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도시>, ‘책방 오늘’에서 우연히 만난
나는 지금 날짜변경선을 넘어 다른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다른 시간 속으로 기필코 들어갈 것이다. 오랫동안 모래도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p.71)
우리는 나아질 수 없는 내일 때문에 울었던 게 아니었다. 내일이면 다시 유프라테스에서 해가 떠오른다고 해도 오늘 우리들의 상처는 지울 수 없는 것이었다. 노예로 증명된 오늘이 우리에겐 상처였다.
(p.114)
그녀는 도대체 어디에서 저런 사무친 얼굴을 가지게 되었는가. 너의 시간,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너의 지나온 시간을 해독할 수 있겠는가. 사나운 가시에 긁힌 듯 쓰라려 침을 한번 삼켰다.
(p.142)
“너한테는 떠돌이 냄새가 나서 말이야. 떠돌이들이 발굴장에 들어오는 걸 싫어하거든. 내가 하는 발굴은 말이야. 떠돌이들이 흔히 생각하듯, 폐허를 드러내는 작업이 아니거든. 땅속에 스며들어 있는 삶들의 층을 찾아내는 거거든. 폐허가 되고 또 폐허가 되어도 사는 거 말이야. 폐허가 되고 또 되어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 말이야.”
(p.147)
- 허수경, <모래도시> 중 발췌
낯선 곳으로 떠나온 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시인의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