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춘기라서 그래? 갱년기라서 그래? 생리중이라서 그래? 호르몬 탓하지 말자. 사실 너도 알고 나도 안다. 긴세월 쌓인 인과응보가 호르몬보다 더 쎄다는 걸. 아이를 괴롭힌 세월이 길고 단단해서 이지경이 된 것을.


아이와의 대화가 끊기는 것은 애가 사춘기라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누적된 결과이고,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마도 엄마의 목소리톤.일 것이다. 아이는 귀신같이 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엄마가 화를내고 짜증을 낼지 환하게 웃을지. 그래서 엄마가 환하게 웃을 말만 하고 심지어 조작도 한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와 놀이터에서 있었던 속상하고 억울한 일을 얘기했을 때, 엄마가 차갑고 날카롭고 찢어지는 목소리 톤으로 짜증을 버물려 소리를 친다고 가정해보자. "너는 그래서 문제야. 니가 맨날 그러니까 애들이 너를 만만하게 보고 그렇게 괴롭히지!" 판단과 비난까지. 일사천리로 내뿜는다. 자초지종은 듣지도 않고.. 이런 경험은 단 한번만으로도 충분히 파괴적이어서, 아이는 입을 다문다. 8살 아이도 안다. 6살 아이도 입을 다문다.


조심스러운 엄마는 다르다. 우선 아이의 표정부터 살핀다. 얼마나 속상했을까. 얼마나 슬펐을까. 아팠을까. 그 곁에 내가 있었더라면! 아이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인다. 딱하지, 거기서 혼자 우두커니 당했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당황했을까. 무안했을까. "그런 일이 있었구나. 많이 놀랐겠다. 속상했겠어." 말없이 안아주는 것이 우선이고 그것이 전부다. 목소리톤이 작고 차분한 엄마는 그렇게 우선 아이의 놀란 마음, 속상한 마음부터 달랜다. 그리고 나서 전략회의를 하면 재미있다. 비극이 희극으로 바뀌고, 우리는 어느새 역할극 놀이를 하고 있다. 친구를 교모하게 괴롭히는 친구의 대사는 인생연륜이 좀 있는 엄마가 맡아서 해본다. 그럼 아이는 아까 낮에 엉엉 울면 집으로 온 반응과는 다르게 '당당하게' 할 말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내편인 엄마가 내 옆에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 그런 역할극 한번의 힘은 대단해서, 아이는 다음에 비슷한 갈등이나 어려움을 만났을 때 의연할 수 있다. 응, 왔어? 한판 붙어볼까?


내 육아의 9할도 실은 '목소리톤'이다. 나는 내가 아이를 부르는 목소리톤이 어떤지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동영상을 보다가 깨달았다. 내가 우리집 셋째인 시츄 코미를 부르는 목소리와, 우리 아이들 유치원때 영상 속에서 아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같다는 걸. 꽉.. 잡으면 깨질새라, 손도 조심조심 잡고, 손목한 번 세게 끌어본 적 없던 나. 그 때 그 시절, 아이 이름을 부르던 꿀 떨어지는 목소리. 아.... 우리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고 당당하면서도 겸손하고 유연하게 잘 자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나의 이 목소리톤 때문이었구나.  


앞으로 낯선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귀를 쫑긋 세우게 될 것 같다. 그의 목소리톤 속에 담긴 인생과 인품을 엿보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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