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유령>, ‘언리미티드에디션 2023’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언젠가 새로운 별을 발견하고, 그 탄생 과정을 밝혀내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가까워지자 그는 신이 나서 크게 웃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그가 사라져버렸어요.
그 대신, 내 눈앞에는 두 개의 별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 <새내기 유령>, 로버트 헌터 (Robert Hunter) 중 발췌
어른을 위한 동화. 이 책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지난 몇 해 동안 ‘어른을 위한 동화는 대체 왜 없는 것인가’를 부르짖고 다니던 1인으로서, 같은 장르를 희망하는 창작자의 작품을 만났을 때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한 치의 고민 없이 책을 집어 들고 값을 치뤘죠. 책들이 쏟아지는 ‘언리미티드 에디션 2023’ 북페어에서 짧은 순간에 구매를 결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새내기 유령>은 주저 없이 구매할 가치가 있는 책이었습니다.
<새내기 유령>은 제목 그대로 ‘새내기 유령’이 주인공인 이야기입니다. 이제 막 유령이 된 주인공이 새로운 생활을 터득해 가는 내용이죠. 하지만 모든 게 처음인 새내기 유령에게는 아직 나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습니다. 결국 나무에 걸려 앞서가던 동료들을 놓치고 말죠. 우여곡절 끝에 새내기 유령은 한 천문학자의 도움을 받아 동료 유령들을 따라잡고, 자신의 임무를 알게 됩니다. 죽음이 임박한 이들을 마지막 순간으로 인도하는 것. 자신이 맡은 과업이 생각보다 엄청난 일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유령은 큰 혼란에 빠집니다. 하지만 천문학자는 그런 그를 마지막까지 돕습니다. 새내기 유령이 우려했던 첫 임무를 완수하게 되는 순간, 천문학자는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별이 되거든요.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어리둥절했습니다. 단순한 플롯임에도, 이야기가 하고픈 말을 짐작하기 어려웠죠. 하지만 책을 두 번째 읽을 때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숨겨 둔 책의 ‘진짜 이야기’를요. 하지만 스포가 될 수 있으니, 다음 이야기는 책이 궁금하신 분들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새내기 유령>은 그림책이고, 일러스트가 정말 좋아서 그 자체로 이미 소장 가치가 큽니다. 그리고 사실상 스포를 알고 읽어도 상관이 없죠. 오히려 책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어 좋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작은 경고의 문구를 적어 둡니다.
자, 그럼 이제 제가 독해한 책의 ‘진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우선, 제가 발견한 책의 비밀은 천문학자의 말에서 시작합니다. 천문학자는 새내기 유령을 만나며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매일같이 별을 보고 낮에 잠을 자며, 언젠가 별의 탄생 과정을 밝혀내는 게 꿈’인 사람이라고요. 그리고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죽음에 다다르며 자신의 꿈을 이룹니다. 새내기 유령과 함께 ‘죽음’의 과정을 거치며 마침내 스스로 발광하는 하나의 별로 재탄생하거든요. 죽음을 통해 평생을 궁금해했던 ‘별의 탄생 과정’을 마침내 밝혀낸 것이죠. 그래서인지 그는 죽음 후에도 환하게 웃습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는 한 점의 별이 되어서요. 당연한 일일 테죠. 생을 바쳐 고민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으니, 그 누구라도 후회 없는 미소를 지었을 겁니다.
별이 된 천문학자의 삶을 보며, 저는 유령의 진정한 임무가 무엇인지를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임무는 ‘삶이 다한 이들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 소망을 이루고, 미련 없는 죽음을 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던 겁니다. 저승사자이자 동시에 천사인 셈인 거죠. ‘죽음의 인도자’치고는 퍽 따뜻한 임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유령의 임무를 마침내 이해하며, 작가가 전혀 다른 두 방향의 소재, 죽음과 꿈을 연결한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하지만 답은 생각보다 직관적이더군요.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 진정으로 바라는 일은 오직 하나일 테니까요. 탄생과 죽음은 생에서 개인이 홀로, 온전히 감내해야 하는 유일한 두 순간입니다. 그때만큼은 어디에도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할 수 있죠. 그렇다면 죽음을 앞둔 순간, 우리는 결국 자기에게로 회귀하게 되지 않을까요. 내가 평생토록 바라던 ‘꿈’을 최종적으로 소망하게 되지 않을까요.
유한한 삶의 끝에서 무한한 꿈의 영역을 그린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그 모순은 삶의 가치를 되짚게 하죠. 만약 생의 끝에서 진정으로 바라는 마지막 소원이 무엇인지가 명확해지면,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 또한 선명해지니까요. 무엇을 취하고 또 버려야 할지도 분명해질 테고요. 결국 작가는 죽음과 꿈을 통해 열정의 생(生)을 논하고 있었던 겁니다. 죽음과 꿈을 통해 박동하는 삶을 말하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천문학자가 별이 되는 마지막 순간이 그토록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나 봅니다. 죽음 이후에도 후회 없는 그의 미소를 보며, 삶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니까요. 잠시 잊고 있던 현재라는 순간의 빛나는 가치를 되새길 수 있으니까요.
<새내기 유령>은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하는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픈 책입니다. 따뜻한 색감의 이야기 속에서 어딘가에 잠시 두고 온 일상에 대한 애정을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추신 : <새내기 유령>에 영감을 받아 제작된 음반
Jon Hopkins (존 홉킨스) : Wintergreen
콜드프레이 프로듀서 존 홉킨스가 <새내기 유령>을 읽고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음반입니다. 들으면 알겠지만, 상당히 몽환적이고 정적이며 따뜻한 곡입니다. 곡 자체로도 정말 좋지만, 이야기를 읽고 들으니 몇 가지가 더 느껴지더군요. 죽음을 목전에 둔 이만이 느낄 수 있는 ‘마침내 끝에 도달했다는 시원섭섭한 안도감’과 ‘꿈을 이룬 만족감’,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누군가의 마지막 소망을 함께 이루어가는 과정에 서 있는 듯한 오묘한 감정’ 같은 것들 말이죠. 하지만 이건 제 감상이니, 직접 책을 읽고 음악을 들어보길 추천합니다. 다른 분들은 곡을 들으며 어떤 감정이 드실지 참으로 궁금하네요. :)
언리미티드에디션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