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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Aug 01. 2020

[쓰는 요가] 우리는 모두 흔들리는 존재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 말도 안 되는 동작들이 되는 선생님들도 신기했고, 말도 안 되게 동작이 안 되는 나도 신기했다. 어쩜 이렇게 되는 게 1도 없을까. 그래서 하나둘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중에 하나가 그저 한 발로 설 수 있는 그 날이 올 때까지는 다녀보자는 것이었다. 나의 꿈의 자세는 ‘우티타 하스타 파당구쉬타나’였다.


우티타 하스타 파당구쉬타나 / 사진 출처 (AshtangaYoga.info)


"다들 동작할 때 제일 어려운 부분이 뭔가요?" 언젠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물었다. 누군가는 숨쉬기라고 했고 누군가는 전굴이라고 했고 나는 균형 잡기라고 했다. 땅에서 한쪽 발을 떼고 균형 잡는 동작만 하면 금세 휘청, 혼자서 호랑나비를 추고 있는 나였기 때문에. 사실 ‘한 발 서기’는 만만해 보이는 동작 아닌가. 내가 무슨 ‘몸을 뒤로 반 접히게 해주세요’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한 발로 섰을 때 휘청이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 언제쯤 호랑나비 자체 벌칙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니 한 발로 서는 동작들에 대한 조바심이 줄어들었다. 그래, 인생에서도 가장 어려운 게 균형 잡기인데, 매트 위라고 한숨에 성공하면 더 이상한 거지. 그리고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함께 해봤으면 좋겠다. “자 두 발을 모아서 땅에 붙이고 차렷 자세로 서서 눈을 감아보세요”


‘에휴 그냥 서 있는 건데요 선생님 제가 그 정도도 못 하는 인간은 아닐 거예요’ 생각하며 눈을 감았는데, 어랏? 몸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흔들림이겠지만, 발바닥부터 무게 중심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따라 한 여러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두 발을 딛고 서도 눈을 감으면 몸은 흔들려요. 자 이제 눈을 뜨고 여기 한 점을 바라보세요” 선생님을 따라 정면 벽에 한 지점을 응시하자, 몸으로 전해졌던 흔들림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왔었다. 뭔가 발가벗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수련하다 보면 매트 밖에서의 삶이 매트 안으로 훅 들어올 때가 있다. 그때가 그랬다. 매일 매일 흔들리며 살아온 매트 밖의 내가 매트 위로 소환됐다. 작가로서의 커리어도 놓치고 싶지 않지만 작가가 아닌 내 행복도 찾고 싶고, 나 자신을 챙기는 삶이 가족에게 이기적인 일이 되지는 않았으면 늘 균형을 찾지 못해 휘청이던 내가 눈을 감으니 선명하게 보였다.


모든 아사나에는 수련 과정 안에 깨달음이 하나씩 숨겨져 있는 것 같다. ‘우티타 하스타 파당구쉬타나’를 수련하며 내가 느낀 건, 흔들림을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흔들리지 않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 쪽으로 몸의 중심이 기울었는지, 힘을 너무 주고 있지는 않은지, 내 안의 흔들림에 최대한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리고 남은 질문은 하나다. 어디를 바라볼 것인가. 정말 신기한 게 정면의 한점을 응시할 때는 잘 되던 동작이 옆으로 살짝 곁눈질만 해도 몸까지 함께 무너져 넘어진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쌤이 와서 꼭 한 번씩 더 말해주곤 했다. “시선을 놓치지 마세요. 몸이 아무리 흔들려도 끝까지 한 점만 바라보세요”


의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에는 이런 캐릭터가 있다. 수술하기 전이면 늘 가슴을 열고 고개를 높이 올려 드는 자세를 취하는 의사. 그녀의 말에 의하면, 자신감을 높여주는 동작이라고 한다. 내겐 ‘우티타 하스타 파당구쉬타나’가 그런 의식과 같다. 아싸 호랑나비 김흥국 벌칙은 끝났다. 한 발로 조금씩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많았던 흔들림의 순간을 지나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나를 볼 때면, 많은 고민 사이에서 흔들리는 나도 언젠가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하며 마음속 주문을 외우게 된다.


요즘 다른 것보다 ‘작가로서의 나’에 대한 고민이 많다. 늘 시도하다 말았던 드라마 영화에 제대로 도전해보고 싶다. 그동안은 꿈을 찾기엔 돈을 벌어야 했고, 돈을 벌면 시간이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또 꿈이 그리워지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또 같은 고민 앞에 서 있다. 새로운 도전을 해볼 것인가.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마다 선명해지는 결국 평생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어떤 장르가 되었든 평생 글을 써서 (괴롭겠지만) 행복한 나였으면 좋겠고,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줘서 또 행복한 나였으면, 그리고 내 글이 또 누군가에게 작은 행복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쓰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삶도 작가라는 한 점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본다면, 머릿속 수많은 질문 사이에서 언젠가 균형을 찾을 수 있겠지. 우리는 모두 흔들리는 존재, 그러니 흔들리는 자신을 미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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