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으려고 매일 요가 일기를 쓰자고 다짐했는데, 일기를 쓴지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핑계를 대자면 보름 남짓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알바를 여러 개 맡아 이번 달은 일을 세 개를 하게 되었다. 좀 쉬면서 스스로를 돌보자고 해놓고는 ‘일 들어올 땐 일 해야지’ 불안한 마음에 또 나를 찾는 손길들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또 ‘오늘 하루도 잘 해낼 수 있을까?’ ‘내일 하루는 또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버릇처럼 걱정이 쌓였다. 이렇게 바쁜 날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나를 숨 쉬게 만드는 건 요가이다. 수련을 마치고 나와 거울을 볼 때마다 올 때와 다른 표정으로 웃고 있는 나를 볼 때마다 기분이 묘해진다. 요가원에 누군가 기분 좋아지는 공기를 뿌려놓은 게 아닐까. 그리고 그 마법 같은 공기 속엔 하루하루 듣고 싶던 말들이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다. 오늘 선생님은 수련을 시작하기 전,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무언가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트 위에 서는데, 그 매트 위에서 또 각자의 다른 틀을 만들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다. 동작을 하고 못하는 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선생님의 그 말에 일기장을 들킨 것처럼 부끄러워졌다. 사실 요 며칠 집착하고 있는 동작이 있다.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효리 요가 동작으로 유명한 핀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핀차를 시도하기 전인 돌핀 자세. 지난주 수업에서 돌핀 자세에서 처음으로 핀차를 시도했다. 내 평생 그런 자세를 시도해보는 날이 올 거라고 1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선생님이 발을 잡아주신 덕분이 두 발을 땅에서 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몇 초 동안 난 앞으로 얼굴이 처박혀 찌부가 되지는 않을까 속으로 덜덜 떨면서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로 얼어 있었다.
그때부터 집에 와서 ‘핀차’로 가기 전 ‘돌핀 자세’를 만드는 동영상을 열심히 뒤지고 있다. 어깨에 힘을 주지 말고 겨드랑이를 잠그라는데 아니 도대체 겨드랑이를 어떻게 잠그는 거지? 온몸이 앞으로 쏠려 있는데 어떻게 어깨에 힘을 뺄 수 있는 거지? 옷장 벽에 붙어 생각날 때마다 돌핀 자세를 시도해보고 있지만, 그때마다 나는 어깨가 너무 아파. 마이 아파...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있어도 안 되는데 이효리는 어떻게 핀차를 그렇게 능숙하게 하는 걸까. 궁금해서 찾아보기 시작한 돌핀 자세지만 이젠 조금씩 답답함이 쌓이고 있다. 다행히도 어깨 근육통이 등 근육통으로 내려가기 시작한 걸 보니 뭔가 쓰던 근육이 바뀌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돌핀과 핀차 덕분에 잠들기 전 혼자 하는 체념의 말이 생겼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동작에 집착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이런 어려운 동작을 해내며 스스로 증명해내고 싶었던 것 같다. “나 요가 이만큼 해”. 으 부끄러워. 쓰고 나니 더 부끄러워. 이게 다 이효리 언니 때문이야. 언니가 너무 멋있어서 핀차를 해야만 할 것 같잖아. 하지만 나는 “요가 이만큼 해”를 증명하고 싶어서 정작 “요가”를 놓친 것이었다. 요가는 잘하고 못함이 없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을 알아가는 것이 요가라고 배워놓고 자꾸만 욕심을 내고 있었다.
일은 바쁘고 질척이고 있었다. 회의하면서 내내 ‘이게 재미있을까’ ‘통할까’ ‘너무 올드한가’ ‘그러게 왜 안 쉬고 이 알바를 다 한다고 했을까’ 머릿속에 프로그램별로 방을 나눠 고민을 쌓아가는 동안 나는 또 짓눌리고 있었다. 돈 벌기 위해서 쓰는 글이 있지만, 내 꿈을 위해서 쓰고 싶은 글이 있다. 그런데 또 시간이 모자란다. 모든 게 반복이다. 나는 스트레스가 쌓이고 불안, 초조할 때마다 손가락 끝을 물어뜯는 나쁜 버릇이 있는데, 손끝을 너무 물어뜯었는지 어제 노트북을 끄며 자리에 눕는데 손가락 끝이 아려왔다. 그냥 잘하고 있다. 한 마디가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관대하게 스스로를 칭찬해주는 성격이 못 되는 나는 무엇하나 속 시원히 풀리는 일이 없는 요즘에 화가 났고 내 꼴이 영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준비도 되지 않은 동작이 욕심이 났던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성공, 그게 필요했다.
오늘 선생님이 해준 한 마디처럼 매트 위에서나 밖에서나 무언가를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는 요즘이었다. 뭘 그렇게 잘하고 싶은 마음만 큰 걸까. 그래서인지 무언가를 증명하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이 가슴에 쿵- 박혔다. 증명하려 하지 말자. 너무 애쓰지 말자. 잘하고 못함이 없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야. 그렇게 갖가지 생각을 떨쳐내고 수련에 집중했다. 수련을 끝내고 매트 위에 선명하게 남은 땀 자국들을 닦아내며, 무엇도 증명하려 한 건 아니었지만 무언가 증명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버릇같은 불안에 지지 말자. 선생님은 늘 말했다. 요가는 숨에서 배우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