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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Jun 08. 2024

원전 사고 이후 수십 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노스체>, ‘인스크립트’에서 우연히 만난

원전 사고 이후 수십 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노스체>, ‘인스크립트’에서 우연히 만난


재난이 발생했다고요? 재난이 있는 곳에 노스체가 갑니다! 
사람이 다쳤다고요? 사람이 있는 곳에 노스체가 갑니다!
여러분의 아픔, 노스체가 압니다.
여러분의 고통, 노스체가 압니다.     
(p.22)

필 : 밖에서는 여기가 죽은 땅인 줄 알아. 그런데 아니야.
     다 살아 있잖아. 땅도, 공기도, 나무도, 동물도.
노스체 : 왜 그렇게 생각하죠? 
필 : 보이니까.
노스체 :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죠.
필 : 전부는 아니어도, 진짜일 때가 많아.     
(p.59)

노스체
: 그때 할머니가 이런 말을 했어요. ‘이곳이 전처럼 좋아지지 않아도 괜찮다. 무화가가 열릴 수 있는 정도면, 그걸로 됐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보통은 다시 완벽해지고 싶어 하는데.     
(p.126)

- 황정은, 희곡 <노스체> 중 발췌


원전 폭발 사고 이후,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폭발을 목격했던 어른들은 노인이 되었고, 폭발과 함께 태어났던 아기들은 성인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연극 무대는 그런 격변의 시대 한복판, 원전 사고 구역 가장자리에 있는 한 마을입니다. ‘옥’과 그녀의 손녀 ‘희’, 그리고 희의 친구인 이웃집 청년 ‘현’은 사고 지역이 고립된 수십 년 동안 외부와 단절되다시피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재난 수습 로봇 ‘노스체’와 함께 외지인 ‘필’이 밀려 들어오죠. 그리고 뒤이어 몇 년 만에 돌아온 내지인 ‘연’도 모습을 드러냅니다.      


외부인과 로봇의 등장은 그곳에 본래 있던 이들의 삶에 균열을 만듭니다. 수십 년만에 외지인과 조우하며, 세 사람은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의 ‘타인’이 되죠. 타인이 된다는 건 곧 누군가에 의해 삶의 마디마디가 재단되고 측정된다는 일. 그건 누군가에게는 자랑스러운 일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뼈마디를 잘라내는 듯한 통증이고 충격이 됩니다. 원폭 사고를 겪은 세 사람에게 타인의 시선은 안타깝게도 후자였습니다.     


원전 폭발의 여파로 몸살을 앓는 마을. 그런 마을에서 세 사람이 평범하고도 순조롭게 살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가 같은 고통을 공유하는 공동체에서 공감은 엄청난 무기이자 에어백 쿠션이 되어 줍니다. 같은 통증을 느끼는 이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결 안정되죠. 하지만 공감은 때론 인간을 잔혹하리만치 냉정하게 만듭니다. 공감이란 철저하게 ‘내가 동의할 수 있는 범주’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니까요. 상처를 공유하지 못했다면, 한 발자국이라도 뒤에서 관망할 수 있다면, 인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철저하게 ‘공감의 한계선’을 그어 버리죠.     


옥과 희, 현은 그런 한계선 밖에 존재하는 이들입니다. 원거리에서 그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는 이들조차, 근거리에 다가올수록 동정심이 휘발되죠. 원전 폭발을 견딘 사람들, 수십 년간 피폭 위험 구역에서 사는 이들은 걸어 다니는 유해 물질이니까요. 옥, 희, 현은 지난 몇십 년간 그런 시선들에서 자유로웠지만, 타지인의 출몰로 인해 그들의 안온했던 방어막은 녹아내리고 맙니다. 사고 이후 오랜만에 타인의 거울 앞에 선 그들은 처음으로, 혹은 정말 오랜만에 자신의 전신을 보게 되죠. 여태 감춰 두었고, 의식적으로 숨겨 두었던 진심까지도요.      


<노스체>는 ‘재난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재해는 인재(人災)를 동반하며, 인재는 때때로 재난 그 자체보다 더 큰 위력을 갖습니다. 재난 이후 가장 무서운 것은 망가진 자연이나 폭발한 인공물이 아닌, 재난으로 인해 뒤틀린 사람들이죠. 특히나 원전 폭발과 같이 특정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치명적인 사건들은 인간 근원의 폭력성과 배타적 심리를 자극하는 원인이 되죠. 기형적으로 변한 마음과 기이하게 변한 시선은 결핍과 차별, 멸시를 자행하게 합니다. 재난 앞에 사람의 마음은 가난해지고, 바싹 마른 마음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서서히 부서져 버리죠. 재난이 무서운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재난이 사라진 자리에서 인간에게 남는 건, 불필요한 감정과 갈등, 그리고 극복될 수 없는 깊은 상처들뿐이니까요.     


<노스체>는 재해를 다루는 대부분의 작품처럼 잔혹하거나 냉소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잔잔하고, 일면 평범하죠. 격정적인 대립이나 무자비한 핍박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원폭 피해에서 극복하는 자연을 보여줄 때면 희망마저 느껴지죠. (실제로 연극은 재난 이후의 현실과 희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물들이 내뱉는 문장의 미미한 단어들에서, 감정의 미세한 틈과 여백에서 저는 왜인지 자꾸만 그들의 부서진 마음이 보였습니다.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멸시, 경멸과 모욕은 소리가 없습니다. 그저 순간적인 눈짓과 몸짓, 침묵을 통해 서슴없이 자행되죠. 그런 오욕들은 한순간에 사람을 산산조각 내지 않습니다. 겹겹이 쌓이고 모인 후에야 한 사람을 안에서부터 무너트리죠. 파괴의 흔적 또한 눈에 띌 만큼 요란하지 않습니다. 위축된 태도나 이유 모를 경계심, 짧은 단어와 공백, 한숨 등을 통해 서서히 무너져 내리죠. 마치 <노스체>의 등장인물들처럼요.      


<노스체>는 일상적이고 따스한 시선으로 재난 극복 과정을 다룹니다. 재난 한복판을 견디는 인간의 모습을 가장 ‘사람’적으로 다루죠. 어쩌면 그렇기에 재난이 훑고 간 자리의 상처가 더 커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환하게 웃는 얼굴에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서러운 표정을 뒤덮은 그림자보다, 항상 더 어둡게 보이는 법이니까요.     



이 책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던 이유


인스크립트




< 우연히 만난 책들 >


책방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방을 방문할 때마다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을 한 권씩 구매합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책들을 그냥 묵혀 두기 아까워 책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 우연히 만난 책들 >은 그렇게 탄생하게 된 글 모음집입니다.

글에서는 책방에서 책을 고른 이유와 책에 대한 소소한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달 모나 Monah the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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