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사랑이란 미안함으로부터

치료중의 이야기 #7

by 이대


가족간의 사랑이란, 어쩌면 미안함으로부터 비롯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별 탈 없이 자란 덕에 큰 병으로든 작은 병으로든 여러 날 입원을 했던 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가 처음이라 했는데(08화 ‘당신은 엄마와 친하신가요?’참고), 내 입원 때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수일 간 병원 신세를 졌던 적이 있다. 담낭 제거 수술을 받은 엄마를 간병하면서였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엄마와 나는 간병인으로서의 역할을 주고받은 셈이었구나.




12월에 MRI촬영을 하고 뇌종양 진단을 받아 서울대학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던 2월 말. 그 사이 엄마는 담낭 제거 수술(담낭절제술)을 받았다.


우리 엄마의 생일은 음력 1월 7일. 설 명절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어떤 날이다. 어릴 땐 내 생일 챙기기 바쁘고 기숙사 생활을 한 고등학생 시절과 대학에 다닐 땐 명절에 내려가 얼굴을 봤으니 됐다는 어쭙잖은 핑계로 나는 언제나 엄마의 생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언제나 엄마의 생일은 흐지부지 그렇게 지나가 버리기 일쑤였다.

우리 집은 태어난 날을 별반 중요시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주민등록증의 생년월일과는 전혀 다른데다가 음력이라 그렇다고 변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실은 가족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탓이다. 가족에 대한 내 관심이. 한없이 부끄럽기만 한 이야기이지만, 엄마의 생일이 음력 설 바로 뒤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된 건 엄마가 담낭 제거 수술을 받은 뒤의 일이다.


전까지는 몰랐던 이야기인데 엄마는 설 명절 기름진 음식들을 먹고 나면 항상 배가 아파 여러 차례 응급실 진료를 받았다고 한다. 아빠와 엄마는 나와 동생이 걱정할 것을 우려해 우리 앞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배가 아픈 걸 체해서 그랬던 것으로만 여기다 수술을 받은 그 해, 거듭된 복통이 담낭(쓸개)에 생긴 담석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담낭을 떼어내도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엄마는 제거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중앙대학교 병원에서 진행키로 한 엄마의 수술일은 공교롭게도 내 입원을 고작 몇 주 앞둔 날이었다.


엄마가 받을 수술은, 수술을 마치고 퇴원 전 회복까지 10여일 간 입원이 필요했더랬다. 당시 아빠는 개인사업이라고 해야 할까 자영업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런 일을 하셨던지라 열흘이 넘는 날을 그냥 보낼 수 없었고 동생은 학교에 다니던 중이었기 때문에 병실에서 간병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시간이 남는 나뿐이었다.

다른 병도 아닌 뇌종양 진단을 받고 암병동에 입원을 불과 몇 주 앞둔 내가 엄마를 간병하며 열며칠 간 병원에서 먹고 자며 지낸다는 것. 이 상황이 일반적인 건지 특별한 것인지는 지금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다만 우리 가족 입장에서는 ‘너야 뭐 뇌종양이긴 하지만 머리가 아픈 것도 아니고 잠만 오는 거니까 별 문제 없지 않겠냐’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아아, 정말이지 이렇게나 긍정적인 마인드의 우리 가족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냅니다.


엄마의 수술은 복강경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담당한 의사선생님께선 복강경 수술은 복부를 절개하는 수술보다 통증이 적고 회복 속도가 비교적 빠른 수술이라 말씀하셨다. 전신마취를 할 테지만 그래도 힘든 수술은 아니니 걱정 말라는 말씀과 함께.

수술 당일 환자복을 입은 엄마는 바퀴달린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갔고, 나는 수술실 앞의 긴 의자에 앉아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힘든 수술이 아니라니 큰 걱정도 없이 그저 일상적인 편안하기만 한 마음으로 그렇게 의자에 앉아 40분 남짓 흘렀을까? 수술실 문 위에 달려있는 수술표시등이 꺼지고 곧이어 침대에 실린 엄마가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아직 마취가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일 엄마의 얼굴은 그런데, 밀려오는 고통을 억지로 참고 있기라도 한 듯 잔뜩 찡그린 표정이었다. 미간에는 주름이 한가득 잡혀 있었다. 분명 의사선생님께서는 통증이 적고 힘든 수술이 아니라 했는데 수술실에서 나온 엄마의 표정은 결코 그래보이지 않았다. 걱정에 나는 옆에 서 있던 의사선생님에게 물었다.


“많이 아파하는 것 같은데요?”


그 말이 내 입밖으로 나온 바로 그 순간, 찡그린 표정을 어떻게든 활짝 펴려 하는 엄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 '아니야, 엄마 안 아파. 걱정 안해도 돼'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한 엄마의 얼굴이. 마취가 덜 깨 비몽사몽한 중에 나온 엄마의 그 표정 변화는 아마도 미안한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테다. 엄마가 아파하는 바람에 아들을 걱정하게 만들었다는 미안한 마음.

그런데, 아픈 건 엄마 자신인데 엄마는 왜 나에게 미안해해야 했던 걸까? 그것은 다름 아닌 가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가족이라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다른 이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바로 그 미안함 때문에. 그리고 그 미안함이란 짐작건대 사랑과 다르지 않은 감정일 것이다. 타인에 대한 사랑과 구별되는 가족에 대한 사랑.


수술을 마치고 나서 며칠 후, 엄마에게 수술실에서 나온 엄마가 그랬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내가 정말 그랬니?' 하고 말씀하셨다. 엄마의 그 행동은 의식적인 행동이 아니라 정말로 비의지적인, 본능으로부터 나온 행동이었던 모양이다.




내 뇌수술 여부에 대한 결정권이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날.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받기로 결정한 건 나였다. 이것은 내가 받을 수술이다. 그러니 수술에 대한 결정은 내가 내려야 한다. 두렵고 부담되는 일을 피하기만 해서는, 지금까지 줄곧 그래왔던 것처럼 어떻게든 회피하려 들기만 해서는 나라는 사람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을지 모른다. 두려움을 고통을 그리고 그 경험을 받아들이자. 어쩌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없을 뇌수술이라는 커다란 경험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하자.


병원 측에 수술을 받겠다는 말을 전달하고 수술동의서에 싸인을 마치자 준비는 신속히 이루어졌다. 나, 그리고 우리 부모님에게 전달된 수술에 걸릴 예상 시간은 45분 내외였다. 뇌수술이긴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우선 머리가 움직이지 않게 도와줄 틀을 두개골에 나사를 박아 고정시켰고 그 틀을 착용한 채 수술 침대에 누워 수술 전 과정인 MRI촬영이 진행되었다.

이번 MRI촬영은 이전까지 수차례 받아 왔던 촬영과는 애초부터 그 목적이 달랐다. 이전의 촬영은 항암치료를 통해 종양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그것이었다면 이번 촬영이란 말하자면 정확하고 안전한 수술을 위한 지도를 만드는 과정에 가까운 것이었다. 종양의 위치가 뇌 속에서 정확히 어디인지, 얼마나 깊이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접근해 종양 세포를 떼어낼 것인지, 꼭 피해야 할 뇌의 영역은 어디인지 등을 면밀히 파악해 수술 지도를 만드는 과정.


두개골에 나사로 박은 고정틀 탓에 욱신거리기만 하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MRI기계의 원통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진 촬영의 시간은 그간 받아 왔던 MRI촬영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협소한 공간 안에 누워 절대 몸을 움직이면 안 된다는 강박과 함께 전까지는 없었던 두부(頭部)의 고통에 대한 인내가 더해진 시간.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생하게 느껴진 신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강박은 나를 그야말로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 그 시간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길게만 느껴졌다.


입고 있던 수술복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MRI촬영은 어떻게든 끝이 났다. 누워있던 수술 침대는 곧장 수술실로 옮겨졌다. 그렇게 시작된 뇌수술은 마취를 하지 않은 채 눈만 가리고 진행되었다. 두피 외부의 무거운 욱신거림 외에 큰 통증은 없었지만 수술 과정에서 들려오는 각종 의료기구들의 사용 소리며 두개골에 구멍을 내는 전동공구의 진동음, ‘지금쯤 내 뇌 속으로 주사바늘이 들어가고 있겠지?’하는 상상 등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한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긴장 속에서 어느 순간, 수술이 종료되어감이 느껴졌다. 여전히 눈은 가려진 채였지만 수술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나에게 약간의 안도가 찾아왔다. ‘이제 수술이 끝났으니 수술실 밖으로 나갈 수 있겠지?’ 하는 안도가.

그런데 이상했다. 수술은 분명 다 끝난 것 같은데 나를 수술실 밖으로 내보내주지 않는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들은 도무지 나를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 없는 것만 같았다. 아마 수술 후의 체온이나 혈압 등 신체 수치 가운데 뭔가가 정상으로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45분이면 마무리된다 했던 수술 시간은 그렇게 한 시간을 넘어 흘러가고 있었다.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피어올랐음에도 나는 아무 말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내 걱정이 사실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 무서워서. 나는 침대에 누워 그렇게 걱정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 채기라도 한 듯, 어떤 의사선생님께서 역시나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나도 선생님의 손을 꼭 잡았다. 그렇게 손을 마주잡은 채 3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나는 수술실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수술 침대에 누워 그렇게 수술실 밖으로 나간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한참을 울어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는 엄마의 얼굴이었다.


45분 정도 걸린다던 아들의 수술이 한 시간을 넘어 두 시간 가까이 종료되지 않고 있을 때, 수술실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엄마와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수술은 45분이면 끝난다더니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거야? 수술에 문제가 생긴 거 아니야? 대훈이가 어디 잘못된 거 아니야? 그러기에 당신은 왜 뇌수술을 한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았어!’


그런 걱정과 날카로워진 아빠 엄마 서로간의 감정 속에서 엄마는 한참이나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아들의 결정을 말리지 않은 자신을 꾸짖으면서. 그런 엄마의 얼굴을 본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커다란 미안함이었다. 엄마를 걱정하게 만들었다는, 엄마를 눈물짓게 만들었다는 미안함. 수술실에서 나와 눈물범벅이 된 엄마의 얼굴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환한 웃음을 지으려 애쓰는 내가 느껴졌다. 어떻게는 웃는 표정을 지어내려 애쓰고 있는 내가. 아마 그것은 담낭절제술을 마치고 수술실에서 나와 걱정하는 나를 본 엄마의 마음과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니야 엄마. 나 괜찮아. 그렇게 울 것 없어. 괜찮아 엄마.'


-

나는 떠올린다. 타인이 아닌 가족간의 사랑이란 어쩌면 미안함으로부터 비롯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직접적으로, 그리고 분명히 알게 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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