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달 모나 Monah thedal Jul 27. 2024

첫 페이지만 있는 사람이 되기는 싫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꾸준히 하고 있나요?>, ‘아카이브 나인’에서 만난

<당신은 무엇을 꾸준히 하고 있나요?>, 컨셉진 100호, ‘아카이브 나인’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을 ‘기다림’이라고 했다.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는 게 지금까지 오래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것 같아요. 경험이 누적돼서 그것이 속에서 웅성거려야 해요.” (p.51)   

누군가는 물을 수 있겠다. 인간은 왜 꾸준해야 할까? (...) 왜냐하면 삶이라는 속성 자체가 꾸준해야만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꾸준한 결속이 없으면 우리는 언제라도 삶을 놓기 쉬워진다. 꾸준히 나와 산책하는 강아지, 꾸준히 내가 물을 주는 식물 (...) 단골집 마라탕마저도 나의 원형을 지켜주는, 나를 삶으로 불러오는 수단이 된다. 그래서 나는 꾸준함이란 마지막 순간에 나를 길어 올리는 구명조끼와 같다고 생각한다. (p.135)     

- <당신은 무엇을 꾸준히 하고 있나요?>. 컨셉진 100호 중


첫 페이지만 있는 사람이 되기는 싫습니다. 적어도 내게 독자가 있다면, 이 땅에 머물렀던 나의 수십 년의 세월을 이틀에 걸쳐 읽어 줬으면 해요. 표지 디자인은 무엇이 되었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독자 중 한 명은, 날 읽으며 웃고 울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에피소드가 있어야 합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감정을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뒤흔들 수 있으려면, 그에 적절한 이야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의 원천이자 동력이 되는 것이 바로 꾸준함이 아닐까 합니다. 꾸준함이 어떻게 이야기가 될 수 있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매일같이 일어나 같은 시간에 어딘가로 향하고, 같은 일을 하며,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같은 집으로 돌아오는 것. 전부 진부한 일과에 불과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성실함은 단지 고루함의 다른 말일 뿐일까요.     


꾸준하게 같은 일을 반복해 보았다면,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다는 말에는 일면 동의할지 모르겠으나, 매일 같은 일이 정말 ‘같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매일 같이 출근해 마주하는 회사의 책상을 떠올려 보세요. 모니터에 붙은 메모와 컴퓨터에 쌓이고 또 지워지는 파일들, 가습기와 선풍기처럼 계절마다 바뀌는 크고 작은 물건들, 심지어는 아주 작은 볼펜과 텀블러까지도.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책상은 점점 나와 같아집니다. 낯설었던 사무실 한 칸은 어느새 나의 분신이 되고, 나는 자리의 분신이 되죠.     


꾸준함이란 그런 것입니다. 고리타분한 일상의 둔탁함을 내 몸에 맞게 세밀하게 조각해 나가는 것. 꾸준함은 단순히 우직하게 같은 일만을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장기적으로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불편감과 지루함과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죠. 내부적이든, 외부적이든, 규칙적으로 찾아드는 날파리들을 내쫓기 위해 매일 다른 해법을 모색하고, 새로운 방도를 개척해 나가야 하죠. 꾸준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변화해야 해요. 정말 모순적이게도, 꾸준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져야 합니다.      


덕분에 꾸준히 무언가를 지속하다 보면 우리는 성장하게 됩니다. 그저 반복했을 뿐인데, 반복하기 위해 쏟았던 크고 작은 노력과 시간 속에서 서서히 변화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안에서 어김없이 전에 없던 것들이 탄생합니다. 켜켜이 쌓인 에피소드들은 물론, 잔잔하거나 폭발적인 감정들, 격변의 순간을 지낸 후 밀려오는 성찰까지. 전부 무엇을 꾸준하게 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인내하고, 지속하며, 놓지 않았기 때문에 깨우칠 수 있는 순간과 생각인 것이죠.      


꾸준함의 본질은 여기에 있습니다. 꾸준함의 미덕은 그저 같은 일을 군말 없이 되풀이할 때가 아니라, 깨어지고 부서지는 상황에서도 버티어 이겨내며 같은 일을 용기 있게 반복했을 때, 비로소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꾸준함을 위대하다 평가하는 것이고, 같은 일을 몇십 년이고 반복해온 이들에게 감탄을 마지않는 것입니다. 밀도 있는 내용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책을 보면, 저자를 칭송하게 되는 것처럼요.     


<당신은 무엇을 꾸준히 하고 있나요?>는 2023년 5월에 발행된 컨셉진 100호의 제목으로, 해당 호의 핵심 키워드는 ‘꾸준함’이었습니다. (컨셉진은 매달 다른 질문으로 세상을 탐구하는 월간지로, 10년 넘게 명맥을 이어 온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입니다.) ‘꾸준함’은 10주년을 맞이한 잡지가 다루기 더없이 시기적절한 키워드였죠. 무엇이든 한 가지 이상 꾸준히 해 온 사람, 기업, 브랜드의 이야기는 마치 키네토스코프와 같았습니다. 정적인 사진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며 활력 있는 영상을 만드는 영사기처럼, 따분한 하루들이 모인 일상은 어느새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되어 있었죠. 잡지를 읽으며 저는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꾸준함은 인생에 서사를 부여하는 근원의 힘이자 삶을 흥미롭게 만드는 의외의 요소라는 사실을요.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면, 저는 첫 페이지로 남는 사람이 되기는 싫습니다. 적어도 눈 감기 전에는 완결된 단행본이 될 수 있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주축이 되는 꾸준함의 미덕을 갖추어야겠지만, 애석하게도 제 이야기는 아직도 서론에만 머물러 있는 듯하네요.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이 한 편의 책이 된다면, 어떤 이야기로 남을까요. 당신의 이야기는 어디쯤 다다랐나요. 본론에 진입했나요, 여전히 서론인가요, 혹은 이미 결론인가요. 당신은 무엇을 꾸준히 하고 있나요.



이 책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던 이유


아카이브 나인




< 우연히 만난 책들 >


책방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방을 방문할 때마다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을 한 권씩 구매합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책들을 그냥 묵혀 두기 아까워 책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 우연히 만난 책들 >은 그렇게 탄생하게 된 글 모음집입니다.

글에서는 책방에서 책을 고른 이유와 책에 대한 소소한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달 모나 Monah thedal


링크트리 : https://linktr.ee/monah_thedal

모나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monah_thedal

모나 인스타 : https://www.instagram.com/monah_thedal/

모나 브런치 : https://brunch.co.kr/@monah-thedal#works

모나 블로그 : https://blog.naver.com/monah_thedal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우리가 소유했던 물건으로 기억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